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바치지 않았다면 남의 영혼이 흔들리기를 바라지 말라.” 걸레 스님 중광, 작고시인 천상병과 함께 우리 시대 마지막 기인으로 불리는 사람. 사흘 밤낮을 술에 취해 있었고, 개집에서 잠들며 스스로 집안에 교도소 철문을 달고 세상과 단절한 채 글을 쓰는 사람. 그러나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라디오 DJ,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무릎팍 도사’, ‘네이트 CF’에서 유쾌, 상쾌, 통쾌한 언행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
소설가 이외수(63). 꿀 같은 문장을 위해 ‘원고지 기생충’도 마다 않는 그는 문학적인 삶과 예술적인 사랑의 조화로운 만남을 염원하며 감성마을 촌장으로 자연을 벗 삼아 사랑과 감성을 읊조린다. 그는 30년이 넘는 창작의 고해 속에서도 순수에의 열망, 인간으로서 최소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영혼 바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감성불패라는 ‘칼’을 품고 ‘하악하악’ 숨을 몰아쉬며 ‘들개’처럼 세상을 방황하는 이외수의 감성과 소통, 행복의 열쇠를 훔치고자 12월 22일 강원 화천 감성마을에 잠입했다. 계속된 강추위로 감성마을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소설가 이외수의 손은 따뜻했다. 글과 소문으로 마주했던 기이한 행색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엎드려 글을 써왔다. 허리는 고장 난지 오래고 왼쪽 눈은 비문증이라는 시력 저하증에 걸려 수정체가 파괴됐다. 네 번의 폐결핵으로 폐 한 쪽은 거의 없는 상태다. 소위 ‘맛이 갔다’. 영하의 추위에 잠식당한 날씨 탓에 건강부터 물었으나 오히려 글쟁이에게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절의 생명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봄, 여름, 가을과는 어울리고 싶은 충동을 못내 주최할 수 없는 모양이다. 긴 겨울은 한 걸음 떨어져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곳은 겨울이 7개월입니다. 부지런한 놈도 게으른 놈도 먹고 산다고 마을 사람들이 얘기하죠. 5개월만 일하면 되니까. 자유와 사색의 시간이 길어져 글쟁이에게는 좋습니다. 술, 담배는 끊었습니다.”
불교, 옥토 만드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정토 일궈야
열정의 소용돌이에 파묻혀 사는 대학생들이 도인 같은 그를 왜 문인 1위로 꼽았을까. 왜 매력을 느끼는 지 답은 간단하다. 소통. 두 글자다. 그는 10대의 언어로 10대를, 20대의 언어로 20대를 타이른다. 최근에는 팬들과 트위터(140자 까지만 쓸 수 있는 네트워킹 서비스)를 통해 100문 100답으로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뽐내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로맨티스트 인가”라는 질문에 “안티들에 의하면 ‘노망티스트’”라고 답하거나 “5분 후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면”이라 묻자 “개그콘서트 ‘할매가 뿔났다’의 저승사자를 캐관광시키는 장동민을 부르겠다”고 재치 있는 답을 내놓았었다. 그렇게 그는 인터넷으로 젊은 세대와 꾸준히 교류하며 『하악하악』, 『청춘불패』로 시대를 어루만지며 가히 신드롬을 일으켰다. 일주일에 평균 200명의 사람들이 오직 그를 만나기 위해 화천 감성마을을 찾는다.
이 같은 현상을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삼통의 사건’이라 칭했다. 첫 번째는 세대의 벽을 넘는 소통이다. 환갑을 넘긴 소설가가 인터넷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급기야 공중파 라디오를 진행하는 한편 긴 머리를 찰랑찰랑 휘날리며 CF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 낯선 풍경이다. 두 번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을 넘는 소통이다. 아날로그의 인간성, 오래 묵힌 고통과 성찰의 언어, 인간과 사물을 진실의 눈으로 대할 때 빚어지는 교감을 디지털이라는 새 그릇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고통과 상처’의 진지한 소통이다. 가난의 냄새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만 이를 바탕으로 예나 지금이나 ‘하악하악’ 가쁜 숨을 내몰아 쉬면서 낮은 포복으로 쓴 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잡다하게 남들 하는 거 다합니다. 게임은 요새 안 해요. 눈도 나빠지고 거기에 집중력을 쏟기에는 체력도 딸리고 재미가 예전만 못합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위닝 일레븐 등 54세 때까지 대학생들이 제게 졌어요.” 소통의 열쇠는 그 뿐만 아니다. 감성 코드였다. 만물의 본성인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껴야하고 그것이 서로 교류 할 때 소통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바로 감성이다.
“부처님이 연꽃을 드니 가섭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염화미소라 하지요. 솔직히 전 꽃을 들었을 때 별 뜻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그냥 말씀 하셨어도 ‘야, 예쁘지’라고 하셨을 거예요. 가섭도 그냥 ‘예, 예뻐요’라고 웃은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아름다워 하는 것, 이것은 세상 만물과 합일하는 지름길입니다. 소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양쪽이 다 열려 있어야 하는 법이죠. 제가 알기로 지구상에서 사람만 닫혀 있어요. 먼저 아름다운 것을 보여줘야 상대가 가섭처럼 웃지 않을까요?”
생명, 아니 삼라만상에 대한 그의 애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에겐 지렁이가 ‘싸부님’이자 존경의 대상이다. 생명을 아름답게 여기고 애정을 갖는 자체가 소통의 시작이자 감성의 씨앗이었다. 그는 지렁이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징그럽다’가 된 이유를 육안(肉眼) 탓이라고 말한다. 흉측한 겉모습만으로 판단해 예뻐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귀찮고 하찮으며 징그러운 존재로 취급받는 게 마치 저 같아 변호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졌지요. 지렁이를 찾으니 아리스토텔레스가 관계어로 나오더군요. 그는 지렁이를 ‘위대한 대지의 창조자’라고 썼습니다. 사실 지렁이 한 마리가 1년 동안 먹고 토해낸 흙이 10톤입니다. 어떤 박토, 산성토양도 지렁이가 먹고 토해내면 옥토로 변하죠. 왜 위대한 대지의 창조자인지 알게 됐습니다. 예쁘고 존경스럽지 않나요?”
글을 쓰는 작가 역시 원고지를 경작하는 지렁이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원고지 자체를 기름진 토양으로 만들어 어떤 언어를 심더라도 그 수확이 독자로 하여금 삶의 질을 높여주고 정신적 건강을 고양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종교의 본질은 자비 그리고 사랑입니다. 이를 실천하려면 베풀어야 하는데 안 베풀고 깔고 앉아 있습니다. 초파일에 절에 가보면 등이나 기와에 모두 자신이 잘 되고자 하는 일만 써 있습니다. 정부가 비록 복지예산, 교육예산 줄인다며 몰인정한 정치를 펴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안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불교만 가지고 있는 병폐는 아닙니다. 물질의 힘이 종교의 힘인 양 착각하고 신도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하면 안 됩니다. 종교적 본질인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고 보여줘야 합니다. 뭘 주겠단 소리 않고 달라는 종교는 사이비입니다.”
그가 쓴 『감성사전』중 그가 정의한 ‘촛불’이란 단어의 의미는 종교는 물론 측은지심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그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가섭이 들어 올린 한 송이 연꽃이다. 어둠 속에 벙그는 부처님의 미소다. 살이 녹고 뼈가 타서 적멸의 빛이 된다. 중생들은 대개 자신들이 촛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살을 녹이고 뼈를 태우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으므로 아직도 세상에는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그는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가 옥토를 만드는 지렁이처럼 사바세계를 정토로 일궈야 사회에서 존재 가치가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지렁이가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무방비 상태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이 생명을 존속하기 위해 방어나 공격 수단으로 발톱, 이빨, 독침, 보호색을 가집니다. 그러나 지렁이는 하늘을 나는 새, 물고기, 심지어 개미까지 공격하지만 꿈틀거리는 게 답니다. ‘조금만 남겨 달라’는 것이지요. 몸이 조금만 남아도 살아남습니다. 꿈틀거리지 않는 존재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뼈와 살 태우지 않는 촛불은 어둠 못 밝혀
4대강 사업, 상생없이 사람만 살자는 범죄
‘싸부님’ 지렁이에 대한 연민과 자비, 사랑은 그에게 지렁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연민과 자비, 사랑을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이유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종교는 물론 사람 역시 만물을 그리 대해야 감성이 싹 트는 법. 도롱뇽과 사람의 생명 무게는 평등하다는 지율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함부터 버리라고 충고했다. 『하악하악』 등에서 생명에의 연민이 글로 아로 새겨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만물의 자물쇠를 여는 것은 자비와 사랑입니다. 아름답게 보고 느끼는 것이죠. 머리에 있는 지식을 가슴으로 끌어내려 지혜를 만들고, 이를 타인에게 줄 수 있을 때 자비가 됩니다. 삼라만상과 나를 동일시 할 정도,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하는 정도에 이르면 가슴이 발효된 사람이에요. 이기심과 아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생존은 경쟁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은 모두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뭇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얼마 전 자신의 트위터에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란 질문을 올린 뒤 “바둑돌, 예수님, 남근, 대한민국 4대강”이라고 답하며 4대강 사업을 비판했다. 그 비판에는 상생이라는 화두가 녹아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가 마치 피부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악성 무좀균 같은 존재 같습니다. 사실 자연 쪽에선 사람은 불필요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서로 소중한 존재여야 합니다. 이것이 상생이고 조화입니다. 그것을 깨뜨리고 결국 남는 게 돈입니까? 상류층만 움켜잡고 잘 먹고 잘 사는 돈은 추악한 욕망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산은 우뚝 솟아서 침묵을 안고 있어야 산다운 것이고, 강은 울면서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다다라야 강입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강과 산에 내밀히 깃들어 사는 지 살피는 눈이 필요합니다. 단지 사람만 살기 위해 산을 뭉개고 강을 가로 막는 것은 범죄입니다.”
삼라만상에 대한 연민. 그것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삼라만상으로 다시 흐를 때 감성이라는 깨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예뻐하는 지혜를 가진 모든 생명은 하늘 아래 존귀하리라. 그가 『하악하악』에 적어 놓은 글귀는 감성의 정수를 옮겨 놓았다. “가을이 되면서 계곡의 물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계곡에게 물었더니 작은 풀벌레들이 짝을 부르는 소리가 멀리까지 잘 들리도록 숨죽여 흐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흔히 이외수의 장편소설을 시기적으로 두 개로 구분하곤 한다. 문단에 이름을 알린 『꿈꾸는 식물』을 비롯해 『들개』, 『칼』 이후 10년 칩거 끝에 내놓은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괴물』, 『장외인간』의 작품 세계는 공백기 전 소설과 다르다. 비루한 현실에서 인간의 한계를 고민하는 초기 작품들 속 화자들은 공백기 후 소설에서는 선계와 환상의 세계를 통해 해답을 찾아 나선다.
“소외하고 방황하고 절망하는 것은 누구나 당면한 현실입니다. 대변하고 싶었죠. 정직하게 저의 또 다른 모습을 재창조해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니 전부 소외되고 방황하고 절망하고 자살하더군요.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을 모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수하늘소’를 기점으로 동양 철학을 바탕에 두고 삶의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우주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탐구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어 본성의 자리에서 현상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의 글은 ‘세상이 썩어문드러지더라도 너만은 절대 썩지 말고 영악스럽게 글을 쓰도록, 그러나 절망하거나 요절하지는 말도록. 마침내 나와 나의 언어들이 아름다운 비극으로 남아서 순수,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눈물이 되’는 선혈 그 자체였다. 데뷔 때부터 그는 장편 하나를 쓰는데 평균 4~5년이 걸렸다. 오죽했으면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들끓는 성욕을 끊으려고 돌로 자신의 성기를 짓이기는 수도자의 처절한 모습”이라고 비유했을까.『괴물』같은 경우 첫 머리 400매를 40번이나 바꿨다는 일화는 끔찍한 집필 습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글에서 바탕을 이루고 그가 움켜잡은 감성이란 도(道)는 지독한 집필 과정과 언어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삼라만상을 감성의 눈으로 보고 느끼며 얻은 깨달음을 펄떡펄떡 생동하는 언어로 엮은 것이다.
“젊은 시절 내설악 산속에서 추운 겨울날 얼음밥 먹고 문장 공부를 할 때 큰 선생을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었지요. 가난이 돌 굴러다니듯 흔한 때라 먹을 게 귀한 시절, 겨울철 개구리는 영양실조를 면할 좋은 보양식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양동이, 지렁이를 들고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었죠. 계곡에 나가면 아이는 ‘여기다 대세요’라고 하더군요. 백발백중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 물으니 ‘딱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도의 경지가 아닙니까. 찍소리도 못했습니다. 딱 보면 아는 건 자연과의 ‘합일’입니다.”
생각과 마음의 차이는 확연했다. 생각은 뇌안(腦眼)의 범주고 마음은 심안(心眼)의 범주다. 삼라만상과 이분되면 생각이고 합일되면 마음이라 그는 자신했다. 주리던 시절 ‘묘사적 문체’를 탄생시킨 비화는 바로 합일에서 왔었다. 밥을 얼려 망치로 얼음을 깨고 으드득 밥을 씹어 먹으며 심안을 연 그를 범부가 따르긴 어려울 터. 그는 화택(火宅)인 사바세계에서 쉽게 감성 코드로 마음을 열고 합일을 이루는 경지를 귀띔했다.
“흥부가 다리 부러진 제비를 보고 불쌍해서 못 견디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러진 다리를 보고 부자가 됐으니 나도 제비 다리 부러뜨리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면 생각이고 욕심입니다. 욕심, 탐욕,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자연을 자주 접해야 합니다. 늘 자신의 모습을 비춰봐야 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꼭 대자연만 자연이 아닙니다. 비좁은 방안에서도 접할 수 있습니다. 조그만 화분 하나 사서 콩만 하나 심어놔도 다릅니다. 콩 한 알이 싹 트는 과정에 우주 모든 생명의 법칙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종교인의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곱씹을 줄 알아야 합니다. 돈 드는 것도 노동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즐기듯이 하십시오. 삶을 제대로 살려고 하면 생각으로 살지 말고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요. 그것이 바로 감성이자 깨달음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느끼는 삶이 행복이자 추구해야 하는 삶의 방향입니다.”
‘들개’의 마지막은 어떨까. 삶을 회향하면 묘비에 적고 싶은 말을 일러 달라 청했다. 중광 스님이 입적하기 전 찾아와 달마도 한 폭을 던져주고 “괜히 왔다 간다”라고 했던 말을 상기했다. 그가 기자에게 던진 말은 “잘 놀다 갔다”였다. 필경 놀다 간 것은 아니리라. 지금도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며 감성을 일깨우고자 노력하는 그의 “놀다 갔다”는 말은 그 치열함을 즐기고 사랑했다는 말일 터다. 독자에게 감성을 전하는 일이 행복임을 즐기는 그에게 새해를 맞는 심정을 물었다.
“자기가 새 것이라야 새해입니다. 새로 뜨는 해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날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일일시호일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날 아닌 게 없습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느끼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마음이 간장 종지만 하면 사는 것도 간장 종지 안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해는 헌 것이지만 그대는 새 것입니다.”
시인 최돈선은 “지독히 썩어가고 망그러지는 세상 한 구석에서 그래도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사랑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이외수를 회고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이 메마른 세상에서 감성 냄새를 좇아 ‘들개’처럼 킁킁거리고 있는 이외수를 그토록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소설가 이외수.『괴물』속 백정이 자신이 죽인 가축 수만큼 불상을 깎아 천불상을 조성한 것처럼 집필실에서 감성으로 21세기와 소통하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악하악’거리는 그 역시 한 마리 ‘괴물’이다. 화천 감성마을=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이외수는
독특한 상상력, 기발한 언어유희로 사라져가는 감성을 되찾아주는 소설가 이외수. 특유의 괴벽으로 바보 같은 천재, 광인 같은 기인으로 명명되며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의 세계를 구축해 온 예술가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의 힘임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나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었다. 문학과 독자의 힘을 믿는 그에게서 탄생한 소설, 시, 우화, 에세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열광적인 ‘외수 마니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원고지 고랑마다 감성의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불면의 밤을 지샌다.
1975년 「훈장」으로 데뷔한 그의 저서로는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 『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괴물』, 『장외인간』 등과 소설집 『겨울나기』, 『장수하늘소』 그리고 『청춘불패』, 『하악하악』, 『외뿔』,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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