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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우 스님 “고요하고 또렷하게 연기된 현상 관해야” [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일시 : 2009년 11월 11일
장소 :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강사 : 고우 스님(조계종 원로의원, 봉화 금붕암)
주최 : 명상문화연구원
주제 : 명상과 삶, 그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서


모두가 참된 행복과 가치를 구현하는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명상은 이제 미국에서 ‘자신감 북돋우는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은 어느새 인간성 상실로 전에 없던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인간적인 삶을 계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불교적 전통명상 보급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리고자 명상문화연구원(이사장 세민, 원장 현종)이 개원했다. 명상문화연구원은 11월 11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설립기념 고불법회를 봉행한 후 ‘명상과 삶, 그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우 스님 초청법문을 진행했다. 명상의 효과와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우리 불교의 순수한 가르침은 과연 그런 모습인가 알아보고 앞으로 인류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우 스님의 주옥같은 법문을 들어보자.


# 불교만이 연기법 설한 종교

한국의 노자라 할 만큼 세계종교분야에서 해박한 유용오 박사라는 분이 ‘모든 종교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하나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한 기독교, 알라신이 창조한 이슬람교, 중국의 도교에서도 ‘모든 종교는 하나에서 만물이 창조됐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로부터 모든 것이 창조된 종교를 전변설 종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다릅니다. 불교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라고 말하니까, 유용오 씨는 “불교도 이름만 다르지 같은 종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다른 종교와 구분이 됩니다.

불교는 연기설(緣起說)입니다. 다른 종교는 전변설(轉變說) 종교이고, 불교만이 연기설 종교입니다. 전변설 종교는 다 전쟁을 하고 있지만 불교만이 전쟁을 안 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전쟁한 역사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 알면, 전쟁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지구상의 이데올로기 종교 종족 갈등 중 가장 심한 것이 종교 갈등입니다. 미국에서도 이라크 전쟁을 하면서 끝내지 못하고 애를 먹고 있는 것도 사실은 종교전쟁입니다. 종교가 평화를 지향하고 자유, 사랑, 자비를 추구하는 종교가 오히려 반대되는 갈등이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모든 종교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유아적이고, 저급하고, 그런 기복종교를 하는 것은 비단 불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이 그러합니다. 자비나 사랑을 얘기하는 종교가 갈등을 부추기면서 저급한 기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교는 상호공존의 존재 원리

명상을 통해서 제대로 종교역할을 해보자고 명상연구원을 만든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의 적절하게 방향을 잡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깨달은 그 내용을 얘기 한 겁니다.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깨닫기 전에는 개인적 고민도 많았지만 깨닫고 난 후 굉장한 행복감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사회 국가 개인의 고민들을 풀어줄 방법을 발견하고 나서도 왕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승가공동체(승단)를 만들어 깨달음의 내용을 설법하셨습니다.

그럼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존재의 원리’입니다.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는 ‘내가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깨치고 보니 ‘내가 있다’는 생각이 굉장히 잘못됐다는 겁니다. ‘내가 있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고 허구라는 것이죠. 그리고 사회 경제 개인의 문제 해결도 됐습니다.

불교가 역할을 제대로 하면 사회문제, 국가문제, 세계전반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립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몸소 보이셨어요.

그런데 지금 종교가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부처님 뜻이나 다른 종교창시자들이 의도했던 것들이 변질됐다는 겁니다. 지금 같은 형태로 종교가 지속되면 종교가 없는 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개인, 국가, 사회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종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의 원리와 부처님이 깨달은 존재의 원리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람들은 문제해결을 힘으로 하려합니다. 기독교는 핍박을 받으면 전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불교는 싸우지 않습니다. 2008년 8월에도 평화적으로 범불교도대회를 치렀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과 견해를 달리하는 외도들이 공격을 해도 그 공격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부처님은 외도들에게 “네가 존재의 원리를 안다면, 나를 공격하지 않았을 텐데,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욕을 하니 정말 안타깝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연민입니다. 그런 핍박을 받아도 불교는 깊이깊이 익어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 할수록 불교는 발전할 것입니다.

유용모 씨가 불교를 제대로 알았으면 개종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 돈 명예의 노예 아닌 주인으로 사는 법

실제 불교는 매우 위대한 종교입니다. 부처님이 발견하신 것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네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로 불교를 이해하면 모든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으로 보면 비교를 멈춘 그 자리에는 지혜가 생깁니다. 비교 안하고 잘 살수 있는 법. 첫째가 비교입니다. 진보, 보수만 봐도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가치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직장인에게 목표를 물으면 ‘돈’이 목표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니 어쩔 수 없다고 말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돈을 목표로 하고 활동하면 결국 자본주의는 망합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처님 법 제대로 이해하면, 일에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자연히 명예도 돈도 따라옵니다. 손해 볼 것이 없어요. 우리사회 지금 어른이 없다고 하는데 인격도 따라 옵니다.

세 번째는 자주적인 사람이 됩니다.

욕망에 끄달려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에 노예가 되고 명예의 노예가 되죠.

네 번째는 우리사회의 화두인 일방소통이 아니라 쌍방소통이 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특히 종교인 중에서 이런 사람이 많이 나와서 모두가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하나 나왔습니다. 바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강한 나라에서 나왔으니 파급력이 클 것이라 봅니다. 그런 세상 누가 만드나 고민하다 신문과 책을 통해서 보니 그분이 적합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처님 말씀을 전부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도 굉장히 편안하고 그런 삶을 살면서 굉장히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요하고 또렷하게 연기된 현상 관해야

부처님은 ‘존재원리’를 세 가지로 보셨습니다

첫째는 육안으로 보이는 ‘현상’ 즉, 보는 것은 부처님과 우리와 작용이 같습니다. 우리는 세가지 중 하나만 하고 있고 두 가지는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나머지 두 개를 발견하면 우리 의식이 그렇게 변해 우리 가족, 사회,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럼 두 가지가 무엇인가. 그것이 ‘연기설’입니다. 형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 아닌 것도 있다는 겁니다.

집을 만드는 것 여러 가지 재료를 부합해서 만드는 것이지만 그 재료들 역시 여러 물질이 조합된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은 고정불변 된 존재가 아니에요. 연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고정불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단일로 독립된 물질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죠. 부처님은 그 원리를 2600년 전에 깨달으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 억 만개의 원자 덩어리가 여러분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면 믿겠습니까? 이것은 현대물리학에서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파인만의 물리학강의> 책에도 나와 있고 말입니다. 과학이 부처님 말씀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 할 수록 불교는 인정받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화된 존재로만 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분리된 것이 없다는 겁니다.

이 하나 속에 또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 돼 있다는 겁니다. 계속 변화하면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체가 없어서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이 자체가 ‘열반적정(涅槃寂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 삶이 바뀝니다. 중국의 운문 스님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이 매일매일 좋은날을 산다고 했습니다.

전변설 종교는 명상이라고 하는데, 불교명상은 ‘삼매’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합니다. 연기설 종교는 불교 단 하나입니다. 삼매를 통해 자기를 더욱 강하게 인식하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갖추면 다른 종교를 다 포용할 수있습니다. 불교 명상은 다른종교와는 다릅니다. 불교의 명상은 성성적적이 돼야 합니다.

박선주 기자 | sunjoo0802@naver.com


※ 이 기사는 '붓다뉴스'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문 보기]
2009-11-19 /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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