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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 지상주의 과감히 깨고 고고학으로 불교실상 규명 [학술/문화재] 글자크게글자작게

 

미국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의 그레고리 쇼펜(Gregory Schopen)은 미국 내 대표적인 고액 연봉 교수다. 오스틴 텍사스주립대, 스탠퍼드대를 거쳐 UCLA에 정착한 그는 아직도 많은 대학들이 상당한 연구기금과 고액연봉으로 손길을 뻗는 1순위 스카우트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국가를 불문하고 인문학이 홀대 받는 요즘 시대에 쇼펜은 어떻게 이런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걸까?

미국 플로리다대에 재학 중인 성청환 씨는 최근 좥불교평론좦38호에서 쇼펜의 학문세계를 조명했다. 성 씨에 따르면 쇼펜은 불교학에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기존의 관념과 연구 결과들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학자다. 특정한 연구 자료 문헌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만 집중하고 그에 따라 도출되는 결과만을 수용하는 기존의 연구 형태는 인도 역사에서 종교로서 일상생활에서 실천됐던 불교의 생생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까닭에 쇼펜은 인도불교사의 흔적으로만 치부됐던 다양한 불교유물들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현대불교학에 고고학적인 방법론을 접목 시킨 그는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산재하고, 때로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유물들이 불교학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해석한다. 이로써 그는 문헌 연구에서 도출된 일반화된 기존 관념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쇼펜이라는 학자를 두고 ‘불교학 연구에서 단순히 연구 범위의 외연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연구방향을 전환시킨 의미 있는 학자’로 평가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쇼펜은 지금까지 좬뼈, 돌 그리고 불교 승려좭, 좬불교 승려와 경제 문제좭, 좬인도대승불교에 대한 허상과 단상좭 등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동안 발표됐던 50여 편의 논문들을 시대와 주제에 따라 재분류하고 첨삭한 이 책들은 한 마디로 “놀랍다”는 것이 성 씨의 평가다. 범어, 티베트어, 팔리어는 물론이고 한문 경전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도 탁월할 뿐 아니라 최근까지 서구 불교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한계까지 정확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의 학설과 판이한 충격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주장들은 거장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기원전 1~2세기 전후에 세워진 산치대탑의 비문 연구를 통해 그곳에 주요한 기부자로 비구, 비구니가 참여해 엄청난 액수를 보시하고 있음에 주목한 그는 스님들의 사유재산 소유를 금기시 했던 문헌기록과는 달리 실제론 스님들이 많은 재산을 소유했었음을 밝혔다. 또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스님이나 사찰이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지, 스님이나 사찰의 부채는 어떤 경우에 허락될 수 있었는지, 사찰은 돈을 빌려주고 이율은 어떻게 정했는지, 부채를 해결하지 않은 스님의 사후에 그 빚은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책임을 부가할 수 있었는가 등 문제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스님들은 일상적인 장례나 의례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인도 고대 불교사원인 나가르주나 콘다 주변에서 발견된 2세기 남인도의 동전들과 납덩어리, 동전 주조 틀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곳 사원의 스님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고 무역이나 상업에 깊이 참여했거나 혹은 화폐를 위조하는데 관여했을 것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렇듯 쇼펜은 출가자로 구성된 승가가 세속적인 많은 문제들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간주하기 쉬운 선입견들을 깨고 승가도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로 그 내부에는 수많은 일상이 펼쳐져 왔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승불교의 기원이 불탑신앙에 있다는 보편적인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경전에 대한 숭배’에서 대승불교가 시작됐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편 것도 바로 쇼펜이다. 즉 경전 그 자체가 법신으로서 숭배의 대상이며 그 경전 신앙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탑의 숭배도 함께 진행됐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초기대승불교 경전 편찬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승려의 몫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성 씨가 “오랜 세월 서구의 기독교 연구 학자들이 끊임없이 추구했던 ‘참된 종교’라는 추상화된 관념을 현대 불교학자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쇼펜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쇼펜의 학문태도가 2600년 전 성전(veda)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했던 붓다를 쏙 빼닮은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출처 : 법보신문 03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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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8 /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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