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스님은 군종교구장으로 광동학원이사장으로 교육원장으로 많은 일을 했다. 스님은 하지만 그같은 일은 업을 더 짓는 속세의 인연일 뿐 중요한 것은 본래 마음을 되찾는 것 하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 찾는 일이 살아있는 동안 가장 중요”
부처의 마음 갖게 되면 부처가 되고
중생심 가지면 중생되는 것이 ‘마음’
일면스님은 군종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군종교구장에 이어 오랫동안 맡았던 광동학원 이사장 자리도 내놓았다. 이제 공식 직함은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하나다. 해마다 가을이면 열리는 생명나눔 주최 걷기 행사를 준비 중인 일면스님을 만났다.
지난 15일 평일 오후인데도 남양주 불암사 앞에는 등산객들이 몰고 온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로 북적였다. 서울과 인접한데도 산사는 벌써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겼다.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솔바람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겼고 등산객들도 바람막이용 점퍼를 걸쳤다. 좀체 물러날 것 같지 않던 폭염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났다.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세월도 쏜살같이 지나고 있었다. 스님이 군종교구장에서 물러난 지도 벌써 두 달이 흘렀지만 스님은 여전히 교구에 관심이 많았다. 스님이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당시 친분을 맺었던 인사들과 인연의 끈을 잇고 있다. 스님은 “요즘 교구 사정이 어떤가. 떠나오고 보니 소식도 통 모르겠다”며 교구장 재임시 특별히 인연을 맺었던 법사들의 안부와 동향부터 물었다. 최근 대장급 인사에 대해서도 언급, “김태영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스님 덕분’이라며 전화를 해주셔서 아주 감동을 받았다.
임충빈 육군참모총장님이 전역을 하신다는데 더 큰 소임을 맡지 않겠느냐”며 관심을 표했다. 스님은 “교구장 자광스님이 20일 계룡대 호국사에서 열리는 임충빈 총장 환송 법회에 함께 가자며 청했다. 전임이 자꾸 얼굴 내밀면 안 좋은데 임 총장님과는 인연이 각별해 거절할 수가 없었다”며 웃었다.
스님은 평소에 “자신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군에서 20대 초반의 장병들을 향해서도 늘 이 말을 강조했다. 스님은 “군대는 계급사회다. 돈이 많고 적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계급이 모든 것을 우선한다. 하지만 계급이 인격까지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계급이 높든 낮든 마음은 같다. 마음은 형체가 없다. 그릴 수도 없다. 그래서 선사들은 마음을 허공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군대의 계급은 비교도 안될 차등이 생긴다. 부처의 마음을 갖게 되면 부처가 되고 중생심을 가지면 중생이 되는 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참 마음 진정한 자기를 찾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동안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성취해야할 숙업이다. 이 필생의 숙제는 군인들도 해당한다.
군종교구장으로 가는 곳마다 마음 자리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린 장병들이 마음과 같은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는 싫어하고 놀고 먹는 이야기만 즐겨할 것 같지만 아니다. 의외로 이 아이들이 착하고 심성이 곱다.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들려주면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인다. 젊을 때부터 자꾸 자신의 참 모습을 찾는 불교 가르침을 들려주면 사회에 나가서 분명 훌륭한 불제자가 될 것이다.”
스님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오조(五祖) 홍인대사와 육조 혜능대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혜능을 처음 본 오조가 ‘너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구하러 왔나’고 묻자 혜능이 ‘영남 신주에 사는데 부처되기를 구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오조가 ‘너는 영남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혜능이 ‘사람에게는 비록 남북이 있다 하지만 불성에는 본래 남북이 없사오며 오랑캐의 몸과 화상의 몸이 같지 않지만 불성은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했다. 불교의 진면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청정한 불성으로 인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모두가 부처다. 부처님 세계 속에는 계급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진리를 모른다.
이제 수명이 길어져 지금 젊은 사람들은 100살까지도 너끈히 살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지면 뭐하나. 자기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아니 단 한번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데 겉 껍데기만 덮어쓰고 백 년 아니라 천 년 만 년을 산들 무엇하겠는가.” 지난해 군종교구에서 대만 연수를 갔을 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스님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스님은 지병으로 인해 2~3일 내로 입적한다는 통보를 받은 뒤 주변 정리를 하고 불암사에서 조용히 참선을 하며 죽음을 기다렸다. 그런데 입적 직전 병원에서 장기기증자가 나타나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벌써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스님은 그 같은 일화를 들려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강 물 흘러가는 것 한 번 더 볼려고 사는 것 같다.”
스님은 건강을 회복한 뒤 많은 일을 했다. 광동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180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고 교내에 학교 설립자 운허스님 동상을 세워 불교 건학 이념을 분명히 했다. 좁은 사무실에서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던 생명나눔실천본부를 맡아 10억원을 들여 사무실을 샀다. 어려운 환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해인승가대학 동문회장을 맡아서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사무실도 만들었다.
초대 군종교구장 재직 4년간 쌓은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스님은 왜 건강을 회복하고 열심히 산 지난 십수년의 일을 ‘한강물 흘러가는’ 따위로 치부했을까.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 부질없는 일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양 무제가 달마에게 자신은 왕이 된 이래 많은 절을 짓고 숱한 경전을 펴냈으며 수많은 승려를 먹여살렸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묻자 전혀 공덕이 안된다고 했다.
왜 공덕이 안된다고 했겠나. 양 무제도 나도, 아니 무언가 불교를 위해 종단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그 일들이 실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냥 속세의 인연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결국 업(業)만 더 쌓을 뿐이다. 진짜 가치 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일 하나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고 했다. 천년의 어둠에 갇힌 캄캄한 동굴이 불빛 하나로 단숨에 밝아지듯 본래면목을 찾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다. 그런데 십년을 더 산다는 것이 결국 업(業)만 더 쌓은 꼴이 됐으니 뭐 그리 기뻐할 일이고 내세울 일인가.” 스님은 “그런데 모든 자리를 내려놓고 짐마저 벗고 보니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 상황을 악용해 나와 주변을 흔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지니 그냥 흘려보내던 조사들의 가르침이 진실로 와 닿는다. 밖으로 일체 상을 여의고, 모든 경계에 마음이 물들지 않으며 한 생각마저도 끊으라던 조사들의 할(割)이 새삼 가슴을 울리고 간다.” 불암산에 어둠이 내리자 숲도 바위도 절도 사람도 모두 형체가 사라지고 하나가 됐다.
일면스님은…
1947년 경북 영해에서 태어난 스님은 해인사에서 명허(明虛)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4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7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은 선사였던 은사스님을 따라 수좌로 여러 선원을 다니며 참선 했다. 해인강원에서 지관스님으로부터 경전을 배웠다. 1968년 해인강원을 마치고 다시 동국대 종비생으로 입학했다.
졸업하자마자 자청해서 해인사로 내려가 동안거 동안 공양주를 했다. 공부를 시켜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초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인 상계동에 들어가 도심포교당을 열어 학생 청년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이 성인된 지금도 스님 곁을 지키고 있다.
총무원 사회부장, 중앙종회의원,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 교육원장, 초대 군종교구장, 광동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