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손톱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화장도구인 매니큐어를 화폭에 담은 이색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 작품 활동은 수행의 방편”
깨진 도자기 손질하다 예술성 발견
색의 화려함과 형태 추상성 돋보여
조계종 사찰음식실태조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사찰음식연구가이자 매니큐어로 작품 활동을 벌여온 화가 정산스님이 2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오는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3층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관조+명상’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일본 법륭사(法隆寺)의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을 평면으로 재구성한 부처님의 모습을 비롯해 우주공간을 조화롭게 배치시킨 회화작품, 작은 성냥갑의 한쪽 면에 일일이 각양각색의 그림을 그려 넣어 이를 수천여개 모은 대형 설치작품 등 불상을 소재로 한 매니큐어 작품 20여 점이 선보인다. 미술평론가 김광명 숭실대 교수는 “무욕의 맛과 관조의 멋은 작가의 작업에서 여전히 정체성을 이루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색의 화려함과 형태의 추상성이 더해지며 시대상황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매니큐어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정산스님.
어린 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는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을 연구하면서 틈틈이 유화를 그려왔다. 그러다 지난 2002년 깨진 도자기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매니큐어의 예술성을 우연히 발견하게 한 후 물감 대신 매니큐어로 불심을 그려오고 있다. 스님은 “우연히 알게 된 매니큐어의 색감에 매료된 이후 섬세하고도 정선된 색채로 불심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중점을 뒀다”면서 “매니큐어 회화는 물에 닿아도 문제가 없고, 습기에도 끄떡없는 등 장점이 참 많아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출가수행자와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매니큐어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로 인해 정산스님은 작품 활동 초기 주위에서 적지 않은 오해를 받아야만 했다. 스님은 “승복을 입고 매니큐어를 파는 화장품 가게를 가는 일도 쉽지 않았고, 오해와 해명을 반복해야했다”면서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수백 개의 매니큐어가 필요하니 매니큐어 몇 박스씩 사는 것을 보고 점원은 물론 주위 손님들이 희한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회고했다.
정산스님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 2년에 걸쳐 작품을 준비했다. 작품에 들어간 매니큐어만 수십 만 개에 달한다. 다행히 2007년 열린 첫 전시회 이후 매니큐어 회사로부터 매니큐어를 무상으로 제공받게 돼 재료구입을 위한 수고를 덜게 됐다. 스님은 “일반인들에게 매니큐어는 손을 꾸미는 화장품이지만, 작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 물감이 될 수 있다”면서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은 달라도 결국 도착점은 하나이고, 내게 있어 작품 활동은 수행의 방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