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혜월-운봉-향곡스님으로 전해 내려온 정통법맥을 이은 진제스님은 해운정사에 부처님부터 역대 조사들의 동상을 건립해 관심을 끌고 있다.
원로의원 진제스님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3박4일 용맹정진 법회를 연다. 11월1일부터 3박4일간 부산 해운정사에서 개최한다. 지난해 6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던 용맹정진 법회는 공고와 동시에 수 백명이 신청할 정도로 올해도 관심이 높다. 당대 최고의 선지식 가운데 한 명으로 존경받는 진제스님이 대중들과 함께하며 지도하기 때문에 참여 열기가 더 뜨겁다는 것이 스님들의 분석이다. 지난 9월 말 진제스님을 만나 용맹정진법회에 대해 들었다.
당대 최고의 선지식을 이를 때 흔히 ‘북 송담, 남 진제’라는 조어(造語)를 쓴다. 한강 이북에서는 송담스님(인천용화선원장)이 최고의 선승이며 남쪽에서는 진제스님이 최고라는 말이다. 진제스님이 현재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 전에는 두 분 스님의 은사인 전강스님과 향곡스님을 일러 ‘북 전강, 남 향곡’이라고 했다.
진제스님의 진가는 세 번에 걸친 국제 무차선대회에서 드러났다. 스님은 수 많은 출.재가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법석에 올라 즉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문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즉설(卽說)로 감탄을 자아냈다. 중국에서 온 방장(方丈)이 “1000년 전 문헌에서 존재하던 고대(古代) 법석(法席)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놀랍다”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진제스님의 할(喝)과 방(棒)이 좌중을 흔들었다.
스님은 종단 원로의원으로, 동화사 조실스님으로 후학들을 제접하며 선불교를 알리는데 적극적이다. 국제무차선 대회를 개최한 것도 간화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서다. 무차선대회에 이어 스님은 참선을 대중화 하는데 나섰다. 지난해 철야정진대법회는 참선을 널리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했다. 용맹정진 대법회가 특별한 이유는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탁마한다는 점에 있다. 사부대중 구분없이 모두 앉아 참선에 든다. 또 재가자가 스님들도 쉽지 않다는 용맹정진에 나선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용맹정진은 잠을 안자고 밥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참선만 하는,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행이다. 스님들은 동안거 때 일주일을 용맹정진한다. 잠을 안자기 때문에 기이한 행동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용맹정진을 하고 나면 신심이 더 투철해져 공부에 힘이 붙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패배감에 젖어 수좌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도 힘들어서 몇몇 선원에서는 용맹정진을 금지하기도 했었다. 3박4일이지만 잠을 자지 않고 재가자가 스님들과 함께 참선한다는 것은 예사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제스님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중과 함께 하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일이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중은 공부의 전부를 시킨다고 하셨다. 졸리더라도 정진하는 대중을 보면서 나를 경책하고 힘들 때도 대중이 함께 있어 힘을 낸다. 그렇게 공부를 하기 때문에 비록 용맹정진을 처음한다해도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님은 또 “한 번도 참선을 한 적이 없는 초심자나 다른 종교인들도 쉽게 동참할 수있다”며 “첫날은 앉는 법과 화두 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 화두 하나를 갖고 생각을 조절해가다 보면 점차 익숙해져 억만겁전의 자기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길에 이르도록 앉는 자세부터 모두 자세히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스님은 참선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만나 바른 지도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참선은 바른 지도를 받고 바르게 참구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진리의 세계는 중생들은 이를 수 없어 지도자가 이끌어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바른 신심과 용기를 내어 선지식 스님의 바른 지도를 받아서 일상생활 중에 간절하게 화두가 흘러가게 될 것 같으면,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화두일념에 낮이 지나가고 밤이 지나가는 줄을 모르고 화두삼매가 지속되나니, 홀연히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선지식을 만나는 일이다. 바른 지도를 받고 바르게 참구해야 시간을 허비하는 일 없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예컨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데 대구에 도달해서 이곳이 서울이라고 착각하여 더 이상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서울이라는 진리의 고향에 도달해야 일을 다 마쳤다 할 것이다. 그러니 중도(中途)에 이르러서 ‘일을 다 해 마쳤다.’ 하여 천사람 만사람을 그릇되게 지도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짐을 어찌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스승 없이 깨친 이는 천마외도(天魔外道)’라고 못을 박았다. 그래서 깨달은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아야한다. 정안을 갖춘 자만이 견성법에 바르게 인도할 수있다. 해운정사에서 용맹정진 대법회를 여는 까닭이 바로 부처님의 심인법을 천추만대에 바로 전하기 위함이다. 즉 만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공부를 지어서 바른 눈을 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참선은 왜 해야하며 어떻게 하는가. “참선을 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잘나고 출세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이 밝아지고 인류가 행복해지지 않는다. 시비 장단을 없애고 분별심을 없애 마음의 갈등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선 밖에 없다. 선을 통해 바른 지혜를 열게 되면 내 마음의 갈등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갈등 전쟁 혼란이 사라지고 인류의 행복이 찾아오게 된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오직 참선에 몰두해야하는 이유다.”
스님은 계속해서 참선의 방법에 대해 설했다.
“부처님의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앉는 자리가 중요하다. 참선하는 바른 자세는, 평좌(平坐,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가슴과 어깨를 활짝 펴고, 허리를 반듯이 하고, 양손을 모아 배꼽 밑에다 붙이고, 눈은 보통으로 뜨고 시선은 눈 앞 2m 아래에다 둔다. 2m 아래에다 두면 고개가 반듯하게 되고 상기(上氣)가 방지된다. 만약 앉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거나 가슴이 오므라지거나 하면, 앉아서 여러 시간 참구하기가 굉장히 힘이 든다. 화두 참구는 맑은 생각에 무한한 정신집중이 되어야 하는데,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정신집중이 될 수가 없다. 앉아서 1시간 보내는 것조차도 아주 지겹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좌를 하고 반듯하게 앉는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는 화두를 눈 앞 아래에다 두고 참구해야 한다.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라든가 ‘만 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라든가 각자 선지식께 받은 화두를 간절히 챙겨야 한다. 화두를 챙길 때는 화두 전체를 분명하게 들어 놓고 의심을 지어가고, 의심을 지어가다가 화두가 희미해지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게 되면, 다시 화두를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다 챙겨놓고 의심을 지으면 된다. 참의심이 돈발(頓發)하여 발동이 걸리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한 생각이 성성(惺惺)하게 흐르게 되고 화두가 박살나고 진리가 캄캄한 밤중에 환하게 불이 켜지듯 홀연히 떠오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진수(眞髓)인 선(禪)을 참구하는 참선 수행법이다.”
스님은 또 750년 만에 재현하는 백고좌대법회에 옛날의 국사 자격으로 법상에 오른다. 오는 3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백고좌대법회에 법사로 나서 다시 한번 참선에 대해 법문한다.
진제스님은…
진제스님은 1934년 경남 남해에서 출생했다. 농사를 지으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1954년 해인사에서 석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7년 향곡스님으로부터 법을 인가받았다. 당시 스승 향곡스님과 오간 선문답은 전설처럼 전해온다. 향곡스님이 법기를 시험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한치의 흔들림이나 막힘 없이 답해 향곡스님이 바로 인가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스님은 경허-혜월-운봉-향곡스님으로 전해 내려온 정통법맥을 잇게 됐다. 1971년 해운정사를 창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해운정사와 팔공산 동화사 조실이며 종단 원로의원이다. 백양사를 비롯 3차례 국제 무차선대회를 개최해 선을 널리 알렸다.
<돌사람 크게 웃네> <선 백문백답> <고담녹월> 등 법어집을 냈다.
<출처 : 불교신문 10월 17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