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신문사 종교기자들이 중국 선종사찰순례를 다녀온 기록을 엮은 것이다. 2007년에 ‘선(禪)의 원류를 찾아서’와 2008년에 ‘간화선 순례’를 주제로 중국 선종사찰을 답사하였다. 선승 고우 스님의 안내로 불자들이 동행하였는데, 여기에 일간신문 종교 기자들이 취재차 함께하였다.
모두 20여 곳의 사찰을 답사한 기자들은 각자 자신의 안목에 따라 한국에 전해졌던 중국 선(禪)의 역사, 그리고 아직껏 남아 있는 문화에 대해 글로 낱낱이 풀어놓았다.
최근 간화선에 대한 열기 고조와 이에 따른 중국 선종사찰 순례가 빈번하다. 이 책은 또 다른 ‘순례’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선(禪)은 나를 찾는 여행이라 한다. 많은 조사 선지식들도 마음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험난한 구도행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를 바로 보아 평안을 찾았다. - 후기 중
선(禪) … 그리고 눈 밝았던 스승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십수 년 전부터 인도를 찾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급속히 늘었다. ‘명상’이나 ‘느림’을 찾아 떠난 이들도 많았지만 꽤 많은 숫자가 부처님이 탄생하고 열반한 유적지를 찾던 스님과 신자들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이 하지 기간이면 메카나 메디나에 수백만 명이 운집하고 유대교나 기독교인들이 오순절에 앞을 다투어 예루살렘 거리를 가득 메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풍광이 인도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오히려 중국을 방문하는 스님과 신도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3개월 동안 선방에만 앉아 참선에 들었던 스님들도 만행을 할 때가 되면 ‘중국’을 꿈꾼다.
왜 중국인가?
이런 ‘유행’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선(禪)불교가 가지고 있는 사자상승이라는 독특한 전통 때문이고, 또 하나는 한국불교의 법맥이 중국에 바로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30년 전부터 사찰 복원에 열심이었던 중국 정부의 노력 때문이기도 하다.
1. 부처의 위치에 버금가는 조사(祖師) 선(禪)은 마음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연유로 선의 가르침은 문자밖에 존재하며(敎外別傳), 오직 스승과 제자 사이에 마음과 마음을 통해(以心傳心) 전해져 왔다. 때문에 선가(禪家)에서는 스승에서 제자로 법맥이 전해져, 제자가 이를 수지하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스승의 위치는 부처님에 버금가는 정도로 높다. 이런 전통은 스승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을 세우거나 스승이 머물렀던 사찰이나 토굴을 방문하는 문화를 남겼다.
2. 한국 선불교의 뿌리인 중국 선사들 선은 석가모니부처님 이래의 인도불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오늘날 전해지는 선불교는 중국 선종이 이룩한 사상적 성과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선승들은 자신들의 먼 스승 중국을 고향처럼 동경하기도 한다. 때로 몽둥이질(棒)을 해대고 고함(喝)을 치며 멱살을 잡고 내동이 치는 스승이지만 결국 언어의 길이 끊어진 자리를 가리키기 위한 방편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자취를 또 찾는 것이다.
3. 복원에 한창인 중국의 선종 사찰들 현재 중국은 세계의 방문객들을 겨냥해 대대적인 사찰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20여개의 사찰 중 대부분이 1980년과 1990년을 거치며 복원된 것들이고 아직도 공사가 한창인 곳이 많다. 때론 중국인의 상술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지만 폐허를 방문하는 것보다는 유쾌한 느낌이 분명하다.
이런 연유들로 최근 중국 선종사찰을 방문하는 이들은 끊임이 없다. 이에 발맞춰 중국불교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부터 중국불교 미술을 알려주는 책들이 계속 출판되고 있고 또 중국 선불교와 그 유적지를 소개하는 책들도 심심치 않게 출간되고 있다.
일간지 종교 담당 기자 - 보고 듣고 느끼다
이 책은 신문사 종교기자들이 중국 선종사찰순례를 다녀온 기록을 엮은 것이다. 2007년에 ‘선(禪)의 원류를 찾아서’와 2008년에 ‘간화선 순례’를 주제로 중국 선종사찰을 답사하였다. 선승 고우 스님의 안내로 불자들이 동행하였는데, 여기에 일간지와 통신사 종교 담당 기자들이 취재차 함께하였다.
기자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매체에 중국 선종 사찰을 답사한 이야기를 실었고 다시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각자의 기사를 보충하고 재편집했다.
기자들은 일간지의 ‘종교’ 지면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기자답게 종교와 불교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안목을 가지고 독자들을 중국 선불교의 세계로 안내했다.
달마에서 혜능으로 이어진 선불교의 초기시대 그리고 대혜 종고와 고봉 원묘에 이르러 선불교의 꽃을 피운 간화선의 세계까지 그 역사를 지면마다 풀어놓았고 선사들이 제시한 화두를 다시 세상에 펼쳐놓고 있다. 독자들은 선사들의 행적과 선문답 사이를 오가며 중국에 선불교가 뿌리내리게 된 이유와 그것이 한국에 전해지게 되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선불교의 자취와 그 풍광을 소개하면서 또 다른 ‘순례’를 꿈꾸는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답사기나 여행기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 순례기이자 구도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순례를 다녀온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생각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는 ‘나’ 였다. 쑹산 소림사에서 조계산 남화선사까지를 돌아보며 머리로만 받아들인 여섯 조사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가늠하고자 애써도 보이는 것은 손가락 뿐, 달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리라」 중 (김종락)
위의 글처럼 누구나 ‘안목’을 갖고 중국의 선찰(禪刹)을 방문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것임을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자료 - 인도 그리고 중국으로 떠난 사람들
역사적으로도 부처님이나 선사들의 발자취를 찾는 일은 쉼 없이 이어져왔다. 그리고 그런 발자취를 찾는 것이 불교에서는 또 하나의 수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인도나 중국을 찾는 승려들이 많았다.
4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천축(인도)을 찾았던 중국, 한국, 일본의 승려는 후세에 이름이 전해진 사람만 해도 169명에 이른다.
6세기에서 10세기 경에는 한국의 승려 약 1천여 명이 중국으로 구법 순례를 떠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조선조에 승려가 천민으로 전락하며 국경을 넘는 일이 힘들어지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동안 국교가 단절되어 중국행이 좌절되었지만 얼마 전부터 중국 방문이 자유로워지면서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인 중국의 선사들 수행처를 찾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 역시 이런 순례자들을 위해 사찰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기도 하다.
< 책 속으로 > 혜능의 ‘16년 실종사건’이 해결된 현장, 6조의 전법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장이 바로 광저우 시내의 ‘광효사(光孝寺)’이다. 시내에 있는 탓인지 사찰 내에는 스님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참배객과 관광객이 많아 활기가 넘쳤다. 참배객들이 사르는 향(香) 연기가 사찰 경내에 가득했다. 순례단을 안내한 안내원은 “물가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저우는 심천(深川)과 함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상징하는 도시다운 모습이었다. 거리엔 최신형 BMW와 벤츠 등 독일제 세단이 즐비했고, 시민들의 행색도 서구 어느 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1300년 전의 모습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년 동안 스스로 실종상태를 만들었던 혜능 스님이 모습을 드러낸 곳이 왜 하필 광저우였는지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듯했다.-본문「바람이 움직인 것인가 깃발이 움직인 것인가」 중
큰스님들이 입적하기 직전, 제자 스님들은 조용히 묻곤 한다. "스님 여여(如如)하십니까?" 불가에선 입적 순간을 퍽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자세로, 어떤 말을 남기며 육신을 벗는지 말이다. 이유가 있다. 살아서 든 자리에, 죽어서도 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여(如如)함'의 한쪽 '여(如)'는 삶에, 또 다른 쪽 '여(如)'는 죽음에 걸치고 있다. 그 사이에 간격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본문 「내가 가는 곳을 안다면 울지 않을 것이다」 중
순례를 마칠 즈음 고우 스님은 순례단을 향해 “왜 선(禪)을 공부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순례단원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돈을 꼽고, 또는 집을, 혹은 명예와 지위를 꼽기도 한다. 고우 스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은 출가 전 한 나라를 물려받을 왕자로서 이 모든 조건을 가졌지만, 밖에서 오는 그런 행복은 밖의 조건이 충족될 때만 있는 그런 것임을 간파하고 출가했던 것”이라면서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매일 매일 행복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선(禪)이라고 말했다. -본문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한꺼번에 부서지리라 」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