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푸른 청년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이다. 어떤 책을 보아도,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는 종교인을 찾아가 묻고 또 물어도 도대체 명쾌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찾아간 강연회에서 만난 회색옷의 스님이 그 답답했던 숨통을 단박에 터버렸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난 단지 모를 뿐’이라는 것, 그것을 알고 나면 세상 모든 것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건 압니다. 우린 저기 날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새를 ‘볼 뿐’입니다.”넉넉한 웃음을 지닌 그 스님은 짧은 영어로 끝없는 의문의 물꼬를 터주었다. 그 길로 눈 푸른 청년은 스님을 쫓아 미국 프로비던스 선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1994년 청년은 ‘청안(淸眼)’이라는 법명과 함께 비구계를 받고 스님이 됐다.
그 눈 푸른 스님이 책을 냈다. 제목은 『마음거울(Mind Mirror)』. 지난 2007년 발간된 『꽃과 벌』에 이어 두 번째다. 헝가리 출신으로는 최초로 한국불교의 계를 받은 청안 스님은 이미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체코, 폴란드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국불교의 지혜를 알리는 전법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번에 나온 『마음거울』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 각지에서 열린 법회를 통해 청중들과 나눴던 문답들을 추려서 담아낸 법문집이다.
청안 스님의 법문은 본래 쉽기로 유명하다. 질문자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 어려운 경구를 인용하기보다는 스스로가 답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대기설법의 형식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이 책에선 질문을 던지는 청중들도 만만치 않다. 묵은 의문들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되어 스님에게로 던져진다. 자유롭지만 분석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유럽인들의 특징이 가감 없이 엿보인다. 서슬 푸른 질문 공세에 스님은 절대 어려운 문구를 동원하며 도망가지 않는다. 마치 경지를 넘어선 고수와 같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들과 표현법으로 질문들을 받아낸다.
청안 스님은 “스승이 해야 할 일은 배우는 이의 마음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청중의 질문에 답을 해주며 거울을 보여주듯 상세히 그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숭산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청안 스님은 그렇게 수많은 문답을 통해 청중들에게 ‘마음 거울’을 선사했다.
이 책에는 치열한 문답 공세가 이어지는 뜨거운 현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스님은 ‘마음 거울’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가슴 속 의문을 풀고 우리가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으면 했다. 그것이 바로 스님이 세상에 『마음거울』을 내놓은 이유다. 1만2000원.
<출처 : 법보신문 5월 7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