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광 스님은 실상사 봉암사 직지사 등 여러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아왔으며 은사 도봉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십 년간 수행과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1.태어나기 전에 정해진 길
“우리에게는 두 사람의 아버지가 있어요. 한 사람은 나를 낳아 준 아버지이고, 한 사람은 정신세계를 인도하는 아버지입니다. 이곳에는 여러분들을 바른 세계로 인도해주는 아버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십니다.”
소학교 6학년 때 김룡사로 가을 소풍을 온 소년은 안내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설레었다. 첫돌 전에 돌아가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가 이곳 김룡사에 계신다고 하니 얼른 만나보고 싶었다.
소년은 스님에게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 나한전에 들어갔다. 나한전의 문을 여는 순간 금색의 몸을 하고 있는 불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 분이 아버지라 생각하니 너무 반가워 와락 껴안고 싶었다. 그동안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를 몇 시간이고 목놓아 불렀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고,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불상 옆에 있는 수많은 나한들 또한 아버지로 다가왔으니 소년은 한꺼번에 많은 아버지를 얻은 것만 같았다. 이제 아버지가 계신다고 생각하니 아버지 없던 설움이 씻은 듯 날아갔다.
중학교 1학년 때 하늘같이 의지하고 살았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게 되었다. 소년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어린 나이에 인생을 알 수는 없지만 평탄치 않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절망했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김룡사의 화주보살이었던 시어머니를 따라 열심히 절에 다녔다. 지금은 열반하신 혜암 스님을 뵙게 된 어머니는 “내가 왜 팔이 끊어져야 하는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혜암 스님은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사람들에게 오른손으로 술집을 가리켜주었으니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혜암 스님의 말씀 한 마디에 어머니는 모든 것이 운명임을 절감하고 전생 빚을 갚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더욱 부처님께 매달렸다. 성철 스님께서 김룡사에 주석하였을 때 어머니는 성철 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았는데, 그때 불명이 ‘여래자(如來子)’였다. 성철 스님께 여래자의 뜻을 물었더니 ‘여래의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라고 풀이해주었다.
“보살 아들은 출가 할 운명을 타고 났으니 여래의 아들을 낳은 것이 맞지? 그러니 그 이름을 줄 수밖에 없지.”
성철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는 ‘아들을 출가시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눈에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억겁의 수많은 인연의 고리에 의해 자광 스님은 출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미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출가의 길이 예정되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부처님과 첫 인연을 맺었던 곳이 김룡사였는데, 자광 스님은 십몇 년 동안 김룡사 주지 소임을 맡아 일했다. 혹시 김룡사 중창설화의 주인공인 ‘김용’이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마저 하기 위해 환생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자광 스님은 스물여섯 살 때 팔공산 북지장사에서 도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다음은 은사이신 도봉 스님으로부터 받은 법어인데 이것이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유연직주(有緣直住) 인연이 있으면 머물러라. 막존시비(莫存是非) 어떤 일이 있어도 시비를 두지 말고 불탐소출(不貪所出) 나오는 바를 탐하지 말라. 무연이거(無緣而去) 인연이 없으면 떠나거라.
“은사 스님은 평생을 수행자로서 올곧게 살다 가신 분입니다. 인연이 있으면 머물고 머물러도 시비를 두지 말라고 했어요. 또 거기에서 얻어지는 소출을 다 되돌려 회향하고 또 인연이 없으면 떠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광 스님은 실상사, 봉암사, 직지사 등 여러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아 수십 년간 수행과 포교에 매진하기도 했다. 은사의 가르침대로 인연 따라 살다보니 지금은 물같이 바람같이 떠돌면서 법문 청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법문을 토하는 것이다. 스님의 다이어리를 보면 쉬는 날 없이 법문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있다.
사람들은 자광 스님을 가리켜 설법제일인 ‘부루나 존자’라고 한다. 부루나 존자는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고 쉽게 설명해주었기에,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제일'이라는 인가를 받게 되었듯이 자광 스님 또한 그러하다. 불교TV에서 <원각경>과 <증도가> 강의를 했는데, 어려운 내용을 참으로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냈기에 스님의 인기는 끝없이 치솟았다.
자광 스님께서 설법제일이라는 칭호를 듣게 된 그 이면에는 경상(經床)에서 무수한 낮과 밤을 맞이하고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광 스님은 관응 스님을 비롯하여 구산, 일우, 각성 스님 등 대강백을 모시고 경학과 어록을 두루 공부했다.
2.온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완주 송광사에서 자광 스님의 법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길을 내쳐 달려온 것이다. 다행히도 밤을 도와 내리던 비는 수굿해졌다. 송광사 설법전에는 이백여 명의 사람들이 정좌하고 스님의 법문을 기다리고 있다. 설법전 바깥에는 자리가 없어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자광 스님은 그날의 법문 내용을 A4용지에 앞뒤로 소상하게 적어 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청법가가 끝나고 자광 스님이 사자좌에 오르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광 스님은 주장자를 번쩍 들어 보이면서 말씀을 이어갔다. “이 주장자는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조실 스님들이 ‘이 주장자 안에 모든 법문이 다 들어있다’하고 말을 마치는데 제가 오늘 그 뜻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 이 주장자를 든 것입니다. 이 주장자가 된 나무는 살았을 때는 꼼짝하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켰지만, 죽어서는 이렇게 온 천지를 다니니 죽은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이 나무는 생명이 없으니 살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우리 마음도 이처럼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조실 스님들이 주장자를 들어 보이는 것은 ‘보고 듣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의 운전수이니 좋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이 곧 말이 되고, 말이 곧 행동이 되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행동이 곧 버릇이 되고 버릇이 곧 운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운명에 부처님의 기운을 좀 많이 불어넣어서 자신을 완전히 바꾸어야겠지요? 무명을 사랑하면 윤회를 하고, 광명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불생불멸의 세계에 갈 수 있어요. 마음의 실상을 깨쳐서 무생법인을 증득해야 합니다.”
자광 스님은 자기 마음을 잘 조절하면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방편 불교에 끄달려서 마음닦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스님은 스스로가 실천하고 행하는 진실불교를 지향해야 한다며 부모님이 대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불법을 가르쳐 주고 불교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강조한다
“방편 불교보다는 진실 불교를 지향해야 합니다. 진실불교란 내 스스로가 실천하고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밥이 많아도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내 배가 부르지 않듯이 좋은 일을 하지 않고는 복을 지을 수가 없어요. 복 받는 것도 누가 대행해 줍니까? 자식들을 위해 절에 와서 시주하는 것을 대행이라고 하면 대행이라 할 수 있어요. 대신 기도해 주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자식에게 불법을 가르쳐 주고 불교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편불교보다 빠르고 복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함께 법문 듣도록 하세요.”
스님은 일방적인 법문이 아니라 청중과 함께 소통하기를 원하기에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끌어나갔다. 스님은 또 다시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하고 묻는다. 대중들은 “온 곳이 없으므로 갈 곳도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우리는 과거가 있으므로 온 곳이 있고 미래가 있음으로 갈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고감이 없다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우린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기에 내가 살다가 죽는 날도 오늘이요, 내가 다시 태어난 날도 오늘이기에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광 스님은 ‘불자들의 삶이 어떻게 하면 향기로울 수 있는지’를 들려주기 위해 먼저 이미자의 노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음정 박자 무시하고 멋지게 불렀다. 생각나는 가사 중 일부분을 떠올리면 ‘...... 나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내 안에 가득 사랑이, 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는 구절이다.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다들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픔을 견디면서 살아갈 이유가 저마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광 스님은 사자좌에서 권위 같은 것을 벗어 던진 지 오래고, 음정 박자 무시하고 기분에 취해 불러대는 노래는 청중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우리의 뇌는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하도록 만들어졌음을 이미 간파한 스님은 항상 구체적이면서도 단순한 이미지가 담긴 메시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일상적이고 실생활에서 일화를 가져오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피부로 와 닿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로 실천할 수 있게 해준다.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살면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어떤 아픔이 있어도 다 극복할 수 있어요.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을 스승으로 여기고 전생 빚 갚는다 생각하면 화 낼 일이 없지요. 가장 좋은 불공은 남과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다툴 일이 생겨도 ‘그까짓거’하면서 넘겨버리면 그것이 인욕이고 수행하는 것이지. 불자들이 이유 있는 삶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들이 평화롭기를 행복하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피었다가 지는 저 꽃보다 맑고 향기로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 주인 노릇하는 것이 향기 있는 삶입니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내 주위가 점점 아름답게 보이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뭔가 인연에 의해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솟아오를 때 우리는 그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주위를 볼 때 아름답지 않다거나 주위를 볼 때 환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지식이지 지혜가 아닙니다.”
스님은 어느 새 주제를 바꾸어서 요즈음 독서계와 언론매체를 장식하고 있는 다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창조설을 부인하고 진화설을 주창한 다윈은 20세기의 과학과 예술과 정신적 틀을 바꾸어 놓았기에 탄생 이백주년을 맞이하여 더욱 더 그 의미가 깊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능엄경>에는 지구가 만들어진 과학적인 원리가 분명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지구가 생긴 것을 확실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말한 종교는 불교뿐입니다. 그 좋은 성경책에도 태초에 하늘이 열리라 하니 하늘이 열렸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능엄경>에 언급된 지구의 탄생을 보면 다음과 같아요.”
‘원각(圓覺)의 밝음과 허공의 어둠이 만나서 바람을 일으켰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쇠붙이가 생기고 거기서 사랑하니 불이 생겼고, 불이 있으니 물이 생기게 되었지. 젖은 것은 바다가 되고 마른 것은 땅이 되었는데, 또 바람이 부니 구름이 생기고 구름이 생기니 비가 되고 눈이 되고 이슬이 되는 것이다. 산천초목 등 60만 종류의 생명체가 108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진 지구 위에 만나고 이별하며 살게 되었다.’
“지구가 생겨난 이치를 정확하게 알아야 지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천불생무연지인(天不生無緣之人)이라, 하늘은 인연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태어나고 지구가 생긴 것은 창조가 아니라 인연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연기법이지요. 여러분! 불교는 참으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종교입니다. 불자인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 이 법당에서 나가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세요.”
자광 스님은 대중가요 ‘내 마음 별과 같이’를 일부 개사한 것을 노래 부르는 것으로 법문을 끝맺었다. 부처님의 원만덕상 내 마음도 그와 같이~ 부처님의 청정 법신 내 마음도 그와 같이~ 부처님의 대자대비 내 마음도 그와 같이~ 부처님의 신통묘용 내 마음도 그와 같이~ 바람이 자고 있어도 꽃은 떨어지고, 봄은 갔건만 꽃은 아직 피어있는 그 도리를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일삼아 생각해보아야겠다.
자광 스님 약력
1943년 문경 출생. 1970년 팔공산 북지장사에서 도봉 스님을 은사로 득도. 81년 지리산 실상사 주지, 83년 희양산 봉암사 주지, 89년 운달산 김룡사 주지, 2002년 직지사 주지 역임. 89년 직지사 녹원 대종사로부터 호산(皓山) 법호를 받음. 2004년부터 현재까지 김룡사 회주. 지금은 생명나눔실천회 부이사장이며, 문경불교대학 학장이다. 저서로는 <좋은 만남 멋진 이별>, <이름 없는 풀이 없듯 인연 없는 중생 없네> 등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