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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에 도성스님 추대 [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10월 31일 ‘한국테라와다 불교 창립법회 및 까티나 행사’거행

“테라와다(상좌부) 불교가 한국에서 20년 만에 지금과 같은 조직화와 성장을 이룬 것은 수많은 수행자 여러분들과 테라와다 수행국가, 한국불교교단의 이해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상징인 승정(상가라자)로 도성 스님(뿐냐산또, 태종사 조실)이 추대됐다. 한국테라와다불교(이사장 빤냐와로)는 10월 31일 BBS불교방송 대법당에서 ‘한국테라와다 불교 창립법회 및 까티나 행사’를 개최하고 도성 스님을 상가라자로 추대했다.

도성 스님은 추대식에서 “20년 전만해도 남방불교인 테라와다불교 수행자는 극히 소수였으며, 개인적으로 수행을 해왔다. 짧은 시간에 교단 창립이 이뤄진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캄보디아, 태국 등의 대사 등 동남아 국가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스님은 테라와다 교단 창립의 밑거름은 해인사 등에서 한국전통 수행자을 닦은 인연에 있었음을 강조했다.

“해인사에서 살면서 만난 운허ㆍ자운ㆍ여암 스님 등 대덕 스님들과의 인연 공덕이 크다. 특히 성철 스님을 찾아오는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빨리어와 산스크리트를 접하면서 불교원전을 통한 공부와 보급의 중요성을 알게됐다”며 불교의 원류인 남방불교를 배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도성 스님은 “부산 선암사 석암 스님이 ‘생긴 것도 못나고, 성질도 급하니 매일 108배를 하고, 참회문을 써서 항상 참회하면서 살라’고 했던 말을 지키며 살아왔다. 이것이 오늘의 나신을 이끌어 왔다”며 수행자로서의 삶을 회상했다.

스님은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에는 수행법과 근본불교의 계맥 등에 변화가 요구됐었다. 우리는 이제 2500년 전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전하고 배워야 한다. 불법 외에는 어떠한 것도 첨삭해서는 안 된다. 계ㆍ정ㆍ혜 3학을 철저히 지키며 부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 수행하라”고 당부했다.

도성 스님은 1919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전 해 전쟁포로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석방된 스님은 부산 선암사 지월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출가 후 56회의 안거를 마치고 1972년 태국 방콕 벤자마보핏 사원에서 프라담마 딧띠소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미얀마 마하시 선원, 태국 위웩아솜 위빠사나 수행처, 스리랑카 비구 아일랜드에서 위빠사나 수행 후 한국에 위빠사나를 전파했다.

스님은 1977~1979년 해인사 주지, 1990~1993년 대흥사 주지, 1991~1993 조계종 전국 본사주지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밖에도 스님은 태국 마하 쭐라롱콘대학 한국분원 학장을 지내면서 국제적인 교학증진에도 기여하는 등 전 세계에 테라와다불교를 선양하고 있다.


<출처 : 붓다뉴스 11월 0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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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 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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