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 스님(제주 약천사 회주)
오늘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깨달음의 완성인 열반(涅槃)에 드신 열반절입니다. 마침 여기 참석한 군인 아저씨들과 부모를 잃은 제주 신도님들을 위해 ‘부모의 은혜’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부처님이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날이 음력 2월 8일이고, 깨달음을 얻으신 후 45년 동안 법을 펴시다가 열반에 드신 날이 오늘 2월 보름입니다. 또 2월 보름은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재일(齋日)’이라고 해서 아주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돌아가신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기 위해 일부러 제사상을 차리거나 천도재를 지내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집안에 아들이나 딸이 출가를 해서 훌륭하게 중노릇을 잘 하면 조상들이 전부 좋은 덕을 받아서 극락에 태어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식을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돈이나 쌀은 형편에 따라 누구든지 공양할 수 있지만, 자기 아들이나 딸은 팔 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도 부처님께 바치라고 하면 잘 주지 않습니다. 또 자식이 많은 집에 “공부시키고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하나 주시오.” 해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자식을 시집·장가보내지 않고 부처님을 모시게 하였으니, 중생 세상에 이처럼 복 받을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여기에 동참한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자기가 근무하던 부대에 들어가 총알을 훔쳐내 은행 강도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상관들이 감옥에 가고, 계급을 강등 당하고, 강제제대를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빛내고, 남의 마음을 기쁘고 편안하게 하고 이익은 주지는 못할망정, 자기 한 사람 때문에 부모님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고, 부대장과 선배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줘서야 되겠습니까.
“마음·행동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 달라져”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밑에 태어난 자손들이 그 피를 이어 받아 이 세상이 자꾸 자꾸 나빠집니다. 때문에 내가 나빠지면 내 가족과 그 속에 흐르는 피가 나빠지고, 자손들이 이어받아 이 세상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잉크를 부으면 밑에도 잉크가 스미는 법이고, 위에서 맑은 물을 부으면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물을 먹어도 뱀 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사람이 마시면 갈증을 해소하는 청량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쓰고, 행동을 어떻게 하고,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생각하고, 자식들 걱정에 애절한 세월을 보내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부모의 은혜에 대해 되새겨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은혜가 많고 크다한들 부모님보다 더 큰 은혜 어디 있을꼬. 열 달 동안을 뱃속에 품은 고생하신 은혜도 지극합니다. 이 몸을 생산하여 주실 적에 피는 흘러 자리를 적시고 사경을 헤매시다가 우리 생명을 탄생시켜주신 아버지 어머니 지금은 어디 계신지요. 진자리 마른자리 골라가면서 금이야 옥이야 길러내실 적에 아무리 더러운 대소변이라도 더러운 마음 없이 씻어주고 닦아주며 빨아 입히고 길러주시던 어머니 지금은 어느 곳에 계신지요. 불러봐도 대답 소리들을 수 없고 부모님 얼굴을 볼 수가 없도다. 나무아미타불!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더워도 더운 줄 모르시고 아들딸을 위한 일이라면 동지섣달에도 추워하는 마음 없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나는 못 먹더라도 자식을 먹이시고 나는 못 입더라도 아들딸을 입히시고, 나는 못 배웠더라도 자식들만 가르쳐서 나는 이렇게 고생하며 살더라도 우리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않고자 고생고생 살아오신 아버지 어머니 그 은혜가 중하도다. 나무아미타불! 자식이 병들면 부모님도 병들고 아들딸이 고생할 때 부모 마음 괴로워라. 자식이 성장하여 멀고 먼 곳에 유학을 가거나 군에 입대를 하여 서로 떨어져 살게 되면 멀리 있지만 마음은 항상 자식들을 따라가니 자식들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단잠을 이룰 수 없고 자식이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부모가 괴로운 일을 당한 것 보다 더 마음 아파 생각하시며 멀리 있는 자식들을 그리고 염려하시면서 눈물로써 소매를 적시고 치마폭을 다 적시니 애간장을 태워주시는 어머니 부모 은혜 중해도 처자 사랑 깊어도 떠나지 않을 수 없네. 인간이란 숲에 사는 새들 같아서 때가 되면 뿔뿔이 흩어지노라. 세월이 10년이면 강산이 모두 변하건만 변하지 않는 것은 부모님 사랑뿐이노라. 나무아미타불!
“항상 남을 즐겁게 하는 방법 고민해야”
군인아저씨들은 오늘 법문을 듣고 부대에 돌아가면 꼭 편지 쓰는 날을 정하십시오. 요즘 시대는 전화 한 통화로 그만이라고 하지만, 전화 한 통화로 부모님이 한평생 키워주신 은혜와 그 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은 부모님께 신세를 졌지만 앞으로는 잘하겠습니다.”라는 편지 한 장이면 부모님의 고생 걱정이 한 순간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사는 것은 엄연히 따지면 우리가 살 날 중에 하루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즉 죽음이 하루 가까워진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려고 해도 백 년도 못살고 가는 인생인데,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요. 남보다 넓고 큰 평수의 아파트, 고급 승용차, 높은 벼슬, 화려한 명예를 가져야 잘 살다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저는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잣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단 한 명의 원수도 없었듯이, 죽을 때도 내 가슴과 머릿속에 단 한 명의 원수도 없이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 때문에 기분 나쁘고 속상하고 분하고 손해본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만 뜨면 어떻게 하면 남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불교는 이 세상 모두가 다 즐겁고 편하게 잘 살다가도록 하는 종교입니다. 굼벵이, 구더기, 개미, 모기, 파리, 빈대 등 미물은 물론, 인종·사상과 상관없이 모두 내 형제·부모·자식같이 생각하며 생활하다가 죽는 것이 참다운 불자의 삶인 것입니다.
- 2002년 3월 28일 제주 약천사 열반재일 법문
출처 ; 만불신문 56호(2002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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