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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바르게 행할 때 가피와 구원 찾아와”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구원을 원하면 부처님께서도 언제든지 그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문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바른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흔히 부처님 법을 바다에 비교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세계, 진리의 세계가 넓고 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바른 믿음이어야 합니다.

불교에는 수행과 구원이라는 양대 산맥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에 이러한 구원의 문제를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서 구원을 게을리 하지 말아라, 항상 중생들 속에 가서 중생의 안락(安樂)을 일깨워 주도록 하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부처님 당신께서도 “나도 나 홀로 빈한 곳을 찾아가서 내가 법을 전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부처님 당시에는 비교적 원만하게 잘 이루어졌습니다만, 부처님이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구원의 문제보다는 본인의 수행에 치중하다보니 사회를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대두된 운동이 바로 대승불교운동입니다.

대승불교운동은 개인의 수행보다는 사회적인 구원, 이웃에 대한 자비가 더 중요시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대승불교 운동이 전개되면서 몇 가지 신앙적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세음보살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자하는 관음신앙, 지장보살님을 염원함으로 해서 고통을 덜고자 하는 지장신앙입니다. 이 두 신앙이 상당히 중요한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후 더 나아가 지혜를 얻고자 하는 문수신앙, 또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보현신앙 등이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 와서 이러한 신앙의 형태가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방대해졌습니다. 흔히 잘 아시는 중국의 구화산은 지장신앙의 도량입니다. 그리고 관음신앙은 상해에서 배타고 2시간 가면 바다 위에 산과 같이 우뚝 솟아난 지역인 보타낙가산에서 믿어져 왔고, 보현신앙은 잘 아시는 아미산을 중심으로 해 전개되어 왔으며, 문수신앙은 오대산을 중심으로 융성했습니다.

어떻든 간에 이런 4가지의 신앙은 약간의 특색은 있습니다만, 간절한 서원을 통해서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중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관음신앙 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내 원(願)을 숫자로 세려고 하면 겁(劫)이 다하도록 나의 원을 헤아릴 수 없다”면서 “내가 이런 원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천억불‘이라는 부처님을 모시면서 그 원을 세워서 대청정원(大淸淨願)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원 중에 하나가 바로 ‘중생피곤액(衆生疲困厄)’입니다. 중생들이 괴롭고 아주 곤궁한 어떤 재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량한 고통이 닥쳐온다 할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중생들의 고통을 다 구원하겠다는 것이 관세음보살님의 원 중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바른 믿음을 갖고 있을 때 그러한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음신앙을 말할 때 관세음(觀世音)보살님을 관자재(觀自在)보살이라고도 합니다. 관자재보살이라는 것은 관세음보살님이 진리로서 살아가시는 모습을 표현할 때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에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님이 중생을 구원한다고 할 때는 중생의 소리를 관찰하고 그 소리를 따라서 모든 것을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관세음보살님이 소리를 본다고 할까요? 소리는 듣는 것인데, 본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염불을 하는 데 있어서는 3가지로 나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소리를 내지 않고 생각으로 염하는 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리를 내면서 염불하는 것을 ‘칭불(稱佛)’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하나 더 말하면 ‘창불(唱佛)’입니다. 창불이라는 것은 크게 소리 내면서 옆에 사람과 같이 염불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형태 중 칭불이나 창불은 소리 내서 하기에 관세음보살님이 들으실 수 있지만, 속으로 하는 염불은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의 마음을 관찰해 봄으로 해서 중생의 고통을 구원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는다고만 하지 않고 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관세음보살님의 위대한 구원과 대승불교사상은 대단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대단한 바른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바른 믿음과 동시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그런 거룩한 원을 세워서 보살도를 행하여야겠다는 서원과 발원들이 있어야 됩니다. 바른 믿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과 동시에 큰 서원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도량은‘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부처님의 큰 도(道)는 문이 따로 없어 누구든지 다 평등하게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찰을 평등의 사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무차별의 사회, 청정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을 찾는 불자들이 이러한 평등사상, 무차별의 사상, 청정의 사상을 얼마나 우리가 절에서 느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불자들이 얼마나 그것을 실천하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히 의문입니다. 우리가 병원을 찾아갈 때는 의사를 통해서 병을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병원을 찾아갑니다. 병원에 가서 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찾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불자들은 부처님을 믿어서 가피를 받는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기에 절을 찾아가고,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들게서 신앙을 가지고 염불을 하시다 보면 “부처님의 가피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꼭 병이 낫는다던가 물질이 성취되는 것만이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고, 내가 열심히 염불하는 속에 삶의 가치와 보람, 행복을 느끼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가피입니다.

염불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염불을 하는 그 자체에 큰 희열과 가치를 느낀다는데 더욱 더 깊은 신앙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염불을 계속하면 염불을 안한 사람과 다른 안목을 같게 됩니다. 즉, 어떤 일이든지 포용을 할 수 있는 그런 아량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지혜가 샘솟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가장 큰 가피이고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이 법문은 만불신문 94호(2003년 11월 1일자)에서 옮겨왔습니다.

2011-04-22 / 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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