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가 실시한 연통제의 불교계 중앙본부가 진관사였다.”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오는 12월 3일 열릴 ‘한국 독립운동과 진관사’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할 주요 내용이다.
지난 5월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운동 사료의 학술적 가치와 백초월스님의 항일운동을 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린다. 진관사(주지 계호 스님)는 12월 3일 오후 1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독립운동과 진관사-진관사에서 발굴된 독립운동 자료의 역사적 조명’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진관사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자료의 역사적 가치만을 단순하게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관사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였는가를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관사는 또 “이번 학술회의에 참가하는 발표자들은 △진관사와 한국독립운동의 연관성 △불교계의 독립운동과 진관사 △백초월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 등을 주제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신용하 이화역대 석좌교수의 ‘진관사에서 발굴된 자료의 독립운동사에서의 가치’라는 기조 발제가 눈에 띤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실시한 연통제의 불교계 중앙본부가 진관사임을 밝혔다.”고 말한다. 이교수는 “뿐만 아니라 발굴된 새로운 자료를 통해 독립운동사에서 백초월스님의 위상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정리했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진관사 독립운동 자료의 발굴 경위와 그 문화재적 의의’라는 기조 강연에서 “진관사에서 발견된 독립운동자료의 문화재적 가치와 의의를 부각”시켰다. 문 교수는 “태극기를 비롯한 총 17점의 자료가 지닌 위상과 이 자료를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김광식 부천대 교수는 ‘백초월의 항일운동과 진관사’라는 글을 통해 “그동안 백초월 스님에 대한 연구논문을 작성하면서 풀리지 않은 부분을 이번 자료 발굴로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만해와 위상이 같은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과 진관사의 연관성,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백초월 스님의 위상 등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 교수는 “이번 자료의 발굴을 계기로 백초월 스님의 제자였던 금봉 스님(1919년생)을 직접 면담하여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진관사를 거점으로 전개되었던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의 실상이 어느 정도 밝혀”졌고 “나아가 일제강점기 백초월 스님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정리”했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진관사 태극기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라는 글을 통해 “독립운동 관련자료와 함께 발견된 태극기 그 자체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태극기의 제작 연대를 1919년으로 보고 있다. 한 교수는 특히 “대한제국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사용한 태극기와 유사한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진관사 태극기’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나 또는 그 산하 기관과 관련단체에서 제작?사용한 것으로 1919년 당시 현존하는 태극기가 몇 점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결론을 짓고 있다.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신대한> 신문과 신채호의 민족운동’ 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신대한 2호와 3호의 역사적 가치 및 단재 신채호가 신대한을 통해 추구했던 독립운동의 의지와 사상이 신상완, 김봉신 등 승려들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고, “신상완이 조직하려 했던 의용승군제 형성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도 밝혔다.
한상도 건국대 교수는 ‘자유신종보의 간행과 독립운동계의 동향’이라는 글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자유신종보의 자료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자유신종보가 상해가 아닌 국내 불교계에서 발간하였음”을 처음으로 밝혔다. 한상도 교수는 특히 “3·1운동 당시 불교계가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와도 연결하였음”을 이 글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상완과 이종욱의 역할도 강조한다.
이에 앞서 진관사는 지난 8월, 5월 26일 경내 칠성각 건물을 해체해 수리하기 위해 벽체를 뜯다가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한 1919년 6-12월자 항일 신문과 태극기 1점 등 17점을 공개한 바 있다.
신문들은 3.1운동 직후 발간된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등 국내에서 발간된 신문, 상하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 신채호가 상하이에서 발행한 〈신대한신문〉 등 국외에서 발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