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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무제 황권강화 승랑이 앞장섰다” [학술/문화재] 글자크게글자작게

 

동국대 김성철 교수 주장

삼론과 화엄에 능통했던 고구려 출신의 승랑(450~530?) 스님이 중국 최고의 호법왕으로 일컬어지는 양무제(464 ~549)의 황권확립을 위한 이데올로기 제공자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는 「한국불교학」53집에 게재한 ‘양무제의 『주해대품서』에서 보이는 승랑의 영향’이란 논문에서 양무제가『주해대품서』를 저술한 시기와 진신불성론을 주장한 시기 등을 추적함으로써 이 저술에 끼친 승랑의 영향을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그동안 학계에 삼론학의 중흥조인 승랑이 남조의 수도 금릉 북동쪽에 위치한 섭산에 머물면서 양무제에게 가르침을 전해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향케 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김 교수는 대만 학자 얀샹원(顔尙文)의 ‘양무제 주해 「대품반야경」과 불교국가 건립’(1988)이란 논문을 보완해 양무제의 정치적 의도를 분석했다.

즉 북조는 ‘제왕이 곧 여래불’을 표방하는 정교결합의 체제였으나 여산 혜원의 ‘사문불경왕자론’에서 보듯 남조의 경우는 승려가 제왕을 능가했기에, 양무제는 불교경전에서 이론적 합법성을 찾아내 친히 불교해석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고, 승랑의 도움을 얻어 사문에 대한 군주의 열세를 돌파해 제왕이 주도하는 불교국가 체제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512년 섭산의 승랑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신삼론의 가르침을 받은 양무제는 이후 금릉의 고승대덕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해 친히 『대품반야경』을 강의하기 시작해 517년에는 기존의 불교관에 대한 비판이 실린 『주해대품서』를 저술했다. 김 교수는 여기에서 양무제가 기존의 ‘진신불성론’을 버리고 ‘중도불성론’을 표방하고 있으며, 승랑의 사상을 연상케 하는 용어들을 대거 사용하고 있음을 꼼꼼히 밝혔다.

특히 『주해대품서』 저술이 끝나자 20세도 안된 장남 소명태자로 하여금 법운, 법총, 승민 등 양의 고승대덕들을 가르치게 한 것 등으로 볼 때 “양무제가 좬대품반야경좭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통해 황권이 승권보다 우위에 있는 불교국가를 건립하려 했다”는 얀샹원의 해석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결론적으로 “멀리 고구려 요동에서 내려와 섭산에 은둔하며 양의 대덕들과 상반된 가르침을 폈던 삼론학의 중흥조 승랑은 양무제의 황권 확립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제공자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출처 : 법보신문 03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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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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