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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으로 엮은 ‘선사들의 화두’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원철스님 지음 / 호미


촌철살인의 묘로 선어록의 탁월한 안목과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원철스님(조계종 총무원 재정국장)도 이런 때가 있다. 언젠가 조주 선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사실. “마조선사가 ‘마씨’이길래 당연히 조주스님도 ‘조씨’려니 짐작하여 내 속가의 성씨와 같음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뒤, ‘나도 선사처럼 (120세까지)오래 살아야지’하고 운을 떼고는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 때 무뚝뚝하고 비수같은 한마디가 날아왔다. “조주(趙州)는 인명이 아니라 지명인데요.” “…….(허걱 쥐구멍이 어디야.)”

촌철살인 이야기로 담아낸 ‘현대판 선서’
“탁월한 안목이 이룬 지혜의 깨침 오롯이”


‘망신살’로 시작된 이야기는 ‘조주 선사가 오래오래 산 까닭’으로 맺어진다. 진나라 예주 방림리에서 임야사로 출가한 두 동자 중 하나가 조주 선사이고 다른이가 달정인데, 달정의 이른 죽음에 애석해한 조주 선사가 달정의 환생을 기다리느라 120살까지 살았다는 관측이다. 문원스님으로 환생한 달정이 하루는 느닷없이 개를 안고 와서 연로한 조주 선사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묻자, 조주스님은 “없다(無)”라고 단호하게 답했고 그 자리서 문원스님은 바로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에 원철스님의 상상력이 발동한다. 이런 선문답은 어떨까. “조주 선사가 오래오래 산 까닭은?” “‘조주 무자(趙州 無子)’ 화두를 만들기 위해서.” “퍽!” “몽둥이질 당해 마땅할 씰데없는 소리!”


월간 <해인> 편집장 출신인 조계종 총무원 재정국장 원철스님. 스님은 “옛 선사의 공안이 사람냄새 물씬한 일상의 이야기이자 탁월한 안목이 이룬 지혜의 깨침임을, 오늘의 우리에게 오롯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목욕탕에서 신수 대사와 혜안 국사가 법력을 시험받는 ‘해프닝’도 배꼽을 잡는다. 신수와 혜안, 이 두 큰스님 사이에 측천무후라는 희대의 여걸이 등장한다. 당시 신수와 혜안은 법력을 중원 천하에 떨치고 있었다. 무후는 두 선사 중 누가 더 법력이 높은지 시험하고 싶었다. 궁리 끝에 찾아낸 그녀다운 방법. 무후는 두 도인이 목욕할 수 있게 준비시켰다. 그러고는 아름다운 시녀들에게 목욕시중을 들게 해 ‘쇠로 만든 부처님이랄지라도 땀이 날’ 상황을 연출했다. 신수는 목욕물이 넘쳤고, 혜안은 물이 그대로였다. 측천무후는 “물이 들어감으로써 진짜 도인을 알게되었도다!”라고 말하면서 미인을 보고도 몸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부동심(不動心)의 혜안을 국사로 모셨다. 미인을 보고 몸이 움직여서 물이 넘쳤다고 법력을 낮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원철스님은 “측천보살이 제 나름의 잣대로 고승의 법력을 저울질 한 것이 기발하기는 하지만 더 깊은 곳을 보지 못한 한계는 어쩔 수 없다”고 지적하고 “아마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무나 와서 법거량을 하려고 달려드는 통에 문을 걸어 잠그는 선지식이 늘고 있다”고 꼬아 말한다.

이처럼 배꼽 빠지게 재미난 선사들의 화두이야기를 엮은 원철스님의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는 ‘현대판 선서’로 손색이 없다. 화두의 신화를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 촌철살인으로 이어지는 막힘없고 경쾌한 스님 특유의 글쓰기는 오랜 타성에 젖어 답답하게 머물고 있는 한국불교의 폐습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일침을 날리는데 한몫했다.

원철스님은 “옛 선사의 공안이 치열한 현실적 고민에서 나온, 사람냄새 물씬한 일상의 이야기임을, 더불어 탁월한 안목이 이룬 지혜의 깨침임을, 오늘의 우리에게 오롯이 보여준다”며 “천년 전의 화두들이 ‘지금 이 곳’에서 그 팽팽한 긴장감으로 살아 펄떡인다”고 말한다.

범어사 한주 무비스님은 책을 추천하면서 “이 시대의 선자(禪子)로서 선불교의 진면목을 한자락씩 끄집어내어 시대의 눈으로 보고 시대의 감각으로 살필 수 있다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며 “그리하여 작금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툭 터진 그러면서도 청량한 감로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비단 위에 꽃을 보태는 일이 될 것이다”고 평했다. 톡톡 튀고 번득이는 만화가 이우일의 일러스트도 볼거리다.


<출처 : 불교신문 08월 26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9-08-27 /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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