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자를 세 번 내려치시고 잠자코 계시다가
“아시겠습니까?”
대중이 아무 말이 없거늘
대저 참선하여 깨침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내가 부처다’라고 하는 대신심과 화두를 드는 나와 화두 자체가 하나가 되는 대의심과 분통터진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화엄회상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일과 법화회상에서 8세된 용왕의 딸이 남방무구세계로 발길을 재촉하는 일과 또 열반회상에서 소잡는 백정이 부처님 법문을 듣고는 단박에 칼자루를 놓아 버리는 일등 이 같은 저들의 행보야 말로 대신심, 대의심, 대분심을 일으킨 결과입니다. 이같이만 하면 깨닫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대비보살처럼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밤에 뒷짐지고 목심을 더듬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이제 벌써 허다한 눈을 떴으니 다시 앞뒤를 따지거나 더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럴 때에 한량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눈으로는 본다하고 귀로는 듣는다 하고 코로는 맡는다 하고 혓바닥으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잡고 발로는 달아나나니 아는 이는 불성이라 하거니와 모르는 이는 괴이한 물건이라 여길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이 만일 도리로 여기거나 늘어놓은 것이라 여긴다면 이는 업식을 들어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옛 부터 마음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생사의 근본이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의 경지라 여깁니다.
모름지기 철저히 자기를 반조하여야 바야흐로 이렇게 변통하고 저렇게 놀린 뜻을 알겠지만 만일 사부대중 여러분이 빛과 소리를 그릇 알아서 집착하거나 짜고 싱거움을 그릇 알면 모두가 옳지 못한 일입니다. 모든 마음을 놓아 버리고 그렇게 했다면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으며 골짜기가 메아리를 울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가님은 천백 억의 몸을 나투고 대비보살은 천개의 눈과 천개의 팔을 갖추었습니다. 남자의 몸으로 선정에 들었다가 여자의 몸으로 선정에서 나오고 한 티끌에서 삼매에 들어갔다가 여러 티끌에서 삼매에서 깨어납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럴 때엔 어떠합니까?
전익분등육합운(展翼奔騰六合雲) 박풍고탕사해수(搏風鼓蕩四海水)
날개를 펴니 6합의 구름 위를 날고
바람을 움키니 4해의 바닷물이 소용돌이를 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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