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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도법스님 [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걸음 통해 진정한 삶에 다가서라”
5년간 전국 다니며 생명.평화 소중함 역설
“자기.지역정체성 회복 위해 많이 걸어보라”

부처님께서는 길에서 나 길을 걷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께서 길 위에 서지 않았다면, 최초의 5비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불교도 부처님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늘날 불교를 있게 한 역사적 사건 전도선언이 어떻게 시작하던가. ‘자, 길을 떠나라.’

여기 걷는 사람들이 있다. 부처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걷기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거제를 좋아한다는 두 가지다. 올해 초부터 거제시민 30여 명은 매주 일요일 만나 해안가를 걷고 있다. 이들 모임 이름이 ‘걸어서, 거제 한바퀴’다. 한번 걸을 때 평균 10km를 걷는다.

이 모임 발족식 날 5년간 전국을 도보로 다닌, 대한민국 최고의 ‘걷기 전문가’ 도법스님이 참석해 왜 걸어야하는지, 걸으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좋을 지 등에 대해 ‘법문’했다. 지난 6월21일 거제 해안가를 걷는 도법스님과 동행했다. 이날 코스는 흥남 해수욕장부터 옥포대전 전승탑까지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장목면 해안가가 주요 도보지였다. 오후3시30분 께부터 시작한 걷기는 저녁7시 다되어서야 마무리됐다. 미리 준비해 간 검정색 비닐 봉투에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담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은 즐겁게 길을 걸었다. 대부분 길이 오르락 내리락 해 쉽지 않았지만 피곤해 하거나 뒤처지는 사람은 없었다. 도법스님은 “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내가 걷는다고 운전자들을 불안케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선 안으로만 걸어야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스님은 지나가는 차를 향해 끝없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는 다른 곳보다 반응이 좋다. 아무 반응이 없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손을 흔들었을 때 반응하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기뻐한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의 기쁨이 대단하다고 한다.

장목면 대계리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 그늘 밑에서 처음으로 쉬었다. 큰 기와로 단장한 생가 옆에는 기념관 건립이 한창이었다. 스님이 일행을 향해 말했다. “쉴 때는 최대한 편한 자세로 쉬어야한다. 신발 양말도 벗고….” 5년간 전국을 도보로 다니며 깨친 경험이다. 2004년 3월부터 얼마전까지 5년간 모두 3만리를 걷고 8만 명을 만난 스님이다. 다니면서 스님은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잔디가 깔려있는 나무 그늘 아래 잠깐 몸을 쉬었다. 시민들이 제각기 편한 자세로 앉고 스님이 법문을 했다.

“길은 볼 일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혹은 어디론가 가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 아니다. 걸음이 목적이다. 그만큼 걸음이 중요하다. 걸음이 왜 중요한가.

첫째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다. 현대인들의 삶이 발전했다는데 더 복잡해지고 위험해졌다. 미래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생활이 발전하는데 행복해지지 않고 오히려 불안 초조 각박해지는 것일까. 자기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인생은 무엇이며, 내 생각은 어떻게 생기는지, 남과 다른 것은 잘 알면서 나와 내 생각은 너무 모른다. 나는 누구이며 인생은 무엇이며 내 생각은 어떻게 생기는지 등. 변화하고 발전해도 혼란 불안 모순이 확대되는 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다. 걸음을 걷는 것은 바로 이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지역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다. 서울 부산 미국 히말라야 등 다른 지역은 잘 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역 현장은 모른다. 우리 동네 우리 마을에 어떤 꽃과 나무 풀이 자라고 있는지, 우리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 마을의 생태적 가치 문화 역사적 가치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그 지역 고유의 개성과 향기를 길러낼 수가 없다. 당연히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향기가 없다. 기껏 우리 동네 회가 맛있다. 경치가 좋다 정도 말고는 없다. 이처럼 자기 정체성, 지역 정체성을 잃어서 우리 삶이 혼란 속에 빠졌다.”

조선소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차들은 여전히 빠르게 달렸다. 스님의 법문이 계속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걸음의 생활화다. 천천히 묵묵히 걸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걸으면서 살도록 돼 있다. 사실 지금은 기억 못하지만 우리는 걷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취업 대학입시 이런 것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노력했다. 그런데 어렵게 두발로 걷게 된 뒤 자라나서는 걷는 것을 포기하고 기계에 맡겨버렸다. 몸은 써야 건강하고 심신이 균형을 이룬다. 두뇌도 활발해지고 인격도 제대로 만들어진다. 지금은 전신(全身)을 쓸 일이 거의 없다. 머리와 손가락만 쓰면 된다. 그래서 모든 균형이 깨어졌다.

걸으면 첫째 자기 내면 양심 생명의 소리가 작동하는 성찰의 시간이 된다. 사람은 보고 듣는대로 간다.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매일 듣는 것이 1등, 부자타령이다 보니 우리도 길들여져서 그렇게 가고 있다. 걸으면서 자기를 성찰하면 자기 영혼, 내면의 소리, 생명의 소리를 듣게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영혼의 소리를 따라 삶이 가게된다. 성찰을 통해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자기 정체성을 보게 되고 삶에 힘이 생긴다.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조작되고 의도된 소리에 휘말리면 돈앞에 무력해진다.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기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걸음이 생활화 돼야한다. 또한 온몸을 쓰게 되고 생명력이 깨어난다.

두 번째는 지역을 알기위해서다. 차를 타고 보고 느끼는 길과 걷으면서 보고 느끼는 길은 다르다. 지금은 지구촌 시대, 세계화 시대라고 한다. 이런 때 일수록 지역 정체성이 절실하다. 자기정체성 지역정체성이 튼튼하면 외부 힘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스님이 묻고 다시 답한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 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셨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이 ‘유아독존’에 담겨있다. 그 의미는 첫째 세상 천하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가 있을 때만 세상은 존재한다. 나 없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고 추구할 수없다. 그런데 나의 존재 가치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돈 국가 권력 종교 등 다른 것에 매몰돼 있어 정작 자신은 없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의미다. ‘유아독존’은 천하에 그 어느 것도 나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다. ‘내 생명 내 안에 따로’ 있고 ‘네 생명 네 안에 따로’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그런 생명은 없다. 따로 분리돼 존재하는 것은 없다. 만약 내 생명이 독립된 완성체라면 밖에서 물 산소가 들어오지 않아도 살 수 있어야한다. 나는 밥 물 산소 태양 부모 이웃 자연 등과 관계하며 존재한다. 그래서 온갖 생명은 나 아닌 것이 없다.

세 번째는 이 세상에 내 생명과 공동운명체 아닌 것이 없다. 관계 맺고 있는 것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며 부처님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답게 살라는 것은 귀한 것을 귀한줄 알고 귀하게 대하며, 고마운 것을 고마운 줄 알고 고맙게 대하라는 것과 같다. 나를 남편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아내를 존중하고 고맙게 여기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남성성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성에 의지해서 남성성이 존재하며 나는 너를 의지해서 존재하고 남자는 여자를 그리워하고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한다. 인간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서로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것이 고맙고 귀한 것이다. 그래서 존중하고 배려하고 고마워한다. 이것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 답게 사는 것이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귀하고 고맙게 여기며 부처님, 하나님 처럼 대하면 저절로 삶이 아름다워진다.”

30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법문은 군더더기와 반복이 없이 간단 명료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걸음에 이처럼 큰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고 놀라워했다. 걸으면서 자기와 지역의 정체성을 고민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에 더 열심히 걸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자신과 이웃의 삶과 어우러짐에 대해 성찰할 때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고 진정한 삶이 다가온다는 스님의 가르침은 화두가 돼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출처 : 불교신문 7월 4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9-07-08 /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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