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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한 마음으로 행해야 올바른 정진”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고산 스님(하동 쌍계사 조실·조계종 전계대화상)

중생들이 각자의 고뇌를 소멸했을 때 정각(正覺)을 이룹니다. 중생들은 정각을 이루기 위해 용맹정진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올바른 정진을 하며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분별의 망상 뿐 아니라 자기 욕심이 없는 청정한 마음 상태인 본심에 입각해서 행해야 합니다. 티없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진하면 성취를 이루게 되며 원만성불을 이룹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무상정각을 이루셨습니다. 무상정각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바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깨달으면 생사가 없어지며 해탈을 이룹니다. 

부처님이 도를 깨우치셨다는 음력 12월 8일은 성도재일입니다. 성도재일을 맞아 각 본·말사 스님과 신도들은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신도분들 중에 용맹정진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절에 와서 참선을 하고 기도를 하면 됩니다. 불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진해야 합니다. 어떤 불자들은 법당에 와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에 불자들이 사바세계에 살다가 죽어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 ‘절에 다니면 극락 간다더니…’라고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절에 간다고 다 극락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행은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 가운데에 있는 번뇌,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나쁜 생각 3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탐(貪)·진(瞋)·치(癡)입니다. 욕심을 탐심, 화냄을 진심, 어리석음을 치심이라고 합니다. 

“소유하고 있는 대로 만족하면 탐심 없어” 

절에 와서도 탐심을 부리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안 부려야지 하면서도 법당을 나가면서 ‘뭘 줄까’하고 생각하고 공양하러 가면서도 ‘오늘은 뭐가 나올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다 탐심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로 만족하면 탐심은 없어집니다. 

탐심 중에 애탐이 가장 큰 욕심입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사람을 안보고는 못 삽니다. 3일을 굶고 도둑질을 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사다줍니다. 재물탐보다도 큰 것이 애탐입니다. 지나친 애탐이 오히려 남과 스스로에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유마힐 거사는 일부러 병이 났다고 소문을 내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 중에 욕심을 내지 않고도 부자가 되는 방법을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남을 따라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아는 스님 중에 한 번도 성내지 않은 스님이 있습니다. 제가 그 스님께 직접 한 번도 진심을 낸 적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화낼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스님이 상좌가 없으니 화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진심을 안 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성질을 내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그러려니’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인 치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하지 말라는 것을 자기는 좋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많은 스님들은 말씀합니다. “정도만 믿고 사도를 행하지 마라.” 이 말은 부처님 가르침만 믿고 아닌 것은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많은 신도들이 철학원 같은 곳에 가서 ‘잘 맞춘다.’ 그런 어리석은 얘기를 합니다. 더 어리석은 생각은 어떤 일을 가지고 다들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하면 될텐데, 저렇게 한다.’고 혼자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이 가고 난 후에 ‘저렇게 머리가 나빠서야.’란 식으로 욕합니다.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삼독심은 버리지 않으면 육도윤회(六道輪廻)의 고통을 받는 근본 고리가 됩니다. 이러한 나쁜 마음을 반성해서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원만성불을 이루겠습니까. 삼독심은 물거품 같은 것이며 어젯밤 꿈과 같이 헛된 것입니다. 산골짜기 메아리소리같이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이런 무상함을 알아야 합니다. 나쁜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과 같이 몸뚱이도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병이 없는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중생은 모두 404가지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의 기운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병 101가지, 물 기운의 101가지, 바람 기운의 101가지, 흙 기운의 101가지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뚱이가 있는 사람은 병의 본원입니다. 병을 스승 삼아 일하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병은 사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뚱이 말고 자신이 쉽게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몸뚱이를 부모님에게 받아 태어났지만 본성, 즉 마음자리는 본래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이 몸뚱이를 내버렸다고 해도 마음자리도 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났다고 하지만 본심에 입각하면 태어난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하지만 본심에 입각해서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을 일깨우는 것은 ‘분별심(分別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불이문(不二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불이문이란 것은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부귀빈천은 겉보기에는 다 다르지만 그 본심은 같습니다. 본심은 거품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거품은 큰 것, 작은 것 가지각색입니다. 거품은 물의 습성을 기반으로 하고 이 물이 바로 본성이며 동일하며 같은 것입니다. 본성을 깨닫는 것, 하나의 진리를 터득하는 것은 바로 성불입니다. 

청정심은 부처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자신의 몸을 잘 운영하려면 108배를 하세요. 건강이 유지됩니다. 디스코, 수영, 헬스 등 다른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108배는 단순히 굳은살만 빠지는 것이 아니고 업장도 소멸시킵니다. 건강한 육체 뿐 아니라 근본을 살펴 해결책을 강구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 있는 곳에 달 그림자가 있습니다. 허공 속에 달이 들어가니 물 위에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그림자가 없어졌지만 달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단지 달은 자신을 물에 비췄다가 다시 거둬들이는 것뿐입니다. 청정심은 우주에 비치는 달과 같습니다. 항상 존재해야 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 그것은 우주의 근본 원리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002년 1월 20일 부천 석왕사에서 행한 법문입니다.

2010-06-17 / 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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