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불교의 호국적 성격을 강조하거나, 한국불교가 중국불교의 모방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이 제국주의 식민사관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호주 시드니대 한국학 교수이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는 판카즈 모한은 지난 19일 서강대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의 신라사 연구에 대한 검토’를 주제로 열린 신라사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근대일본의 침략 지배 정당화위한 방편”
한국불교, 중국불교 모방 연장설도 오류
이날 모한 교수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자의 신라불교연구’를 통해 식민지시대 일본인 학자들이 한국불교를 어떻게 접근했고 이해했는지 살펴봤다.
일제강점기 일본불교학계 내 한국불교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노골적으로 한국불교에 대해 부정하면서, 중국불교의 모방과 연장선에서 설명하는 경우다. 둘째는 국가를 보호하는 전통(護國)이라는 자신들의 시각을 적용, 한국불교를 이해하는 경우이다.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는 <이조불교>에서 원시 중국불교의 강한 지지와 독창성과 창조적인 사상의 부족을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꼽았다. 또 츠카모토 젠류(塚本善隆)는 한국에서 불교집단의 쇠퇴는 중국불교의 운명과 유사하다 봤다. 모한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불교는 엄밀하게 중국불교의 흐름을 따랐고, 한국 스님들은 중국에서 번성했던 불교의 주요한 학설과 교의상의 종파들을 받아들여 연구하고 집필했다”며 “그렇다고 해서 이를 한국꽃병에 중국 꽃으로서 한국의 불교를 이해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일본이 호국불교의 틀 안에서 한국불교전통을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가 정점에 접어든 1930년대이다. 일본불교학자들은 불교교리들과 일본 천황의 사상 사이의 밀접한 조화를 입증하려 했으며, 일본과 불교의 운명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을 강요했다. 만주와 중국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기 위한 논문도 썼다.
에다 도시오(江田俊雄)는 1935년 한국불교의 호국사상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스님의 역할과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역할이 일치한다는 것을 특징으로 잡아 신라불교를 설명했다. 그는 신라 원광법사가 화랑에게 일러준 ‘세속오계’를 비롯해 황룡사9층목탑 축조에서 차장의 역할, 원효스님의 경전에서 나타난 호국적인 요소들, 중국의 공격을 신라왕실에 알리기 위해 귀국한 의상스님, 또 도선스님의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한국의 호국불교를 논한 것이다.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원광스님의 불교활동을 호국정신으로 간단화하면서, 신라에서는 부처님의 자비가 전쟁의 고통과 피해를 완화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한 교수는 “근대일본은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시각을 신라불교에 적용하고 있다”며 “불의.부정과 타협하지 않고 밖으로 적과의 싸움에서 비겁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정신에 투철한 것이 세속오계의 근본정신이었으나, 일본인 학자들은 세속오계의 윤리덕목을 호국적인 시각으로 보고 간단화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출발한 국가였음에도 삼국통일을 완성했다”며 “불교사상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