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도림 법전 대종사 하안거 결제 법어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내려오시니
세존께서 법상에 올라가 앉자마자 문수보살은 설법을 마치는 종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왕의 법法이 여시如是하나이다. 부처님의 법이 이러하나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즉시 그 자리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행자行者가 북을 칠 필요도 없는데 천고天鼓가 저절로 울렸으니 어리둥절한 자가 하늘과 땅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눈 밝은 이가 보면 세존께서 자리에서 내려오신 것은 자리에 오른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는 오월 유월 호시절의 아름다운 경치에 아랑곳없이 바로 낚시줄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온 그 소식인 것입니다. 그건 지혜제일인 문수만이 세존과 나눌 수 있는 말없는 법담法談인 것입니다.
금강경 첫머리는 ‘부좌이좌敷座而坐’라고 하여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로 시작합니다. 자리 펴고 앉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눈이 제자리에 붙어있는 납자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건 바로 법좌인 까닭입니다. 부처님이 앉는 곳은 평상이건 맨바닥이건 모두 법좌입니다. 어디에 앉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앉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밀암함걸 선사는 모자라는 공부로 그 자리에 나아가면 자신의 공부마저 매몰시키게 되지만, 제대로 된 공부인이 앉는다면 사면팔방에 맑은 바람이 흐르도록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런 도리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결제를 할 자격이 있고 또 해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법좌에 오르자마자 즉시 하좌하였습니다. 이를 보고서 문수는 ‘여시(如是)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자마자 내려오신 뜻이 무엇인지 결제대중은 하안거 내내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문수처럼 뭔가 한 마디 자기목소리를 내놓을 수 있도록 90일 동안 용맹심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초전타착燋甎打着하니 연저동連底凍이로다 뜨거운 벽돌로 쳤는데 밑바닥까지 얼었구나.
불기 2554(2010)년 하안거 결제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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