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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림원 정현스님 [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매일이 같은 날이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정현스님.


8월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전국의 고속도로와 국도가 피서 차량으로 정체가 가중된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끊이지 않았다. 부산으로 향하는 경부와 동해안 방향의 영동고속도로는 물론 유명 휴가지와는 거리가 먼 충청도 일원 도로도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위를 피해 나온 인파는 마곡사 계곡에도 가득했다. 물과 그늘만 있으면 어김없이 차가 주차돼 있고 음식을 싸들고 나온 가족들이 계곡을 차지하고 앉았다. 양쪽 도로에 주차한 차들로 인해 2차선 도로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정도였다. 맑은 계곡은 사람들로 인해 탁하게 변했다.


“일상생활 그대로 살면 ‘날마다 좋은날’”

일상대로 살 수 없다는데서 문제 생겨
해결책은 ‘기도 많이 해 깨달음 얻는 것’


큰절은 꼭 큰 산에 안겨 있다. 큰 산은 대찰은 물론 여러 암자를 품고 있다. 마곡사를 품은 태화산 기슭에도 암자가 많다. 김구 선생이 출가를 했다고 알려진 백련암을 비롯 적지 않은 암자가 마곡사와 태화산을 더 빛낸다. 이름 있는 암자도 있지만 마곡사 종무원도 잘 모르는 이름 없는 암자와 토굴도 적지 않다. 화림원(華林苑)과 정현스님도 그 중 하나다. 마곡사 뒤편 부도밭을 지나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백련암 길을 버리고 죽림원 길로 들어 섰는데 스님이 일러주신 비슷한 ‘토굴’이 여러 채다. 빛이 바래 희미해진 ‘날마다 좋은날’ 나무 안내판이 이곳이 정현스님이 주석하는 화림원임을 말해준다. 소형차 석대 가량 주차해도 될 만한 빈터와 작은 연지(蓮池), 빨간 슬레이트 지붕 두 채가 전부다. 토굴 안으로 들어서자 선화(禪畵)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름 없이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토굴에 머물고 있지만 스님은 꽤 널리 알려진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토굴을 찾기도 했다. 향기로운 꽃은 산 속에 꼭 꼭 숨어도 그 향내가 온산을 뒤덮듯 세상과 등져 은둔해 있는 스님의 덕화는 태화산을 뛰어넘는 셈이다.

정현스님은 ‘날마다 좋은날’ 운동으로 유명하다. ‘날마다 좋은날’(一日是好日)은 〈벽암록〉 제6칙 공안이다. 운문(雲門文偃 : 864~949)화상이 대중들에게 설법했다. “15일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서 한 마디(一句) 해 보아라” 묻고는 스스로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지(日日是好日)!” “擧. 雲門垂語云, 十五日已前不問汝,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自代云), 日日是好日”

스님은 ‘날마다 좋은날’이라는 문구가 적힌 선화(禪畵)를 대중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 운동을 펼친지 20년이 지났다. 매년 1만점을 나눠주기로 원력을 세웠다. 1만장을 그리는데 꼬박 11년이 걸렸다.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직접 한 장 한 장 그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11년 째 부터는 판화로 찍어 배포하고 있다. 판화로 찍는다지만 실제는 일일이 손으로 채색을 하고 낙관을 찍기 때문에 직접 그리는 것과 다름없다. 다행히 스님의 운동 취지를 알게 된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채색을 도와 큰 힘이 된다. 모두 10만장을 배포했다.

자리에 앉자 기자에게도 ‘날마다 좋은 날’그림과 글이 담긴 흰 봉투를 선물로 주셨다. “10번 찾아오면 10번 준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게는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100장도 나눠줬다” 이유가 궁금하다. “날마다 좋은날은 누구든지 좋은날을 말한다. 기쁜날 행복한 날이다. 그래서 부처님 날이고 하나님 날이다. 왜냐하면 좋은날은 종교나 이념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마다 좋은날을 사는 사람은 없다. 부처가 돼야, 하나님이 돼야 살 수있는 날이다. 하지만 부처님 하나님이 날마다 좋은날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다.”

8월 염천(炎天)이 무색하게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찬 기운이 들어있다. 금세 땀이 식었다. 마곡사 주변과 달리 외진데다 계곡도 없는 이곳에는 인적이 없었다. 스님의 법문은 계속 이어졌다. “날마다 좋은날은 아주 쉬운 말이다. 일상 생활 그대로 살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날마다 좋은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날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그러면 날마다 좋은날이 아니다). 고통이 있든 불행이 있든 괴로움이 있든 그 자체가 날마다 좋은 날이다. 내가 가질 수 있다면 언제든 날마다 좋은날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날마다 좋은날’을 가질 수 있는가? 스님의 답이다. “기도 정진을 많이 해야 한다. 날마다 좋은날을 살 수 있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스님의 법문을 정리하면 이렇다. 날마다 좋은 날은 특별한 어떤 날이 아니다. 휴가 가서 며칠 푹 쉬며 정신 차려야지 하며 평소에 스트레스 받아 정신없이 사는 일상처럼 일 따로 휴가 따로, 좋은날 나쁜 날 따로가 아니라 늘 같은 날이라는 의미다. 이런 의미도 있다. 매일이 같은 날이니 ‘지금 ’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천년을 하루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루를 천년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모두 자신이 마음 먹고 실천하기에 달려있다. 그러니까 정현스님이 나눠주는 ‘날마다 좋은날’은 선사가 제자들에게 들려주는 화두인셈이다. 그 화두는 곧 제 정신 갖고 제대로 살아라는 경책이다. 그림과 함께 나눠주는 이유는 늘 가까이 하며 새기라는 의미다. “그냥 말로 하거나 종이에 써서 주면 잘 챙기지 않는다. 그런데 집에 걸어둠직한 그림을 그려 주면 늘 바라보게 되고 그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림 속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문수동자상, 공명조와 물고기다. “문수보살은 원래 사자를 탄다. 사자는 진면목을 말한다. 소를 태운 문수는 아직은 진면목을 찾지 못한 즉 지혜를 증득하고 자기를 깨닫지 못한 미완성의 문수를 뜻한다. 곧 우리 자신이다. 참 문수를 찾을 때 사자가 돼 하늘로 올라간다. 이는 곧 마음의 자유 평화 행복을 증득했음을 말한다. 모든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 날아간다는 의미도 지닌다. 공명조는 머리가 둘 달린 새다. 한 머리는 깨어있고 한 머리는 자고 있는 새다. 깨어있는 머리가 어느 날 맛있는 과일을 혼자 먹었다. 자고 있던 머리가 일어나 이를 알고는 괘씸하게 여겨 독풀을 먹었다. 당연히 두 머리다 죽었다. 어리석은 중생을 일컫는다.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잔다고 해서 깨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음의 눈을 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타는 동자나 공명조, 물고기 모두 날마다 좋은날의 취지를 담고 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를 증득하면 곧 날마다 좋은날이다. 화를 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상대방을 죽이겠다고 독풀을 먹어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공명조와 같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 는 기약은 없다. 몸과 마음을 쉬겠다고 떠난 휴가지는 지옥과 다름없다. 내가 지금 당장 욕심 부리지 않고 상대방을 탓하지 않고 화내지 않는다면 바로 행복이며 가장 최상의 쉼(休)이 된다.

스님은 왜 이 운동을 펼치는가. “산중에 혼자 살면 편하다. 하지만 중생들 아픔 외면하고 수행한 것 회향하지 않으면 수행자에게 그것은 무위도식과 다름 없다.” 스님이 게송을 읊었다.

‘날마다 좋은날’

“머리 둘 달린 어리석은 공명조

참담한 죽음은 눈을 감지 못한 물고기

마음에 눈을 떠 문수동자는 지혜를 얻고

진면목의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분다

환희의 노란 연꽃

금빛 광명 속에 피어나

사바의 고뇌를 불사르니

자유와 평온함을 얻어

날마다 좋은날

우담바라로 피네.”


■정현스님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57년 지리산 화엄사에서 전강 대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남원 실상사 주지를 역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포교했다. LA 오렌지 카운티 정혜사 주지, 오래곤 포트렌드 보광사 주지, 덴버 용화사 주지를 지내고 캘리포니아 금강선원을 개설해 원장을 역임했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를 역임하고, 20여년 전부터 마곡사 뒤 태화산 중턱에 토굴 ‘화림원’에서 수행하며 ‘날마다 좋은날’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세차례 선화전시회를 개최했다.


<출처 : 불교신문 08월 15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9-08-21 /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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