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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의 숲, 침묵으로 노래하다 [불교도서] 2009-03-23 / 4613  

 
하늘은 침묵의 계절에도

숲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하늘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통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천만 가지 소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래서 일찍이 자연의 소리를 신탁(神託)의 소리라고 했다.

겨울을 침묵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하늘은 겨울에도 침묵하는 법이 없다. 하늘은 오랜 숲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다. 하늘은 앙상한 겨울 숲으로 내려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거닐며, 나무줄기와 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다만 귀 열린 자만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걸음은 봄을 기다리며 침묵의 소리를 들으러 겨울 산사의 숲을 찾아 나선다.

여백이 있는 수묵화 속 탐방


7여 년에 걸쳐 이 땅, 이 산하를 누빈 김재일 선생의 《108 사찰 생태기행_산사의 숲》시리즈의 두 번째 성과물 『산사의 숲, 침묵으로 노래하다』는, 생명이 잦아든 듯 보이는 겨울 숲에서 만나게 되는 청청한 소나무, 낙엽 떨군 활엽수, 겨울눈(芽), 마른 풀 그리고 새들을 통해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흔히 겨울산은 볼 것이 없다고들 한다. 풀은 말라 죽고, 낙엽을 떨어뜨린 나무들은 황량한 풍경을 연출하며, 한철을 구가하던 나비와 잠자리 같은 곤충도 몸을 감추어 보이질 않는다. 계곡은 꽁꽁 얼어붙어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유영을 보기 어렵고, 골짜기와 숲길에는 눈과 얼음이 덮여 빈사(瀕死) 상태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본다면 아주 정확한 겨울풍경이다.

그러나 자연 속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태계를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이라고 다르지 않다. 빈사 상태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을 뿐,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숨을 쉬고 체온을 유지하며 겨울을 지내고 있다. 자연은 겨울에도 침묵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 속 귀를 열면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의 아름답고 활기찬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신록의 숲을 부드러운 수채화에 비유한다면, 단풍 숲은 현란한 유화라고 할 수 있고, 잎을 떨어낸 허허로운 겨울 숲은 흑백으로 드러내는 수묵화에 비견할 수 있다.

겨울 숲 생태기행은 여백이 있는 수묵화 속의 산책이다. 눈과 고요 속에 파묻힌 겨울 숲은 성스러운 데가 있다. 좋은 숲은 겨울에도 좋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겨울 숲은 푸른색을 자랑하던 신록이나 색 고운 단풍 숲과는 또 다른,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동안거(冬安居)로 들어앉은 겨울 숲은 단식을 끝낸 사람처럼 겉은 거칠고 야위었지만 그 내면은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숲은 겨울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보여 준다. 추위나 눈 때문에 발길 드문 겨울 숲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 내밀한 속살의 깊은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함이다.

겨울 산, 그 고요 속으로의 기행은 봄에서 가을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감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겨울의 숲에서 우리는 사계절 변함없이 우리의 산야를 지키는 소나무의 푸른 정기를 볼 수 있고, 헐벗은 나무 사이로 올올히 모습을 드러내는 산새들과 조우한다. 겹겹이 생명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의 겨울눈에서 생명을 보고, 바위틈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는 네발나비 등을 만난다.

숨죽인 긴장을 끊고 퍼지는 청아한 산새소리

산새 관찰은 나뭇잎으로 무성하게 뒤덮인 여름철보다 낙엽이 지고 난 겨울철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산새는 주로 계곡 주변이나 낮은 산기슭에 사는데, 그 이유는 새들도 세수를 해서 맑은 물 주변을 좋아하는데다가 겨울철 먹이사냥에는 관목 숲이나 덤불이 있는 곳이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숲 속에 사는 대부분의 산새는 덩치가 작아 속내를 드러낸 겨울 숲이라고 해도 눈으로 찾기는 꾀까다롭다. 이런 산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 몸집이 작고 행동이 민첩한 산새는 힘들게 눈으로 모습을 찾기보다는 소리로 만나볼 것을 권한다. 산새들이 자기들끼리 소리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서로의 무리를 찾는 습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새의 노랫소리를 찾아 눈을 감고 숨죽이며 귀 기울일 때, 고요 속의 잠깐의 긴장감이란……. 적당한 스트레스가 인간의 능력을 배가시킨다는 보고가 있었듯이 인간은 생리적 또는 정신적으로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요 속에서 산새의 노랫소리를 찾아 숨죽이는 그 감칠맛 나는 긴장감 끝에 터지듯 들려오는 박새, 직박구리, 굴뚝새, 곤줄박이, 어치, 붉은머리오목눈이, 물까치, 흰뺨검! 纜으와 같은 텃새들의 목소리는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어서 들려오는 겨울철에만 만날 수 있는 되새, 딱새, 노랑턱멧새, 유리딱새, 개똥지빠귀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감동 그 자체이다.

겨울 생태기행의 백미, 간월암 철새탐조

겨울 생태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철새탐조다. 철새탐조는 생태기행뿐 아니라 겨울여행 중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 강원도 속초 청초호, 충남 서산의 천수만과 금강 일대, 비무장지대의 철새 도래지 강원도 철원,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 등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철새 도래지인데, 그중에서도 간월암이 자리 잡은 서산의 천수만은 희귀 조류의 왕국이라 불린다.

국립환경연구원의 2001년도 겨울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총 93만여 마리의 겨울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왔는데, 그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철새들이 천수만을 찾았다고 한다. 천수만은 종의 다양성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앞서, 매년 평균 80종 안팎의 새들이 이곳 간월암 근처에서 월동을 한다. 간월호와 부남호, 두 담수호 주변의 농경지, 방조제 바깥 바다 쪽 갯벌에서 기러기류와 오리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로 기러기들은 농경지에 자리를 잡고, 오리들은 두 호수와 바다를 삶터로 삼았다. 우리나라에는 개체 수가 많으나 세계적으로는 보호종인 큰기러기를 비롯하여 쇠기러기, 황새, 계절을 잃은 백로, 가창오리, 청둥오리, 고방오! 리,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오리, 물닭, 쇠오리, 알락오리, 비오리, 댕기흰죽지, 민물가마우지, 검은목논병아리를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보통, 조류는 그 지역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가장 상징적이고 포괄적으로 보여 주는 지표종이다. 맹금류가 살고 있다는 것은 주변에 그들의 먹이가 되는 작은 들짐승이나 새들의 생태구조가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간월암 근처 천수만농경지에는 새나 쥐들을 노리는 매, 잿빛개구리매, 황조롱이, 쇠황조롱이, 새매와 같은 육식성 맹금류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만큼 천수만의 생태계 피라미드 구조가 건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겨울 철새가 흔한 천수만이라고 해도 효과적으로 탐조할 수 없다면 기분 좋은 생태모니터링이 될 수 없다. 저자 김재일 선생은 행복한 철새 탐조를 위해서는 탐조시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새의 모양이나 색깔 구분이 쉽지 않아서 탐조의 즐거움이 반감되므로 피하고, 바람이 심한 날도 역시 피하라고 조언한다. 하루 중에는 인적이 드문 아침과 저녁을 권한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오리류는 한낮에는 낮잠을 자는 습성이 있어 만나기 어렵고, 나들이 나갔던 새들도 저녁 무렵이 되어야 돌아오기 때문이란다. 해가 저물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다 보면 하늘을 가득 메우는 철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겨울철 천수만이다.

저자 소개-김재일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40대 초반에 문화 및 환경 운동을 시작했으며, 사찰생태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 ‘생태’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부터 환경단체 ‘두레생태기행’을 만들어 이 땅의 산야에 두루 발자국을 남기며 생태기행중이다.

현재 사찰생태연구소 대표, 두레생태기행 회장, 두레문화기행 회장, 숲해설가협회 공동대표, 국립공원위원회 위원, (사)보리방송모니터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2008년 교보생명문화환경상(특별상), 제3회 서울시 환경상(단체부문)과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제18회 불이상과 제3회 대원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생명산필』, 『생태기행(전3권)』, 『서울생태』, 『현장학습여행(전2권)』, 『숲이 희망이다(공저)』, 『전통생태학(공저)』, 『우리 민속 아흔아홉 마당(전2권)』 등이 있다.


<출처 : 불교닷컴 3월 19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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