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상좌이며 길상사 주지였던 덕현 스님이 길상사 주지 사퇴는 물론,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에서도 물러나며 은거에 들어갔다. 덕현 스님은 21일 길상사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자를 지우며’라는 글을 통해 갑작스런 결정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이 글에서 스님은 “큰 절의 주지 소임을 임기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순수한 희망으로 배움과 수행의 길을 같이하려 했던 많은 어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몹시 아프다.”면서도 “산중의 한거(閑居)에나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도심의 도량에 나앉아 너무 많은 일을 다뤄야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으며 너무 크고 복잡다단한 요구와 주문들에 끝없이 시달려왔다.”며 그동안 심한 마음고생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스님은 “나는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있었고, 지금은 설령 법정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 같아 산문을 나선다.”라고 전하며 자신이 내린 결정을 쉽게 바꿀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1986년 2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덕현 스님은 1990년 법정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1990년 5월 송광사에서 사미계를 1994년 9월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한 덕현 스님은 정각사에서 수선 안거 이래 8하안거를 성만했다. 이어 2009년 3월 길상사 6대 주지로 취임, 지난해 5월 맑고향기롭게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제2대 이사장에 호선됐다.
[붙임] 덕현 스님 글 '그림자를 지우며'
길상사에 와서 지낸 지 두 해쯤이 되어가는 마당에 절을 떠나게 되었다. 길상화 보살님의 불심과 회주 법정스님의 고결한 정신이 깃든 도량, 현대의 도심 생활에 쫓기고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활로를 열어 주어야 할 큰 절의 주지 소임을 임기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순수한 희망으로 배움과 수행의 길을 같이하려 했던 많은 어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몹시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인연을 따라서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인생들이다. 우리 모두가 내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거룩한 승가공동체에서 다 같이 성불의 여정을 가는 존재들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길에서 우리는 그 누구와도 영원을 기약할 수 없다. 때론 만남과 공존의 기쁨에 젖고, 때론 헤어짐과, 같이 하지 못하는 슬픔에 좌절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무상의 이치요 생사의 줄거리이다. 옛 부처님도 이렇게 가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언젠가는 다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있었고, 지금은 설령 법정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 같아 산문을 나선다. 머무는 동안은 물론 스님의 원을 받들어 안팎으로 조금이나마 더 맑고 향기로운 가람을 만들려 했고, 화합하는 청정승가를 이루려고 했으며, 전법과 수행의 도량을 일궈가려 했다. 처음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적지 않은 반대와 온갖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정스님의 뜻을 받들며 소신껏 노력하여 도량을 정비하고, 옛 모범과 시대적 요구 사이에서 중도적 통일을 꾀하며 사중 운영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하여 차근차근 틀을 다져왔다. 그 사이에 스님의 입적을 당했으나, 길상사는 스님이 남기신 유지를 그대로 지키기 위해 사부대중이 합심하고 성심을 다해 노력하여 도량 내외의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와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산중의 한거(閑居)에나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도심의 도량에 나앉아 너무 많은 일을 다뤄야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으며 너무 크고 복잡다단한 요구와 주문들에 끝없이 시달려왔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정제되지 않은 욕심과 야망, 시기심,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고충과 충심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결정과 처신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는 말들, 그 뒤에 숨은 아상(我相)들이었다. 승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세속의 현란한 물신풍조, 가치 혼란, 정보통신 기술의 방향없는 질주...... 온갖 것들이 청정한 승단에 존폐의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의 정치발전 과정에서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은 시스템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그 액면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성원들이 충분히 교육되고 정화되어 선의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소수 탐욕과 이기적 야망을 숨긴 정치꾼들의 다수 대중에 대한 기만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공동체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성공적으로 지켜져 온, 그러면서도 가장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불교의 승가공동체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물론 부처님 가르침의 진리성이다. 그 진리가 우리를 일깨워 나 없음을 깨닫게 하고 무욕의 삶을 살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귀의,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결실로서 우리가 누리는 진실한 자유와 행복이 무소유와 무집착의 수행자들로 이루어진 승단을 2600여년이나 지켜온 것이다. 법이 있고 계율과 청규가 있고, 법을 먼저 닦고 이룬 스승들이 있으며, 소임과 직책의 수평과 수직관계가 가장 아름답게 짜여진 조직력이 있는 승가에 무엇이 부족하여 혹을 붙여 불구를 자초할 것인가? 종교공동체에 정치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그 순수성은 흔들리고 오염되기 시작한다. 가는 사람 말이 구구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떠나는 마당에 진심으로 우리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본분과 소임을 다하며 묵묵히 구도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 자리를 지키기에 안간힘 쓰기보다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 어떤 사람도 영원히 한 곳에 있을 수 없고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다. 그러나 차지한 사람이 바뀌고 모든 것이 변화 속에서 흘러가도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우리가 누구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나는 맑고 향기롭게의 몇몇 임원들이나 길상사나 맑고 향기롭게 안팎에서 나와 선의를 가진 불자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거의 없다. 이 무상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자각을 이룰 것이다. 뜻을 얻으려 하는 자는 욕망을 버려야 하고 세상을 얻으려는 자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 어서어서 무변의 봄꽃이 피는 마음고향에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지나며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갈라놓고 그대를 영원하지 않은 쪽에 집어던지기 전에...... 2011년 2월 20일 덕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