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익히 알려진 대승불교 최고의 논서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에 담는다면, 우리 모두가 연기각성(緣起覺性)이므로 한 생명이며, 낱낱의 생명 그대로가 우주의 생명이며, 수행과 자비행을 통해 나와 이웃이 모두 이로운 삶을 살자는 것이다.
마명(馬鳴) 스님은 "이 논을 쓰는 것은 중생이 의심과 그릇된 집착을 버리고 대승에 대한 바른 믿음을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마명스님은 기원전 2세기 초중엽에 살았던 인도의 스님. 원래 브라만 출신의 대학자로 총명이 널리 알려졌다. 여러 도시에서 불교학자들과 논쟁을 벌인 끝에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대승기신론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나 중국의 진제스님과 실차난타스님이 한역본을 남겼는데,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다. 한문과 한글번역을 합해도 보통 크기의 책 90쪽 정도이다. 그러나 대승의 광활한 세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해 놓았기에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길상사 수련원장 정화스님이 마명스님의 대승기신론 한역본을 우리 글로 옮기고, 뜻을 알기 쉽도록 풀이해서 펴냈다. [도서출판 법공양, 신국판 양장본 1권 446쪽, 2권 476쪽. 각권 22000원]
압축된 뜻을 풀다보니 꽤 큰 분량이 되었다. '우리 삶은 이미 만족되어 있는 대승' '대승에 대한 믿을 일으키게 하는 법' '뭇 생명들의 마음이 곧 대승' '지止와 관觀을 함께 닦아야 함' 등 대승불교의 요체를 68개의 장으로 나누어 풀이했다. 정화스님은 "인연이 있어 읽어도 깜깜하다고 하여 '깜깜 기신'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지요. 이것이 편역이 된 까닭이며 풀이가 길어진 까닭이다"고 말했다.
대승불교는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부처이면서 부처를 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명스님은 "진여에서 보면 중생들이 다 같으나 중생들마다 서로 다른 무명업식이 있고, 그와 같은 무명업식에 의해서 원래부터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른 실체를 갖는다고 차별하며, 차별된 것을 향한 무명업식의 경향성에도 깊고 얕은 다름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명(번뇌)과 차별심이 부처인 스스로를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화스님은 '어리석은 인식의 대물림' 때문이라고 본다. "이 흐름(어리석은 인식의 대물림)을 거스리지 못하는 한 현재를 사는 것 같지만 언제나 과거의 이미지가 현재를 지배하는 것과 같으며, 그것이 다시 스스로의 미래를 만듭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의 주체가 있어서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주체가 있다[我見]'고 잘못 설정된 무명의 세계읽기가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중요성은 여전히 강조될 수밖에 없다. "수행은 무명의 습관을 거슬러 바른 견해를 습관화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래의 지혜를 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든 차별과 번뇌가 무명에 의해서 형성된 것인 줄 이해하고 함께 생명의 소통을 이루려고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진여의 훈습이 있기에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화스님 해인사 고암스님을 은사호 출가하여 해인사, 송광사, 백장암 등에서 수행 정진했다. 현재 서울 길상사 수련원장으로 있으면서 일요가족법회를 통해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또한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육조단경>을 강의하고 있다. 풀어 쓴 책으로는 <금강경> <반야심경>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생활 속의 유식 30송> <법성게> <중론> 등이 있다.
<출처 : 불교포커스 6월 21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