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율사 됐다고…’ 하는 말에 그저 하고 버리는 말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 하는 말이 입에 발린 소리요, 쳐다보는 눈빛에는 별종이라는 놀림이 가득하니 어느 누가 반가워하겠는가? 이제는 면역이 되었을 만도 하건만 한참 아랫자리 스님까지도 교육에 임하여 부처님께 절하는 일을 극기 훈련이라 몰아붙이고, 토론 자리에서 건설적인 말이라도 한 마디 던지면 ‘스님도 그런 말씀 하실 줄 아십니까?’ 하는 소리에 서운함마저 든다.” (- 철우스님의 저서 <욕심을 버리는 방법> 중에서)
“오직 부처님을 닮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율사의 길에 들어선 상좌가 겪는 난처함을 이야기 한 것이지만 계율을 공부하며 계단 소임을 맡아 본 스님이라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언행 하나하나가 그대로 타의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반들 사이에서도 곧잘 ‘왕따’가 되는 스님들이 율사들이다. 특히 동진출가하여 계율 속에 살아가는 철우스님에게 있어 이러한 일은 자신이 당한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생각한 것도, 준비한 것도 없는데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어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불제자도
살아가는 목적은 같습니다
처음 부처님 앞에 서서 합장하던
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도
‘지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산율원 율주 이외 스님이 맡은 소임은 행자교육원, 단일계단 구족계 수계산림에서 습의사-인례-갈마위원-교수사-유나-갈마아사리 등 인천(人天)의 스승을 배출하기 위한 결사와 다름없는 불사다. 해인총림 율원 1기로서, 불교TV 회장 성우스님(파계사 전 주지)과 함께 총림이 아닌 단위사찰에 처음으로 율원을 개설한 당사자로서 책임감 또한 막중하기 때문에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더 더욱 조심스럽고 경건하기까지 하다.
<사진> 지난해 11월 율장연구소 개원과 함께 <사분율장> 한글 현토번역본을 낸 철우스님은 최근 20여명의 ‘율장연구회’ 스님들과 분담해 수정보완판을 내기로 하는 한편 내년 단일계단 구족계 수계산림 30년사 발간준비 작업 등으로 쉴 틈이 없다.
지난 3월23일 파계사에서 만난 스님은 13년 전 인터뷰 때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장기간의 수계산림으로 인한 피로를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는 ‘세월’의 흔적뿐이다. 스님은 제36기 행자교육에 이은 제29회 단일계단 구족계 수계산림 등으로 인해 목이 가라앉고 얼굴의 붓기가 채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였다.
“부처님 계율은 어느 누구는 지키고, 어느 누구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지키지 않으면 권리는 얻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편리하고 간편한 것만 찾는 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경책하는 것이 계율이다. … (중략) … 계율이 없으면 부처님의 법도 있을 수 없다. 과거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면 어떤 부처님 때는 정법이 오래 갔고 어떤 부처님 때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 가르침이 오래 갔던 때는 반드시 계율을 제정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였다. ‘이 일은 하고 이 일은 하지 마라. 이 일은 생각하고 이 일은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끊고 이것은 잘 지켜라’ 하신 말씀을 한갓 잔소리나 구속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부모의 꾸지람을 듣기 싫어하는 후손이 잘 되는 법은 없다. 자유는 무책임한 방종이나 방임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부처님은 계율로써 대중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바를 가르치신 것이다.”
스님이 책으로 옮겨놓은 ‘계율단상’을 되새기며 재차 확인하고 싶은 것은 ‘지계 없는 수행은 있을 수 없는 것인가’다.
“철칙이죠. 왜 철칙이냐 하면 지계(持戒)는 스님으로서의 체신(體身)이거든요. 수행자의 위의에 맞지 않게 옷을 입거나 행동한다면 타인으로부터 지탄받게 되겠죠. 부처님께서 제일 염려하신 것도 그것입니다. 제3자로부터 지탄을 받아 상처받게 되면 교단의 구성원으로서 또 부처님의 제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법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쪽으로 말씀하셨거든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계율도 좀 완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반론이 끊이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하지만’은 스님에게 있어 단서도 이유도 될 수 없다.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일부 사람들의 희망사항이죠. 바꿀 수 없는 이유는 부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심에서 고생하는 스님들이나 산속의 우리들이나 살아가는 목적이 ‘부처님을 닮으려는 것’ 아니에요?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은 달라질 수 있지만 과거의 부처님 제자나 현재의 부처님 제자나 석가모니부처님을 닮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 말씀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문화생활과 관련한 계율이 첨부되면 됐지 과거의 것이라고 없앨 수 없는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계율을 어렵게만 생각하다보니 스님들조차 공부할 마음을 쉽게 내지 못하고 일반인들은 일주문에 발 들여놓는 것조차 어려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님은 2년 과정의 율원을 마친 후학들을 위해 가시밭길을 더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평생 율장을 강의할 수 있는 곳에 길을 터주고 연구할 수 있는 전문공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뚜벅뚜벅 걸어가듯이 하는 그런 수행방법이 부처님 당시에는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어요. 우리가 생활 속에서 걷듯이 지계도 그런 식으로 이끌어가면 힘들지 않게 익히고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걸어가면서 발밑에 벌레는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일은 없는가. 그렇게 익혀가는 게 경행이거든요.” 요즘은 틱낫한에 의해 알려진 ‘걷기명상’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의 경행(經行)이 사라져가는 것 또한 스님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불교신도의 장점은 융화될 수 있는 모나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매몰차다고 할 정도로 악착같이 흑백을 구분 짓는 그런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은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우리는 갖고 있거든요. 사회가 핵가족화 되어 가면서 둥글둥글한 성품을 배울 곳이 없어요. 점점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에서 이분법적 사고를 고치고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성품을 갖춰가게 할 수 있는 곳이 불교입니다.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부처님 앞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오래 될수록 대접받는 게 물건으로는 골동품이고 사람으로 치는 노스님들이라고 한다. 천진동자와 같은 원로스님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 발심해서 절에 올 때 그 마음이 꾸준해지면 정진력이 되고, 정진력이 쌓이면 선정(禪定)에도 들 수 있고 깨닫게 되잖아요. 처음 절에 가서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 앞에 합장하던 그런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합장하는 데 어떤 과정이 있는 것같이 생각하지만 정해진 게 없었거든요. 그 과정은 자기가 만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지계(持戒)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합장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쌓아 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유익한 시간이 됐습니다.”
철우스님은…
성우스님 주지시절 ‘영산율원’ 개원
행자교육 · 단일계단 소임에도 헌신
여산(如山) 철우(哲牛)스님은 1959년 경북 청도 적천사에서 향봉(香峰)스님을 은사로 동진 출가, 의정부 망월사에서 향봉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합천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 범어사승가대학(2회), 해인총림 율원을 마치고 호경 강백으로부터 전강, 자운 율사로부터 전계 받았다. 조계종 행자교육원 습의도감, 계단위원회 위원, 파계사 영산율원장, 단일계단 구족계 존중아사리, 제18회 단일계단 유나, 법계위원회 시행위원, 의제실무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최근 회향된 제29회 단일계단 구족계 수계산림에서도 존중아사리 겸 유나 소임을 맡아 전계대화상 고산스님, 교수아사리 종진스님, 갈마아사리 성우스님을 모시고 실무를 일일이 챙길 만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96년 4월 개원한 영산율원은 총림이 아닌 단위사찰로는 조계종 최초의 율원이다. 1969년 해인총림 율원을 함께 졸업한 성우스님과 철우스님이 제방 선원에서 참선수행하는 수좌처럼 평생 동안 계율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행공간을 만들자고 합심해 이루어낸 곳이다. 공부기간이나 학인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율원에 뜻을 두고 건립했으나 지난 2002년 종단 율원으로 정식 인가되면서 2년 과정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계율공부를 위해서는 강원처럼 4년 과정으로 늘려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철우스님은 2005년 11월 대학원 과정격인 계율연구원 ‘비니원’을 개원한데 이어 전국 6개 율원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계율전문 도서관인 ‘비니장(毘尼藏)’까지 갖춰 후학들이 마음껏 계율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출처 : 불교신문 4월 4일자> [위 기사는 영천 만불사에서 스크랩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