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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음반/서적
   고은 시인의 내공 ‘허공’으로 승화하다 [불교도서] 2009-01-08 / 4409  

 

시집 ‘허공’ 창비서 펴내



“지난날의 폐허에서 시작한 내 시의 엉터리는/ 벌써 50년이 되어갑니다/ 내 또래들 남북의 절반이 죽고/ 나는 술집 탁자 위에서 자다가 떨어졌습니다/ 어느날 밤 내 또래의 귀신들 몇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 시인이냐?/ 나는 비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부인하였습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내가 진짜 시인이라면 세상의 한 모서리가 왜 이 지경이겠느냐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반세기 역정을 시로 채운 시인 고은(75. 위 사진)이 등단 50년을 맞아 펴낸 시집에 실린 ‘어떤 신세타령’이다.

 

시와 함께 반세기 지내온 ‘老시인 삶’ 오롯

책 곳곳 ‘詩쓰기 초심으로 가자’ 열정 담겨

  

그는 그토록 아득한 50여년을 ‘이슥한 달빛에도 숨을 칼날들이 엇갈려 있는 극단과 극단의 일상’이었다고 고백했다. 글벗 수동이와 함께 망건 쓴 훈장의 고린내 나는 방에서 뫼산자 내천자를 배웠고, 머슴 대길이 아재로부터 밤마다 장화홍련전의 언문을 몰래 배웠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서 만난 일본처녀 나까무라 요네 선생님은 아름다운 자태로 매일 정오마다 천황폐하가 사는 쪽을 향해서 요배를 했다. 그러다 해방의 날이 강도처럼 왔고 너도나도 강도가 되어 날뛰었다. 국문을 아는 아이는 초등학교 삼학년 아이들 중에 혼자였고, 그 국문이 운명의 시작인 줄 미처 몰랐다고 읊조렸다. 그렇게 “덩달아 시인이 되어버렸다”면서 ‘신세타령’을 한다.

 ◀고은 시집(창비) ‘허공’ 표지사진.

티베트 라싸에서 만난 늙은 거지 이야기다. 제목은 ‘라싸에서’. “다 쭈그러져/ 누런 이빨 두어 개 남은 것으로/ 이이이이 하고 웃어 보이다가/ 딱 한마디/ 한푼 줍쇼/ 따위가 아니라/ 어렵쇼/ 어렵쇼/ 그런 시시껄렁한 구걸이 아니라/ 어렵쇼/ 어렵쇼/ 당신께서 가장 높으십니다.”

시인은 늙은 거지의 ‘감로법문’에 그만 “내 어설픈 뜨내기 넋이/ 거기서 꽉 막혀/ 놀라 깨어나 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택도 없는 이 존대를 받고 황은망극하여/ 어찌 한푼의 적선으로 답하겠습니까/ 그래서리/ 모택동 초상이 박힌 지폐 한 장을/ 얼른 드리고 그곳을 떠나버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인은 생각했다.

“생각건대 나 또한/ 거지 중의 상거지임에 틀림없습니다/ 시의 한구절을/ 시의 한구절과 한구절 사이의/ 빈 데를/ 그제도/ 그 이튿날에도 얻어보려고/ 안 나오는 젖 빨아대며/ 이 꼭지 저 꼭지 배고픈 아기 주둥이 파고들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기를, “애면 글면/ 구걸해오기를/ 어언 오십년이 이르렀습니다…”

시인 고은의 50년 삶은 시집 제목 ‘허공’처럼 느껴진다.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허공은 모든 정형화되어 있는 것들을 불식시키고 수렴하는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하는 시간이다. 시 ‘허공’에서 그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를 지나, “그냥 바라보게”라고 외치듯, 허공은 “밖은 텅 비었고/ 안은 텅 차있는” 공간이자 무한가능한 시간이다.

일찌감치 시인 고은은 시를 두고 선(禪)을 이야기했다. 1961년 신구문화사가 발간한 ‘한국전후문제시집’에서 고은은 ‘시의 사춘기’에서 선의 불립문자와 문학과의 관계를 이같이 피력했다.

“선에서 고정된 것은 죽은 것이다. 문자로써 표현했을 때의 그 문자는 죽은 것이다. 그러나 고정된 문자가 표현하는 생(生)의 내용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의 유동(流動)을 의미한다. 여기서 선과 문학이 맺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문자에 불관언(不關焉)하는 역대 선사들도 다 시로 그들의 도(道)를 이루지 않았던가.”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고은의 시인으로서의 일생은, 비록 미구에 승복을 벗기는 했으나, 언어를 통해 언어도단의 경지를 성취하고자 하는 구도행(求道行)의 일생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 ‘인도양’에서 시인은 시쓰기의 근원으로 돌아가 초심으로부터 재출발을 결의하는 비장함마저 깔려 있다. “운다// 이 멸망같은 인도양 한복판을 벗어나며/ 지난 오십년을 운다// 칠천 톤 참칫배 뱃머리로 운다// 엉엉 울음 끝/ 먼 마다가스카르 수평선을 본다// 어느새/ 시뻘건 일몰/ 어서어서 앞과 뒤 캄캄하거라.”

시인은 시집 맨 끝말에 “내 여생의 숙주(宿主) 역시 변함없이 시이고 시와 시의 외부이다”라고 뱉었고, 시집에 담긴 마지막 시 ‘한 충고’의 끝구절에 이렇게 적었다.

“그대의 시 벌벌 떨며 막 태어나 혼자이거라.”

<출처 : 불교신문 1월 8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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