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100일간 한숨도 안 자는 20여수좌 지도
직접 농사지어 마련한 돈으로 해제비 보태기도
역사는 짧지만 명성은 천년을 쌓아온 탑처럼 높고 장엄하다. 계룡산 제석골의 장군봉 제석봉 임금봉이 내려다 보이는 수승한 길지에 자리한 오등선원에는 오늘도 20여 명의 수좌들이 용맹정진 중이다. 조실 한암 대원스님 회상에서 한 철나겠다며 찾아온 납자들이다. 동안거를 맞아 지난 8일 대원스님을 만났다. 수좌들 사이에서는 당대의 선지식을 일컬으며 남진제 북송담, 그리고 중부의 대원스님이라고 한다.
이곳 선원은 남다르다. 동안거 3개월을 한숨도 자지 않고 정진한다. 하루 밤 새기도 힘든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힘들다는 동안거 용맹정진도 보통 일주일인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한계가 어디 까지인지 가늠키 힘들다는 감탄 외에 헤아릴 수 없는 경지다. 100일 용맹정진을 자청하는 수좌들이 넘쳐난다. 오직 선지식 회상에서 공부해서 본분사를 깨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 곳 계룡산을 찾아든다. 잠을 자고 안자고 하는 인간사의 문제는 이들에게 털 끝만큼의 관심사도 아니다. 죽고 사는 문제도 관심 없다. 선불장(選佛場)에서 급제하는 것 만이 유일한 관심사며 목표다.
스님은 이들이 기특하면서도 애처롭다. “다른 곳에서는 해제비도 많이 준다는데 오직 공부할 목적 하나만 갖고 해제비도 얼마 되지 않는데다 잘 입지도, 잘 먹지도 못하는 이곳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수좌들이 대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스님은 “100일간 잠도 안자고 오직 화두만 참구하다보니 해제 때 모두 깡 말라 차마 못 볼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 신도들은 오등선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돕기 위한 후원회를 결성했다.
스님도 직접 농사를 지어 내다판 돈으로 해제비에 보탠다. 그 만큼 어렵게 수좌들을 뒷바라지 한다. 우연히 그린 달마도도 농사에 큰 도움이 됐다. 눈빛이 살아있는 듯 노려보는 달마도를 본 신도들이 농사에 필요한 트럭을 보시해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스님은 “관공서 등 외부에서 손님들이 와서 조계종이 참 큰일 이라며 걱정어린 소리를 하는데 여기서 보면 전혀 아니다. 조계종이 정말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너무 잠을 안자면 혼침에 시달려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되니 단 2~3시간이라도 자는 것이 좋다고 반론을 펴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공부에 전력 투구를 하다보면 잠을 일부러 안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안 자게 된다”고 말했다. 또 수마(睡魔)를 조복받고 나면 그 다음부터 공부가 쉽고 자심감도 크게 길러져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다.
스님은 작금의 선원 풍토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해야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하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뜻이 맞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주 잘못됐다. 그런데 요즘 법어라고 내놓는 것들 중 일부를 보면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니다. 불교도 아니고 말도 안되는 소리들을 법어라고 버젓이 내놓는다. 모르면 뜻을 새길 뿐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
스님은 끝으로 “동안거를 맞아 한마디 이른 바 있는데 눈 밝은 납자들의 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결제 법문을 들려주었다.
“법상에 올라 묵연히 앉았다가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이르시되 아시겠습니까? 즉하에 계합하면 장부로서 능히 일대사를 마칠 것입니다. 도리어 아시겠습니까?
가을 국화가 단풍에 들어가니/ 문수는 손을 거두고 돌아가고/ 누른 벼가 불 속에서 나오니/ 보현은 향 파는 것을 그만두었네. 백운이 건곤을 삼키니/ 정반성이 북두칠성을 토하고/ 원숭이가 나무위에 거꾸로 올라가니/ 높은 봉우리에는 새가 깃들지 않는도다.
이에 일구(一句)가 있는가. 조금 있다가 주장자를 치고 이르데
가야가 북을 치고 노래하니/ 계룡산이 박수치고 춤 추미로다
금일 대중은 도리어 아시겠습니까? 만약 알지 못할진대 또 일러라
동서남북 사면이 문이 없으니/ 시방세계가 막힘이 없음이로다. 머리는 더부럭하고 귀는 초생달 같아서/ 누구나가 다 남아 대장부인데/ 어찌 노끈이 없는데 스스로 얽어 메여 있는고.
벗어나는 일구를 어떻게 이르겠는가? 조금 있다가 이르데
떨어진 짚신짝을 부셔버리고 맨발로 걸어가고/ 진흙 가운데 파도 속에서 일월이 나타남이로다.
조주스님이 백장스님에게 참례하니 백장스님이 말씀하시길 어디에서 오는 고 물은데, “조주가 이르길 남전스님 회상에서 옵니다.” “백장이 이르데 남전이 요사이 무슨 말로 사람들에게 가르쳐 보이는고.” “조주가 이르데 요사이 사람들에게 바로 초연해 가라고 가르칩니다.” 백장이 이르데 초연은 그만두고 망년일구를 일러보게. 조주가 앞으로 가까이 삼보를 걸어가서 서니 백장이 악하고 꾸짓거늘 조주가 머리를 움칠이는 자세를 짓고 물러서니 백장이 말씀하되 “크게 초연해 감이로다”하거늘 조주가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낭야각이라 스님이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조주 노인이 사자굴속을 향하여 어금니와 발톱을 바꾸어 얻었음이로다. 사가 가로대 선혜선인이 연등불을 만나서 이름을 석가모니로 바꾸어 얻었음이로다. 두 사람 마음의 일은 두 사람이 앎이니 “장부는 하늘의 북두칠성을 뚫음이로다.”
지주 노조산 보운선사가 일상생활에 스님이 오는 것을 보면 벽을 보고 돌아 앉거늘 남전 스님이 듣고 말하기를 “내가 심상에 그 중을 향하여 이르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알아 얻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한개 반개도 얻지 못함이요. 저의 이런짓이 당나귀 해에 가리라. 해인스님이 이르데 면벽을 다 상상기를 말함이다하니 스님들이 여기에 이르러서 머뭇거리니 어찌하리오. 바로 천강에 물을 막아 끊을지라도 종문의 두 방망이에 떨어짐이니라. 불타손이라 스님이 이르데 시시비비를 마침내 쉬지 못하니 어찌 푸른 봉우리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만 같으리요. 들에 원숭이와 새가 우는 무심처에 꽃이 떨어져 저 물을 쫓아 흐름이로다.
여기에 사가 가로데, 함흥차사는 돌아오지 않으니/ 방원이 근심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부자가 서로 만나 막혔든 마음을 풀리니/ 각자 방으로 돌아가 편안히 잠 잠이로다.
금일 결제 대중이여 항우가 태산을 뽑아 올리고 쇳덩어리를 씹어서 즙을 내는 거와같이 힘을 다하고 다하여 화두를 참구할 것 같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이 다 해결 할 것입니다.
무상이 신속하니 머뭇거릴 틈이 없음이라. 백일 용맹정진 끝에 좋은 소식 있기를 바라노라.
넓은 파도가 아득하고/ 또한 파도가 하늘에 흘러 넘치네/ 콧구멍을 잡아 얻으니/ 도리어 입을 잃음이로다. 주장 삼하후 활 하시고 하좌하시다.”
도선국사가 대원스님 앞에 나타나 도인이 다수 나올 길지라며 직접 터를 잡았다는 오등선원에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었다.
공주=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대원 스님은…
1942년 경북 상주 생. 1957년 상주 남장사로 출가, 고암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40여 년 간 상원사 동화사 해인사 불국사 등 전국 선원을 다니며 효봉 경봉 향곡 성철 월산스님 등 당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986년 옛 제석사 터에 학림사(鶴林寺)를 세우고, 수행 납자들을 위한 오등선원(五燈禪院)과 일반 불자들을 위한 시민선원을 열어 공부를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