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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 원한과 미움보다 큰 폭력은 없어”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무비스님 (동국역경원 원장, 전 조계종 교육원장)

불교는 깨달음을 향한 종교입니다.

불법(佛法)의 진정한 모습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그 진정한 의미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말 이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말이란 수단을 통해 불법을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날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이 지구상에는 난무하고 있습니다. 온갖 테러, 폭력, 파괴와 보복이 지난 3개월 동안 계속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도 오늘과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모국인 카필라국은 당시 아주 작은 국가였습니다. 카필라국은 대단히 선량하고 현명하고 우애가 넘치는 민족이 사는 나라였습니다. 이웃나라 코살라국은 국토가 넓고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곳의 국왕은 부처님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욕심에 의해서 카필라국을 침범하고자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 코살라 국왕과 그의 군대가 지나갈 길목에 서서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뜨거운 태양 볕 아래에서, 좋은 숲이 아닌 다 타들어가는 바싹 마른나무 밑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코살라 국왕은 군대를 몰고 저 멀리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국왕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사문이나 수행자를 보면 전쟁하는데 재수 없다고 해서 출정을 하지 않았던 관례가 있었습니다. 싸우는 일, 즉 살상하는 일과 종교는 정반대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코살라 국왕은 부처님을 뵙고 그 밑에서 절을 하고 겸연쩍게 물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왜 저 좋은 숲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다 타들어가는 나무 밑에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나의 모국으로 당신이 쳐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우리 석가족을 무차별로 살생하기 위해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실을 아는 내 맘이 오죽하겠나? 이 타들어 가는 나무의 모습과 내 마음이 똑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코살라 국왕은 이 말 한마디에 회군을 합니다. 며칠 후 코살라 국왕이 다시 욕심에 사로잡혀 군대를 모아 카필라국으로 쳐들어갑니다.

부처님께서 또 코살라 국왕이 가는 길에 그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대화는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코살라 국왕은 내키지 않지만 부처님의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회군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코살라 국왕은 또다시 욕심이 나서 카필라국을 쳐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부처님은 길목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나가봐야 그 코살라 국왕의 맘을 돌릴 수도 없고,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인도에 전래되는 관례가 깨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행자를 보면 그 날은 수행 터에서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아 회군한다’는 전례가 깨질 것을 안 부처님께서는 그 길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코살라 국왕은 카필라국을 침범했습니다.

당시 카필라국의 왕은 국민들을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코살라 국왕에게 마지막 소원을 부탁했습니다.

“내가 저 물 속에 들어가서 한참 있다가 숨이 다하면 나올테니 그때까지만 백성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코살라 국왕은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봤자 몇 분밖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백성이 도망가면 얼마나 도망갈까 생각해서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국왕은 물속에 들어가 자기 옷깃을 찢어 바위에 묶어 더 이상 물위로 뜨지 않도록 해서 스스로 죽고 말았습니다. 한편 왕이 물속에서 나오지 않자 다른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더니 왕은 그렇게 처절히 죽어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자기 국민을 살리려고 노력한 왕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교화를 한참 하시던 동안에 석가족이 멸망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었을 때 덕이 높으신 부처님께서도 그 마음은 살을 베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테러와 살상과 파괴가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일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불자라면 그런 상황에서 부처님이 행하셨던 행동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살라 국왕이 석가족을 멸망시키려고 침범할 때 부처님의 아픔은 그 어떤 중생보다 더 컸습니다. 그 순간 부처님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상(壽者相)’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자신의 민족이 짓밟히고 침범 당할 때 나란 것도 없고 너란 것도 없다는 생각, 더 간단히 말하면 ‘나는 없다’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깨닫고 보니까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말릴 수 있는 데까지 이성으로 말리고 그 이상은 휘말릴 까닭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막대기나 돌을 던지면서 무력으로 군대를 막는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모하게 싸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돌이나 막대기를 던져서라도 싸우고 싸우다가 죽기도 합니다. 함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행동을 내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선 부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폭력과 파괴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이웃, 집,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 해결책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과 미움, 죽이고 싶은 마음, 이런 나쁜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사실은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떠올리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금강경》의 내용이고 그것을 압축한 것이《반야심경》입니다.《 반야심경》의 내용은 한마디로 ‘나는 없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속상할 때, 자존심 상할 때, 무시당했을 때, 슬플 때마다 ‘나는 없다.’를 계속 외우십시오. 내가 없으니 날 무시하는 사람도 없고 무시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도 없고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내 눈앞에 ‘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서 잘 모릅니다. 지나고 나서야 전부 없다는 것을, 하룻밤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음이 부처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당당히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출처 ; 만불신문 47호(2001년 12월 1일자)

2010-04-23 / 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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