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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무 시인 시선집 <오래된 농담> 출간 [불교도서] 2008-09-03 / 3236  

 
이번 시선집은 시인이 自序(자서)에 밝혔다시피 최근 시집 《저녁 6시》(창비)를 제외한 8권의 시집들에서 선한 시편들을 순차적으로 배열 구성한 것이다.

시인은 자서에서 “결코 짧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매우 느린 유속이긴 하지만 시의 어법과 내용이 그 물결에 실려 변화돼 왔다”며 “너무도 자명한 말이지만 이 변화는 그간 내 생활의 차이에 따른 대상과 세계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처녀작인 《섣달 그믐》부터 시선집에 실린 가장 최근작인 《푸른 고집》까지 시인이 일관되게 가져오고 있는 메타포는 후각적 상상력에 기인한 음식에 대한 사유이다.

〈위대한 식사〉와 상당히 닮은, 하여 前作(전작)으로도 읽히는 <멍석>은 ‘냉수 사발에 발 담근 밤새 울음과 초저녁 별빛 몇 가닥도 건져 올려 겉절이와 함께 밥숟갈에 걸치어’주는 ‘반찬 없이 배불렀던 저녁식사’의 정경을 그린 작품이다. 농촌공동체에 대한 시인의 향수가 잘 묻어 있다. 그런가 하면, <흑석동 일기 1>에는 ‘허기지면 망가진 곤로를 달래 안성탕면 한 그릇 반찬 없이 끓여 먹었’던 시인의 도시생활의 애환이 잘 묘사돼 있다. 시인에게는 여전히 도시가 ‘살점 발라 먹고 버린 뼈다귀에 파리떼 어지럽게 엉켜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몸에 피는 꽃》에 와서는 시인에게 음식이 무엇인지 보다 자명해진다. 시인이 동경하는 세상은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면서 ‘평등’인 세상이다. 하지만, 시인이 겪고 있는 세상은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 세상이다. 그런 욕망의 세상 속에서 시인은 점차 동화돼 간다. 그러나 시인이기에 그 자책감은 자학증 환자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다. 그 산물이 바로 시이다.

자연의 여성의인화 통해 ‘에코페미니즘’ 강조
이재무 시인의 시 세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자연에 대한 의인화가 도드라지는데, 특이할 만한 것은 여성화시키는 점이다. 시인에게 ‘호수’는 기미와 화장독 오른 여자로, ‘감자꽃’은 ‘불임의 여자’로, ‘개펄’은 ‘냉병과 관절염과 디스크와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자’로 묘사된다. 이들은 모두 드센 남성들에게 농락되고 버려진 기구한 여성들이다. 시인은 여성적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남성적 사고인 ‘근대 이성주의’에 대한 회의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비오는 날 호수에/ 물꽃 핀다/ 수직으로 빗방울은 떨어져/ 수면에 동심원을 그린다/ 수평으로 잔잔히 퍼지는 물무늬/ 세모시처럼 가늘고 고운/ 저 아름다운 적막의 동그라미 속,/ 누대의 시간 흐른다/ 소란과 수다에 지쳐/ 두꺼워진 몸 가두고 싶다/ 그리하면 한지처럼 얇아져/ 녹아서 형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은 죄가 많아/ 선한 것이 눈에 불편한 사람/ 물꽃은 뿌리 없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다/ 졌다 피고 피었다 지는 경이/ 순간의 삼매경,/ 차마 어지러워서 땀에 전 작업복처럼/ 무거운 내 오후의 생/ 비틀거리며 흠뻑 젖는다
-<물꽃> 전문


시인은 비오는 날 호수에 물꽃 피는 것을 본다. 물꽃은 빗물이 떨어지면서 만드는 동심원이다. 그 물꽃을 보면서 시인은 ‘물꽃은 뿌리 없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불교적인 사유로 충만하면서도, 시의 본령인 서정성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상처에도 천착한다. 마흔 살 무렵 시인은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던 시인이 <상처>라는 시편에서는 ‘가려워서 어디든 몸을 문대고 비비고 싶은 생의 상처여, 낫지 말아라. 몸속의 너를 보낼 수 없다. 상처는 기억이고, 반성이고, 부활이다.’라고 말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귀대환약신(貴大患若身, 재난을 몸처럼 귀하게 여겨라)’을 떠올리게 하고, ‘선지식(善知識)아, 즉번뇌시보리(卽煩惱是普提)니 착전념(捉前念)이 미즉범(迷卽凡)이요, 후념(後念)이 오즉불(梧卽佛)이니라(선지식들아, 번뇌가 바로 보리이니 앞생각을 붙들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에 깨달으면 바로 부처이니라)’라는 《돈황본 육조단경》의 한 구절을 상기시키게 하는 대목이다.

시인이 <푸른 개>에 나오는 ‘불구의 생활을 끌고 저토록 처절하게 기어가듯 하염없이 걸어가는’ 절뚝거리는 늙은 개 한 마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구의 늙은 개에게서 자신의 먼 전생과 후생을 봤다는 시인.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걸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詩業(시업)의 운명으로 지키느라 25년 외길을 걸어온 이재무 시인. 두루 아파본 시인이기에 '넓고도 깊은 농담'을 배우게 됐다. 물론 그 '오래된 농담'은 다름아닌 시이다.



<출처 : 원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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