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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사 [불교도서] 2009-05-19 / 4070  

 
* 내용

이 책은 고증을 통해 청평사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원림의 발달문화를 알기 쉽게 해설해놓고 있다. 1000년 고찰의 흥망성쇠와 아름다운 자연경관, 청평사의 산수를 노래한 역사 속 문인들의 시와 현장 사진을 통해 청평사의 면면을 생생하면서도 자세히 들려준다.

역사, 기록, 시, 식생, 건축, 조경 등 청평사의 모든 면을 담고 있고 있는 이 책은 한 절에 대해 방대하면서 식견 깊은 고찰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풍광과 역사가 숨 쉬는 청평사

춘천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10분 남짓 가면 청평사에 닿는다. 긴 선착장을 따라 울창한 숲이 우겨진 숲길을 거닐다 보면 1000년 고찰 청평사의 품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청평사는 아늑한 분지형으로 계곡, 수석,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진 절경을 뽐내고 있다. 천혜의 산수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청평사는 남북한을 통틀어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선원문화가 형성된 소중한 역사문화유적이다.

고구려 아도화상이 신라로 가는 도중 창건하였다는 설과 당나라 평양공주가 신라 선덕여왕 때 중건하였다는 연기설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믿을 수 있는 창건 역사는 「문수원기」에 기록된 고려 광종 24년 중국 후당 승려 영현선사가 백암선원을 세웠다는 관련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백암선원은 그후 폐사되었고, 경운산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이의가 백암선원 옛터에 절을 짓고 보현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어 이의의 아들 이자현이 고려 선종 6년에 문수보살의 감응을 받아 선원의 이름을 문수원이라 고치고, 산명도 경운산에서 청평산으로 고쳐 부르면서 현재의 모습과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천혜의 자연경관

청평사는 ‘청평팔영’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지형경관을 갖추고 있다.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청평사에 들어와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자연경관에 취해 수많은 글을 남겼다. 고려 때의 김부철은 “청평산의 산과 물과 골짜기의 좋은 경치는 실로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면서 “장차 문장에 능한 사람을 기다려서 글을 짓게 하”겠다고 「문수원기」에 남겼다. 또, 조선의 보우는 “진실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며,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신비스러움을 지닌 그윽한 지역”이라고 『허응당집』에 술회하고 있다. 게다가 “금강산의 기암괴석과 태백산의 웅장한 봉우리와 큰 골짜기는 비록 경관이 놀랍고 장엄하지만 그 천석은 옥과 그림같이 사랑스럽고 놀랄만한 것이 가히 청평사와는 한 나라에서 아름다움을 다툴 수 없다”고 청평산의 경관을 극찬하였다.

뿐만 아니라 박장원 역시 『구당집』에서 “나라 안의 명산을 많이 보아왔지만 두 손을 마주잡고 모이듯 하고, 사면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비거나 부족함이 없이 산의 모습이 온화하고 기색이 빼어나며 기이하기로는 이 산만한 것이 없다”며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청평산 계곡에 들면 마치 속세와 단절 된 듯 숲의 울창함에 둘러싸여 고요함을 타고 흐르는 내면의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토록 산새가 미물의 혼잡함을 바로잡아주고, 그 아름다움에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발길 닿는 곳, 역사 속으로

청평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다. 청평사와 청평산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청평산 하나가 사찰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평사는 경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청평산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크게는 구송폭포구역과 영지구역, 경내구역, 서천구역, 나한전터, 견성암구역으로 나눠진다. 많은 옛 문인들이 감탄하여 붓을 놀렸던 곳곳이 청평산 전체에 자리 잡고 있다.

정시한이 “무척이나 맑은 기운이 스며나오는 기이한 경관”이라고 말한 구송폭포는 원래 아래 쌍폭 주변에 소나무가 아홉 그루 심어져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현대에 와서 구송(九松)이 구성(九聲)으로 와전되어 구성폭포로 불리고 있다.

구사맹이 주변을 진압하기 위해 세운 비보탑으로 본 ‘강원도 문화재자료 8호’로 지정된 3층석탑은 공주설화와 관련지어져 현재 공주탑이란 애칭이 있기도 하다.

한국 전통 연못의 원형을 지닌 고려시대 연못 영지에 대해 서종화는 “바람이 맑게 파도 치듯 불어 봉우리를 주름잡으며 초목이 모두 동요하는 그 광경이 황홀하여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을 정도”라 하였고, 정시한은 “봉우리와 바위가 깎아지른 듯 서 있고 산의 암자가 못에 또렷이 비추이는 것이 마치 그림 같다”고 하였다.

이 밖에 경내에 있는 극락전, 나한전, 관음전 그리고 ‘보물 제164호’로 지정된 회전문, 경운루, 비(碑)와 부도 등은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선동 입구 암벽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문수원 중건 때 이자현이 세운 식암(적멸보궁)을 만날 수 있다. 이 식암은 청평사 내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암자로 곡란암(鵠卵庵)이라고도 불렀다.


지은이 소개


윤영활

고려대학교 대학원(석사), 강원대학교 대학원(박사)을 수료하고 강원대학교 조경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전통조경학회 부회장, 강원도 문화재 전문위원, 강원도 도립공원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전통조경학회 고문, 춘천시 건축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동양조경사』(공저), 『조경사전』(공저) 등이 있고, 전통복원설계로 「대구향교 복원 기본 설계」(공동), 「낙산사 관음지 조경설계」 등이 있다. 청평사 관련 7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이중 「청평사 선원의 고문헌적 고증연구(1)」은 2006년도 「한국전통조경학회」 우수논문상에 선정되었다.

<출처 : 대원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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