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의 해학 / 권중서 지음
“절간 같다”는 말이 있다. 말이 끊겨 고요하고 적막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찰은 모름지기 수행을 하고 기도를 하는 곳이니 맞춤한 비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 해학과 익살을 감춰놓고 은근히 즐겼던 우리 조상들이 이런 ‘거룩한’ 사찰이라고 가만 놔뒀을 리 없다.
법당 천장에는 용과 족제비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고, 불화 속에는 부처님이 설법을 하는데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장난을 친다. 부처님이 앉아계신 대좌 밑에는 비굴한 용이 잠자리에게 쫓겨 다니고, 사천왕의 다리 밑에 깔린 생령좌는 반성하기보다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파격적인 모습도 많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불상이 있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어느 사찰 벽화에는 술고래 이태백이 물고기를 타고 나타나 놀라게 한다.
어쩌면 사찰과 관련 없는 것 같은 이런 조각이나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해학을 주기 위한 화승과 조각장의 재치이기도 하며 또 일반 서민이 법당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여유와 해학은 인도, 중국, 일본의 사찰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 사찰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웅전에는 개구리가 산다
잘 살펴보면 대웅전에 사는 동물은 손으로 일일이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다. 개구리, 토끼, 용, 족제비, 잠자리, 호랑이 등등. 이런 모습은 범부의 눈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조상들은 그림이나 조각 곳곳에 이런 모습을 새겨 여유와 해학을 더해줬다.
10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신륵사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불 후불탱화(본문 125쪽)는 익살의 압권이다. 부처님이 서방극락세계의 장엄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엄숙한 순간, 부처님의 제자가 자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을 펼쳐 보이며 주위에 자랑을 한다. 주변의 다른 제자들은 서로 보여 달라며 아우성이다. 심지어 한 제자는 잘 안 보인다며 어깨너머로 손을 뻗는다. 물론 부처님께 혼날까봐 곁눈질을 하며 눈치를 보는 제자도 있다. 법문이 설해지는 팽팽한 자리에 잠시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의 ‘장치’다.
1870년 조선 고종 때 만들어진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 팔상성도 중 수하항마상(본문 237쪽)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병(寶甁)을 마왕의 군대 앞에 내어놓으며 “너희가 이 보병을 쓰러뜨리면 나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자 마왕의 군대가 달라붙었다. 보병에 묶은 병을 밧줄로 묶고 당기는 놈, 무는 놈, 다리를 거는 놈, 북을 치며 격려하는 놈들이 들러붙었다. 보병은 끄덕도 하지 않자 마왕의 군대는 목적을 잊어버린 듯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난리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그린 그림 한켠의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쉬게 한다.
하지만 해학은 단순한 웃음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세태를 꼬집고 비웃을 수 있어야 진정한 해학이다. 해인사 대적광전 외벽에 있는 팔상성도 중 쌍림열반상(본문 257쪽)을 보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사리비가 내린다. 오색영롱함에 눈이 멀 지경이다. 그런데 이 장엄의 순간에 이 무슨 일인가? 슬픔대신 사람들은 사리를 받기 위해 치마를 높이 치켜든다. 범부뿐만 아니다. 국왕도, 대신도 이 대열에 동참한다. 심지어 부처님을 지키던 사천왕도 부처님의 사리를 하나 얻을 수 있을까 눈치를 보고 있다. 부처님의 또 다른 외호자 팔부중 한 명은 그릇 속에 얼른 사리를 하나 넣는다. 욕심을 버리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처럼 이 책에는 사찰의 전각, 조각 그리고 그림 등 사찰의 구석구석, 곳곳에 남겨져 있는 불교미술의 해학과 익살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다.
경전과 설화 등 전거를 제시해 해학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사찰에 남겨진 그림이나 문양 하나하나는 모두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장치다. 하지만 때때로 세속의 염원을 배치해 민초들과 하나가 되기도 했다. 용주사 효행박물관에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젖을 먹이는 부처님이 있다(본문 278쪽). 영락없는 조선시대 어머님의 모습이다.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효행본찰 용주사다운 독특한 모습이다.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천장에는 한쌍의 물고기가 마치 교미를 하는 것처럼 엉켜 있다(본문 44쪽). 알고 보면 좀 민망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산을 염원했던 여인들의 심정이 그런 조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여유롭게 웃고 넘어갈 만하다. 이밖에도 국가의 안녕이나 왕의 안위를 기원하는 조각 그리고 망자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조각이나 문양도 보인다.
사실 이런 모습은 평범한 눈으로 관찰해 내기 쉽지 않다. 이 책은 교육용으로 만든 사찰 안내서와는 많이 다르다. 대신 사찰의 구석구석을 뜯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나 이 책의 미덕은 사찰에 담긴 이런 염원, 해학, 익살을 경전이나 불교설화 등이 뒷받침해주고 있음을 하나하나 전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강우방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엄숙한 법당에 우리 민족의 순수한 익살이 그토록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불교사찰이 권위적이 아니고 일반 서민과 가까웠으며 동시에 일반 서민이 법당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려준다.”며 이 책의 의의에 대해 높이 평가했을 뿐 아니라 “낱낱이 경전의 내용들을 인용하여 곁들이기도 하니 학문적으로도 크게 뒷받침 해주고 있다.”며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도 내용이 튼실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260장의 도판, 발로 답사하고 펜으로 써내려 간 글
이 책에는 모두 260장의 도판이 사용되었다. 모두 저자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렌즈에 담은 것이다. 저자는 이번 사찰 답사를 통해 사찰의 세밀한 모습을 관찰했음은 물론 그 모습이 모두 경전, 설화 그리고 우리의 삶에 근거하고 있는 것임을 밝히는 데 노력했다.
단순히 유형의 문화를 학술적인 잣대에 들이대 근엄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다분히 불교 신앙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 역시 이 책을 통해 사찰을 세세히 관찰하는 눈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찰의 모든 것에 더욱 녹아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찰과 미술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이 일독할 만한 책이다.
<불광출판사 펴냄, 180쪽, 1만 8,000원>
* 이 기사는 불광출판사 홈페이지 ‘새로 나온 책들’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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