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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갖고 있으면 불행해져, 좋은데 써야돼” [신행/포교/복지] 글자크게글자작게

 

류 근 철(한의학 박사, 모스크바 공립대 종신교수)

카이스트 5백78억원 상당 전재산 기부 ‘화제’
한때 출가 결심… 평생 보시행 실천하며 살아


세계적 쿵후 스타 청룽(成龍)이 지난해 12월 4000억원대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세간의 화제가 됐다. 평소 수입의 일정액을 꼬박꼬박 기부해온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은행 통장을 깨끗이 비워 가족이 아닌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다.
부자들의 기부는 비단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독실한 불자인 류근철 박사(82·한의학 박사, 모스크바 공립대 종신교수)가 카이스트(KAIST)에 전 재산인 578억원 상당의 부동산(임야, 빌딩, 아파트)을 기부해 우리의 척박한 기부 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기업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국내 최고 기록이다. 구랍 20일에 그를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편집자주〉

▲지난해 9월 카이스트에 578억 상당 재산을 보시해 세간에 화제가 됐는데요. 계기는?

-항상 내가 번 돈은 올바른데 쓰기위해 잠시 내 손을 거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은 귀신이 붙어 있고 노여움을 잘타지요. 따라서 돈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야합니다. 돈이 좋은 곳에 쓰이면 보람이 있지만 아니면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평생 모은 재산을 어디다 기부할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카이스트는 정부 출현 학교로 매년 4000억원을 정부서 유지비로 책정합니다. 카이스트가 발전 못하면 국민이 손해고 나라가 손해라는 생각에 여기다 기부하게 됐지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고 미래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책임질 곳이 카이스트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기부를 하게 된 동기가 가족사하고도 연결된다고 들었는데요.
-어머니의 영향이 컸어요. 부모님께서는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의 진원지인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시위를 주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본 경찰이 쏜 총탄에 부상을 당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붙잡혀 고문을 당하셨지요. 그 때 어머니께서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지셔서 정신 분열 증세까지 겪으셨어요. 이후 일본 경찰을 피해 도망치듯 이사를 다니며 집안 형편이 급속히 기울었고 결국 저는 등록금 60전을 제때 내지 못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머니께서는 거지들이 밥을 달라고 하시면 자신의 끼니를 대신 내어 주실 정도로 심성이 고왔던 분이셨지요. 항상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어렵게 사는 이웃을 위해 희생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중에 돈을 벌면 꼭 올바른 곳에 쓰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으면 학창시절 고생도 많이 하셨었을 것 같은데요.
-한때 어린나이에 일본으로 가 근로자 생활도 했어요. 지금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고생을 몸소 체험했지요. 나중에 늦은 나이에 대학(동양의학대학 한의학과, 현 경희대학교 한의예과)에 다닐 때에도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만을 먹으며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배고픔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의사가 될 몸인데 돈이 없어 굶는 사람, 소화기가 아파 굶는 사람의 고통을 미리 체험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교직(고려대학교 간호대학 교수)에 있었던 아내가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해줘서 많은 힘이 됐습니다. 아내의 내조가 없이는 기부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부자가 1년 안에 죽어 가족이 소송을 하면 50%는 되찾을 수 있는 유류법(遺留法)이란 규정이 있습니다. 1년 안에 죽지는 않겠지만 기부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는 진단소견을 첨부해 앞으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할 계획 입니다.(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래서 말썽이 안 생기려면 새해 9월까지는 꼭 살아 있어야 합니다.

▲가장 궁금한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500억이 넘는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됐는지 재테크 비법을 알려 주세요.
-어릴 때부터 고생해서인지 저축 정신이 강했어요. 한번 돈이 들어오면 함부로 쓰지 않고 곧바로 은행에 저축했어요. 저축한 돈은 큰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면 절대로 인출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지 운영하던 한의원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좋은 결과로 나타났어요. 그러다 한의원 운영과 ‘전자침술기’ 등 특허 낸 제품을 수출하면서 번 돈을 모아 서대문 쪽의 건물을 하나 샀는데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자산 가치가 크게 올랐지요. 그때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곳에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평소 박사님이 생각하시는 돈에 대한 철학이 있으시다면요.
-원래 돈이란 것에는 귀신이 붙어있어 노여움을 잘 타 개인이 갖고 있으면 반드시 불행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좋은 목적에 써야 합니다. 주식 투자도 한번 해봤는데 손해를 보고 다시는 손대지 않았지요.

▲기부가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부모님이 사셨던 고향 천안 천동 초등학교에 5년전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실내 체육관과 게이트볼장, 골프연습장, 시계탑 등을 세웠습니다. 또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 선생의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 무료 의료 봉사 활동도 벌였습니다. 기부란 물질로만 하는게 아닙니다. 생활속에서도 얼마든지 기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들었습니다. 불교와의 인연은 언제부터 였는지요.
-아주 오래 됐지요. 옛날에 스님들은 한의학을 모르는 분이 없었습니다. 마음의 병만 고치는게 아니라 육체적인 병도 많이 고쳤습니다. 오늘날 제가 있데 된 것은 모두 당시 수덕사에 주석하셨던 혜암 스님 덕분입니다. 스님은 제가 박사학위 받기 한 달 전 시봉스님 여 섯분과 함께 모교인 경희대를 찾아와 삿대질을 하며 가짜노릇만 하고 살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원래 박사학위 받고 출가를 결심했었거든요. 혜암 스님은 넌 머리 깎지 않아도 불도를 걷고 있는 놈이고 앞으로 큰 불자가 될 거니까 그냥 중생들 병 고쳐주면서 살라고 했어요. 만일 출가 했었으면 이렇게 큰 보시도 못했을 거 같네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번 기부를 계기로 카이스트 특훈 교수로 있으면서 한방을 활용해 우주비행사들의 신경질환 치료 연구 등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세계 속의 카이스트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 운동도 적극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카이스트 발전재단 명예 이사장직도 맡았습니다. 그리고 카이스트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앞으로 1000억 원의 기부금 모금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류근철 박사는?
1926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류 박사는 대한민국 1호 한의학(漢醫學) 박사로 현재 모스크바 국립공대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1956년부터 개업의로 진료를 시작한 류박사는 1972년 세계 최초로 침술로 제왕절개수술 마취에 성공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73년에는 경희대 한방의료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서의학중풍센터’ 설립을 주도, 처음으로 양방과 한방 협진을 시도했다.
류 박사는 현재 러시아아카데미 의공학회 정회원이자 사단법인 원자력응용의학진흥협회 명예회장직도 맡고 있다.

<출처 : 주간불교신문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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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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