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나온책 <산승불회> / 불광출판사
16,000원/ 유철주,조계종총무원 공저
# 선방에서 공부에 매진하며 일반 대중에게 거의 모습을 안 보이신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은 “세상에 나와서 쓰레기만 줍다 가서는 안 된다. 보물을 찾아라. 그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라!” 고 당부했다.
# 청담스님은 제자 혜정스님에게 “내가 너희하고 같이 갈 때에 혹시 누가 와서 나를 두들겨 패더라도 너희는 절대 그 사람을 때리지 말고 오히려 나에게 ‘스님, 인과를 믿으십시오’라고 말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욕의 상징으로 우러름을 받았던 청담스님의 진면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밀운스님의 은사스님인 운허스님은 독일인 목사가 절에 방문해서 운허스님에게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하니까 스님이 미소를 지으며 “그러겠습니다.” 했다. 이 상황이 의아해서 밀운스님이 운 스님에게 왜 그렇게 대답했느냐고 묻자 “저 목사는 예수밖에 모르지 않느냐. 당신 생각을 알겠다는 뜻으로 얘기했다.”고 답했다 한다.
# 동춘스님은 출가 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있던 중 『부모은중경』을 읽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공부를 열심히 해 부모님을 제도하는 것이 큰 효”라는 깨달음을 얻은 스님은, 누님이 남긴 유산으로 책을 구입해 전국의 도서관과 사찰에 보냈다. 이렇게 시작된 스님의 법보시는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85만 부의 도서를 대중과 나눌 수 있었다.
# 종산스님은 젊은 시절 해인사 가던 중 배가 고파 국숫집을 찾다가 음식점 골목에서 불고기 냄새를 맡게 된 일이 있었다. 평소 계율을 지키려 노력한 스님이었지만 그날따라 불고기 냄새가 너무 향기로워 번민에 휩싸였다. 스님은 그 자리에 서서 “만약 고기를 준다면 먹겠느냐?”고 자문했다. 마음은 묵묵부답!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스님은 그 자리에 서서 수 차례 자문자답을 한 뒤에야 불고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스님은 또한 잠을 쫓기 위해 선방의 스님들과 함께 이마 앞에 못을 박아 두고 수행을 하기도 했다. 졸다가 못에 찍혀서 이마에 피를 흘리는 스님을 보며 티끌만큼의 허튼 생각도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성수스님은 열아홉에 집을 나와 떠돌다가 부산 범어사에 가서는 “여기서 제일 큰중 나오라.”고 소리를 치고선 동산스님 앞에서 “절에 도사는 없고 놀고먹는 중들뿐”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해인사에서 공부하다가 몸이 맑아지는 체험을 하고서 효봉스님에게 달려갔다가 “그것은 도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그렇다면 효봉의 도를 내놓”으라며 스님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이런 성수 스님인 만큼 깨달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말했다.
“싯다르타 태자는 화두를 탄 일이 없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새벽 별을 보고 대각을 이루었는데, 싯다르타가 새벽 별에게 화두 달라고 마음 낸 일도 없고, 새벽 별도 화두를 준 일이 없습니다. 화두는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지엄 선사가 화두를 하나 받기 위해 벽송 선사에게 십 년을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여도 화두를 일러주지 않자 하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우레 같은 항의를 하며 울고 돌아서 내려가는데, 벽송 선사가 ‘지엄아, 지엄아!’ 하고 부른 데서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것이지 화두로 깨달은 게 아닙니다. 지엄 선사가 간절한 마음을 내도록 해준 벽송 선사가 진정한 선지식입니다.”
#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은 “부처님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누구나 행자”라면서 본인도 “도를 이루지 못했기에 행자”라고 했다. 스님은 또 행복의 세 가지 조건으로 ‘감사하는 마음, 미소, 침묵’을 꼽은 고산 스님은 “집 지을 때 하는 기초공사가 수행자에게는 바로 계입니다. 옛 어른스님들은 그릇을 바로 놓아야 물이 많이 담긴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그릇 안에 담긴 물은 흔들리지도 않아야” 한다며 계율과 선정이 공부의 기본임을 역설했다.
# 고우스님은 우리 모두가 부처임을 강조하며 자기 자신을 바로 볼 것을 주문했다. “자기를 바로 봐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되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는 보지 말아야 합니다. 남도 긍정적으로 봐주고 서로서로 칭찬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성을 가지고 태어난 부처님입니다.” 불안한 사회 여건 속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고립된 생활을 하기 쉬운 현대인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다.
# 공부에 매진해 세상 밖 활동이 거의 없었던 적명스님은 ‘깨달음이 바로 무아(無我)’라며 평화의 근본에는 무아사상이 있을 것이라 했다. “무아는 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너도 없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不二]는 뜻도 됩니다. 깨달음을 얻은 보살은 중생을 위해 헌신합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아마 100년 후 이 세상에 평화의 시대가 온다면 그 근본에는 무아사상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 진제스님은 “세상사 바쁘다 해도 ‘참 나’를 깨닫는 이 일을 밝히는 것보다 바쁘고 급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참 나’를 깨닫는 데서 오는 밝은 지혜야말로 행복의 비결인데, 평생을 쏟아도 깨닫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돈과 명예라는 망상을 좇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스님의 마음도 느껴진다.
이책은 2010년 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18인의 한국의 대표 선지식들을 찾아 눈밭을 헤치고 땡볕을 머리에 이고 폭우 속을 달려 전국의 암자를 누볐다. 이런 노력의 결과 좀처럼 뵙기 힘든 큰스님들이 전하는 깨달음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 특히 선방에서 공부에 매진하며 일반 대중에게 거의 모습을 안 보이신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의 말을 담아 낸 것은 이 책에 더욱 특별한 가치를 더한다.
출가를 하게 된 사연과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미와 치열한 구도정신, 은사스님 이야기와 부처님 법에 대한 말에서 볼 수 있는 깨달음의 따듯한 깊이, 한국불교와 불자들에게 던지는 당부에 담겨 있는 냉철한 현실 고민 등을 독자들은 읽는 내내 거듭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슴에 담아둘 아름답고 뜨거운 한마디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책에 실린 인터뷰 중 적명 스님을 제외한 앞의 열 분(수산 스님부터 혜정 스님까지)의 자료는 공동저자 유철주가 조계종 총무원 홍보팀에서 담당한 ‘5대총림 방장 및 원로의원스님 홍보콘텐츠 제작사업’의 결과물이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취재 정리한 것이다.
유철주(jajuycj@hanmail.net) 2003년 부처님 품 안에 들어왔고 2004년부터 불교계 언론 등에서 일해 왔다.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현재 월간 「불광」 취재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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