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내물왕 39년(394)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 창녕 관룡사. 신라시대 8대 사찰로 꼽히는 유서 깊은 도량이지만,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불상 일렬 배치에 작은 전각과 조화
거친 필치·여유있는 공간구성 특징
보물 제146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보물 제212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함께 관룡사의 소중한 성보로 꼽힌다.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을 추정되는 약사전은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전각이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특히 몇 안 되는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약사전은 절을 하기에도 비좁은 전각이지만, 내부 벽면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약사전 벽화들을 살펴보면 창방 위의 가로로 긴 화면에는 4면을 돌며 불좌상들이 정연히 그려져 있다. 모두 원형 두광과 신광을 지고 연화좌에 앉아 합장하고 있다. 광배 옆에는 각 상마다 명호가 기록돼 있는데, 53불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53불사상은 대승불교의 다불(多佛)사상 가운데 천불사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많이 신앙되는 것이다.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따르면 53불을 지심으로 경례하는 사람은 사중오역(四重五逆> 등의 죄가 모두 청정해진다고 했다. 창방위의 가로로 긴 벽면의 구조와 이를 이용해 띠를 두른 듯 불상을 일렬로 배치한 구성이 작은 규모의 전각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약사전 벽면을 메우고 있는 화조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중앙 약사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세 벽면에 병풍처럼 둘러가며 묘사된 화조화는 한 벽면을 4면으로 구획하여 모두 12면에 그려져 있다. 흔히 고승에 대한 설화나 불보살을 그리는 여느 사찰의 전각벽화와는 달리 조선후기 궁중의 장식화나 민화로 유행한 꽃과 새의 그림인 화조화를 그려 놓은 예는 매우 드문 경우다. 삼면의 벽면을 12면으로 구획 지은 화면은 흙벽 위에 뇌록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수묵 위주의 꽃과 새, 나비와 학이 노니는 정경을 그렸는데 각기 다른 주제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군자와 매화, 그리고 국화와 포도, 연꽃과 난초가 피어있는 벽화는 지나친 기교나 섬세함이 배제되었다. 다소 거친 필치와 여유 있는 공간구성, 문인취향의 수묵에 담채를 사용하는 등 조선후기 화조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