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인쇄본 확립과정, 지식ㆍ정보 표준화에 영향” 조은수 교수, 고려대장경硏 국제학술회의서 주장
중국 돈황석굴에서 발견된 필사본과 고려대장경 텍스트에 대한 비교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고려대장경연구소(이사장 종림스님)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대강당에서 ‘고려대장경을 통한 돈황사본의 재인식’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돈황문서 연구의 권위자인 팡구앙창 중국 상하이사범대 교수를 비롯해 다카도 도키오 일본 교토대 교수 등 세계 석학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돈황문서를 토대로 한 불교학과 문헌학, 서지학, 자형학(字形學) 등 그간의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틀간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돈황사본과 고려대장경을 비교ㆍ연구한 논문이 여러 편 소개됐다. 조은수 서울대 교수는 ‘범망경 이본을 통한 고려대장경과 돈황유서 비교연구’를, 김기화 고려대장경연구소 연구원은 돈황본 <금강경>과 초조ㆍ재조본 <금강경>을 교감한 결과를 발표했으며, 정연실 고려대장경연구소 연구원은 ‘돈황사본과 고려대장경의 금강경 이체자 연구’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지난 20일과 21일 이틀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대강당에서 ‘고려대장경을 통한 돈황사본의 재인식’을 주제로 열린 고려대장경연구소 국제학술회의.
특히 조 교수는 논문에 통해 5세기경 중국에서 성립된 위경으로 대승보살계를 설하는 경전인 <범망경>에 대해 고찰했다. 논문에서 조 교수는 스타인본 50점 총 342장에 이르는 돈황사본을 활용해 초조 및 재조대장경의 판본과 대조작업을 진행해, 판본에 따라 경전수록 범위가 다르며, 내용도 수정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본 50점 중 3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범망경> 하권을 담고 있고, 초조대장경에는 <범망경> 하권만 수록돼 있는 것과 달리 재조대장경에는 상하권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조 교수는 “<범망경> 판본 간에 글자 출입이 상당하며 오랜 시일을 거쳐 많은 교열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에 따라 생겨난 여러 이본들은 10세기 대장경 제작을 통해 선택과 조정의 과정을 거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고려대장경은 10세기 전후 목판인쇄술이 정착돼 가던 시기에 사본의 형태로 유통되던 다량의 문헌들을 수집 정리해 목판인쇄술로 출간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는 당시 서로 경쟁하는 지식과 정보가 어떻게 비교되고 조정돼 표준화 과정을 거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대장경이 후대 중국 등에서 출간된 대장경에 비해 정확도가 크게 높다는 사실은 사본을 수집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교한 교정과 교감을 거쳤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한국 및 중국에서 진행 중인 돈황문서 데이터베이스 작업도 소개됐다. 첫째 날 고려대장경연구소(http://kb.sutra.re.kr)가 선보인 것은 IRS(Image Reading System)이다. 글자 그대로 이미지를 읽는 시스템으로, 이것이 구축되면 텍스트와 이미지 병행검색이 가능해 경전 내용을 찾기가 용이해 진다. 이를 위해 연구소에서는 초조대장경과 관련된 이미지 약 10만장을 비롯해 재조대장경 이미지 20만장을 확보해 놓고 있으며, 이를 둔황문서로 확대해 30여 만장의 이미지를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오윤희 소장은 “IRS를 활용하면 초조대장경과 재조, 돈황문서에 대한 삼각대조가 가능하다”며 “자료의 변천정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팡구앙창 교수도 현재 추진 중인 돈황유서(遺書)의 데이터베이스(DB) 관련 작업에 대해 소개했다. 2005년 공개한 DB를 확대ㆍ발전시킨 두 번째 DB는 MS Word 파일 형식으로 보존돼 있는 돈황유서의 원시자료들을 불러들이고 오류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또 여러 가지 조건으로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며, 사진도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정을 거친 뒤 학계에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