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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과 역사』/현응 스님 지음/불광출판사 [불교도서] 2009-12-26 / 5667  

 

깨달음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불교가 출현한 이래로 지속돼온 해묵은 과제다. 부처님 역시 출가 순간부터 한시도 사회문제를 별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세간의 문제를 출세간에서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여전히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사진〉 스님이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일궈낸 불교철학에세이 『깨달음과 역사』의 개정증보판을 출간했다. 『깨달음과 역사』는 불교의 인식론과 존재론을 깨달음의 영역으로, 현실과 실천의 범주를 역사의 영역으로 거둬들인 불교역사철학 에세이다.

‘깨달음과 역사’는 대승불교의 이상형인 보디사트바, 즉 보살을 의미한다. 현응 스님은 대승불교의 실천적 주체인 보살을 보디(dodhi, 깨달음)와 사트바(sattva, 역사)의 개념으로 치환해 부르며, 이를 통해 깨달음과 역사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즉 깨달음(보디)이 높디높은 경지가 아니라 다급한 현실의 중요한 근간이며, 역사 곧 중생(사트바)과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년 전인 1990년. 당시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민주, 민족, 민중, 통일이라는 슬로건이 온 국가를 휩쓸 때였다.

이러한 시대의 거센 흐름은 절집으로도 흘러들어왔고, 민중불교, 민족불교라는 이름으로 사회 민주화와 종단 개혁을 요구하는 노력들로 구체화됐다. 격변의 시기 현응 스님도 출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의 깨달음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각종 매체에 게재한 원고를 모아 펴낸 것이 바로 『깨달음과 역사』였다.

처음 책이 발간되자 “새로운 불교해석으로 불교도에게 세상을 보고 역사를 인식하는 안목을 열어주었다”는 평가와 “보살행 실천의 지침을 제공해 주는 역작”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또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책이 절판되자 복사본을 만들어 돌려볼 만큼 교계의 관심은 각별했다. 개정증보판은 처음 간행된 『깨달음과 역사』를 중심으로 시의적으로 적절치 않은 부분은 삭제하고, 1990년 이후 강연원고와 산문 몇 편을 보충해 새롭게 편집했다.

스님은 이 책에서 깨달음이란 변화와 관계성의 법칙을 깨닫는 것, 다시 말해 삼라만상이 서로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임을 역설한다. 또 깨달음을 소극적이고 허무적인 세계관으로 이해하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가치체계에 종속되는 않는 열려진 적극성이며 변화를 지향하는 역동성이 바로 깨달음의 세계”라고 일침을 가한다.
현응 스님은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의 영역에 자족하지 않고 역사의 길에 나서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랑(慈)과 연민(悲) 때문”이라며 “자비야말로 역사적 행위의 원동력으로서 깨달음과 역사를 묶어내는 고리”라고 강조했다.

20년이 흘렀음에도 이 책의 의미가 각별하게 와닿는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의 시계를 혼돈과 격동으로 얼룩진 과거로 돌린 듯한 현 시국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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