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찬술설 제기한 최연식 교수 3년 만에 선봬 현전 필사본에 추가 발견 2편 포함, 11편 수록
백제에서 찬술된 한국 최고(最古)의 문헌으로 추정되는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 이하 사론현의)> 교감본이 출간됐다. 지난 2007년 독일 플라센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사론현의> 백제찬술설을 처음 제기했던 최연식 목포대 교수가 3년간의 노력 끝에 교감본을 선보였다. 최 교수는 현전하는 여러 필사본들을 비교 검토해 기존 판본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동시에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을 덧붙여, 원본에 가까운 모습으로 책을 재구성했다.
삼론사상은 인도의 중관사상을 계승발전 시킨 것으로, 중국의 남북조시대 및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후대 화엄, 선, 천태사상에 핵심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론현의>는 이런 삼론학의 주요 이론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개론서 같은 책이다. 책에는 당시 삼론학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지론학, 섭론학, 성실학, 비담학 등의 이론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해 이들 학파와 삼론학파의 사상적 차이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때문에 삼론학파뿐만 아니라 다른 학파들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중요성에 비해 책은 불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사론현의>에 대한 자료는 오직 일본에만 남아 있다. 나라(奈良)시대 사경목록에 이 책의 필사기록이 있고, 판본과 사본도 일본에서만 확인된다. 유일한 판본은 <대일본속장경>에 수록돼 있고, 사본은 교토대와 류코쿠대 도서관에 있다. 사본 모두 속장경과 마찬가지로 12권 중 7권만 남아 있고 내용도 거의 일치한다.
현전하는 자료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사론현의>는 전체 12권 23편으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속장경에는 ‘이제의’ ‘불성의’ ‘단복의’ ‘금강심의’ ‘이지의’ ‘감응의’ ‘삼승의’ ‘장엄의’ ‘삼위의’ 9편 만이 전해진다. 여기에 새로 발견된 ‘초장중가의’와 ‘팔불의’ 2편이 더해져 총 11편이 이번 교감본에 수록됐다.
이와 함께 최 교수는 ‘대승사론현의기와 한국 고대 불교사상의 재조명’이라는 제목의 해제에서 <사론현의>가 7세기 초 백제에서 찬술된 삼론학 문헌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와 찬술자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검토했다. 일본의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혜균(慧均) 승정(僧正)이 책을 편찬한 것으로 나타난다. 혜균 승정은 6세기 중국 강남에서 삼론학을 선양한 법랑스님(507~531)의 문하에서 길장(549~623)과 함께 수학했던 중국의 삼론학자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반면 최 교수는 이 책이 중국이 아닌 백제에서 찬술됐음을 주장한다. 당시 중국에 알려져 있지 않던 ‘탐라’에 대한 기록과 중국을 오로(吳魯)라고 일컫는 예가 드문 것으로 봐 중국에서 쓴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찬술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구절에서 보희연사와 기원운공 등 스님이 등장하는데 주목해,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목간에서 보희사라는 글씨가 발견되면서 보희사가 백제의 사찰임을 확신했다.
즉 최 교수는 <사론현의>가 혜균스님이 중국에서 유학해 수학한 내용을 본국 백제에 돌아와 정리한 것으로 이후 신라와 일본에 영향을 미쳤던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와 관심에서 멀어져, 많은 결락과 오탈자 등으로 본래 모습을 잃게 됐는 것이다.
최 교수는 “<사론현의>을 비롯해 혜균스님의 저술은 삼론학과 백제 불교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며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불교학의 사상적 기초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교감본은 망각과 무관심 속에 잊혔던 <대승사론현의기>를 다시 일깨워내는 시도”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검토하다보면 잘못 쓴 내용들이 빠짐없이 올바르게 읽혀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