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 교무부원장 법현스님은 11월 18일 원광대학교 법은관 2층 강당에서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학인과 교수, 교직원, 일반인을 대상으로 ‘불교의 의례와 수행’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번 강좌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얻어 KCRP 종교간대화위원회, 종교문화연구원, 원불교 사상 연구원(종교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행사였다.
법현스님은 의례의 기원과 형성 및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고 의례가 수행과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지를 초기불교의 암송과 계율 그리고 중국, 한국불교의 청규 또 오늘날 각종 의례가 가지는 수행과 교학적 의미를 밝혀 설명했다.
이 강좌는 법현스님 특강에 앞서 매주 수요일 개신교의 이찬수 목사, 가톨릭의 정양모 신부, 이슬람학 박현도교수(서강대 종교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이 해당 종교를 대표해 강의를 한 바 있다.
▶강의내용 전문
송경과 송율(誦經과 誦律)
어떤 종교도 처음부터 의례에 매달리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창시자가 살아 있을 경우에는 창시자의 설법(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율법)이 제대로 자리 잡아 그 종교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경우는 상황이 달라진다. 존경의 마음도 물론 있지만 예경을 하지 않으면 교단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배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붓다가 살아 계실 당시에는 특별한 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의식의 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있다. 경전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에게 다가 가서 절을 하고는 일정한 방향으로 물러나 앉아 명상에 들거나 설법을 듣는 것이 나오는 데 이것이 의식의 출발이랄 수 있겠다. 붓다의 밑에서 수행하던 비구들이 맨 처음에 할 수 있었던 행위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聞)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자기화 하기 위하여 조용한 곳에 앉아 골똘히 사유(思)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즉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인 학문(學問)이나 예술(藝術)이나 기술(技術) 등을 하면 파계(破戒) 하는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도인에게는 종교와 관계없이 출가(出家)와 출가자에게 생활필수품들을 제공하는 전통(傳統)이 누구에게나 있었기 때문에 출가자는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단(敎團)의 구성 요건이 다양해지고 출가자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출가자로서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에 관하여 정해 놓을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이 계율(戒律)의 출현이었다.
본디 계(戒)와 율(律)은, 개인의 수행을 위한 것인 계와 교단(敎團)의 운영 및 유지를 위한 율로 나뉘지만 통상 함께 쓰이고 있다. 그리고 붓다의 깨달음 이전의 행위를 인행(因行)이라 하고 인행을 하던 때의 존재를 보살(菩薩)이라 했다. 그런데 보살로서 존재한 것이 어느 한 생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존재로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이 인행(因行)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다양한 활동 가운데 어느 것이 성불(成佛)을 위한 수행(修行)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그것이 계율의 의미인 것이다. 즉 성불(成佛)을 위한 수행에 필요한 행위가 아닌 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계율의 기능인 것이다.
계율을 출가 수행자들은 늘 지송(持誦)하여야 하지만 나머지 수행과목에 대한 중요성이 커짐으로써 일정한 시간에 지송하고 지킨 정도에 대한 반성과 지켜봄이 행해지게 되었다. 붓다 당시나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기록의 문화와 기록용지가 없으므로 입에서 입으로 구송(口誦)하여 전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이것을 아가마(Agama)라고 하여 한역(漢譯)에서는 아함(阿含)이라 하였는데 이를 아함의 경전군이라는 뜻으로 아함경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이는 특정의 경전군(經典群)이 아니라 붓다가 말한 모든 말씀이며 이를 ‘다 구송하여 전한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한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늘 지송(持誦)하는 것이 요구되었으며, 일정한 시간에 지송하는 것은 비단 계율만이 아니라 경장(經藏)도 마찬가지였다. 지송을 제대로 하는 것이 또한 소박한 수준의 의식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붓다가 열반에 든 이후에는 붓다에 대한 예경이 생겨나고 더 나아가 붓다가 설한 달마와 그를 따르는 상가에 대한 예경까지 포함한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며 붓다와 달마 그리고 상가의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넓어짐이 의식의 다양한 구성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청규(淸規)
붓다의 제자로 살아가는 수행자들은 붓다가 지은 계율을 지켜야 하는데 그 계율을 모아 놓은 것이 율장(律藏)이고 율장에 규정해 놓은 대로 살면 되었다. 하지만 계율도 시대에 따라 또는 부파(部派), 종파(宗派)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지게 되어서 조금씩 달라졌다. 더구나 아주 다른 형태의 불교인 선종(禪宗)이 중국에서 생겨나면서 새로운 계율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중국인의 사유구조를 잘 반영해 생긴 불교의 종파인 선종(禪宗)의 출현으로 인해 새로 생긴 일종의 계율이 청규(淸規)이다.
당나라 중기에 이르러 선종이 성행하였는데,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는 선승이 율종의 사찰(律寺) 내에 거주함에 있어서 비록 별원(선승을 위한 별원)이 따로 있으나 다만 설법과 주지(住持)에는 법에 합치하지 않음을 통감하였다. 그리하여 元和 9년(814)에 선승이 거주하는 제도를 별도로 만들었다. 덕망이 높은 “長老”를 화주로 삼고 “方丈”에 거처하도록 하였으며,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다만 “법당(法堂)”을 세웠다. 공부하는 승려는 모두 “승당(僧堂)”에 거하도록 하고 수계의 년차에 따라서 안배하였으며,“장연상(長連床)”을 설치하여 여기에서 함께 좌선하거나 누워서 쉬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이 같이 사는 합원(閤院)에서 대중이 “朝參”과 “夕聚”를 가졌으며, 장로는 상당(上堂)하였다. 일반 승려는 옆에 섰으며, 빈(賓)과 주(主)는 문답을 하면서 종요(宗要)를 드날렸다.
승려의 공양은 인도의 붓다처럼 한 끼를 먹은 것은 아니었다. “공양(齋粥)”을 마련하여 아침과 점심 두 번에 고루 나눴으며, 또한 “울력(普請)”법을 시행하여 상하가 같이 일했다. 이렇게 선사들의 수행과 율사들의 수행이 다르다 보니 선사들의 수행양식을 규정할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것이 청규(淸規)가 생겨난 배경이다. 그동안 율사(律寺)에서 진행하던 예경(禮敬),공양(供養),참회(懺悔) 등의 수행법에다가 좌선(坐禪) 및 울력(勞動) 등에 관한 규정을 덧붙였다. 그것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선사가 지은 백장청규(百丈淸規) 등 선종청규(禪宗淸規)이다. 이 선종 청규에는 선원에 살고 있는 선 수행승들이 하루 종일 그리고 일 년 내내 해야 할 일에 관해서 그 방법과 절차 및 의식 그리고 그 의식의 내용에 관해서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그것이 의식의 주요 내용이 되었다.
의식집(儀式集)
종파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며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불교를 우호적으로 대하거나 아예 폐불을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청규에도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의식이 첨가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래서 청규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고 ,정토종(淨土宗)과 밀종(密宗)의 의식이 첨가되어 더욱 복잡한 의식으로 변하게 되는데 그 의식을 모아 놓은 것이 의식집이다.
의식집은 청규와 마찬가지로 주로 선사들에 의해서 편찬되는데 그 이유는 청규의 출현과 비슷한 것이다. 선사들의 사유구조를 통일하고, 계율을 늘 지송하는 율사들과 달리 참선을 주로 수행하는 이들이 책을 보고 할 수 있으며,초심자들을 일정하게 교육할 수 있다는 점이 의식집의 기능이다. 의식집은 중국에서의 『청규(淸規)』나 『선문일송(禪門日誦)』의 이름으로 편집된 것도 있고, 한국에서는 『작법귀감(作法龜鑑』,『범음집(梵音集)』등의 이름으로 편찬되었다. 근대에 안 진호(安震湖)스님이『석문의범(釋門儀範)』이라는 의식집을 낸 이래 최근에는 의식집의 편찬이 각 종단과 단체 및 스님들의 생각과 노력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불교의식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10대원(大願)을 중심으로 각종 수행방법을 의식화 한 것으로 석문의범에는 18가지 종류의 의식을 채집하였다. 현대에는 일반 불자들의 의식수준(意識水準)이 높아지고 가정에서의 수행과 의식의 집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한글의식과 가례(家禮)의식 등이 편집되고 있다.
의례(儀禮)와 수행(修行)
부처님만큼 진리주의 입장에서 가르침을 중시한 이가 드물고 불교만큼 가르침주의 종교행위를 행하는 종교가 드물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에는 공양의 의미와 의식만이 있었다. 의식의 중요한 부분은 모두 율장에 들어 있다. 물론 경장과 논장에도 있지만… 그것도 누구나가 다 아는 인도인의 생각에서 인도인의 말을 사용해서 인도인 좋아하는 물건들을 바치고 예를 표했으나…중앙아시아 거쳐서 중국으로 건너가면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국의 문화가 투영된 의식이 깃든 예배의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인도불교에서는 무소유의 걸식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동 즉 생산행위를 금지하지만 중국에서는 노동을 했다. 이유는 참선 같은 수행만으로는 존재자체가 어려울 만큼 수행여건과 분위기 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장선사같은 이가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 했다. 이는 건전한 정신을 위해 건강한 육체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노동을 해야 건전한 먹거리를 얻으며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율장에 어긋나는 일을 왜 꼭 해야 했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참선을 수행의 최고로 생각하는 선사들은 처음에 독립공간이 없어서 율사들의 수행공간인 율원(律院)에 의탁해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노동을 해야만 했다. 백장같은 노장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이가 먹거리에서 손해를 보아야 했기 때문에 어른을 생각해서 농기구를 치워버리자 음식 먹기를 거부한 것이다.
흔히 청규라 하면 의례와 상관없는 선종의 규칙이라 생각하는 이가 있지만 청규는 스님들이 아침부터 저녁, 밤중에 이르기까지 1월1일부터 12월31일에 이르기까지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규정과 방법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놓은 일종의 수행(업무, 학습, 노동, 예배)총법이다. 그것을 소리 내어 예경과 함께하면 의례요, 의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이래로 서구적 사고에 기운 교육정책 때문에 우리말과 중국말을 제대로 배운 이가 없었다. 더구나 불교분열정책의 결과 불교계에는 우리말과 중국말을 제대로 아는 이가 더욱 드물어 의례의 참뜻을 모르고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태고종을 중심으로 의례에 관한 전승과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요즘에는 조계종에서도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그동안의 태도를 생각하면 씁쓰레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흐름으로 보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어느 종단이든지 의례에 관해 그 의미와 목적 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의례를 행하는 이들의 문제도 있다. 그것은 첫째 뜻을 모르고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고 편의대로 멋대로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중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대충한다는 것이다. 넷째, 큰스님이나 유명 인사나 돈 많은 신도가 중간에 오면 중단하고 안내하는데 바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도 문제가 있다. 첫째, 의례를 제대로 실천해보지 않고 하는 것이다. 둘째, 의례가 계율과 청규 자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 의례를 하는 것은 수행의 기초요 보완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몇 가지를 바로 잡으면 의례자체가 훌륭한 수행이요, 효과적인 포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의례불교의 교과라 할 수 있는 석문의범에 수록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 경전의 기초와 정수(精髓)가 들어있고 조사(祖師)스님의 깨달음의 소식이 들어 있으며 밀교(密敎)의 진언(眞言)이 들어 있다. 내용과 방법은 달라도 모든 나라와 시대의 불교에서 다 의례를 행해왔고 하고 지금도 있다. 의례는 수행과 떼 내려 해도 뗄 수없는 관계라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