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관 금강대 연구교수 금강역사 조명 불교미술 등장 후 대승경전에도 나타나 일부학자들 ‘힌두교 영향’ 주장은 억측
그림] 기원후 1~2세기 무렵 간다라에서 제작된 조각. 오른쪽이 헤라클레스 영향으로 등장한 금강역사다.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웃옷을 벗어던진 채 울퉁불퉁 근육질을 내보이며 험상궂은 눈을 부릅뜨고 사찰을 지키는 금강역사(金剛力士, vajrapani). 이러한 금강역사의 원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로 서력기원 전후께 간다라 불교미술에 정착됐으며, 이후 대승불교경전 찬술에도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심재관 금강대 HK연구교수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소장 안성두)가 4월 22일 오후 3시 금강대 본관2층 대회의실에서 개최 예정인 제5차 콜로키움에서 간다라 지역 불전부도 및 불상에 나타나는 금강역사(바즈라빠니)와 헤라클레스와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심 교수는 미리 배포된 ‘헤라클레스, 인드라 그리고 바즈라빠니 재고찰’이란 논문에서 그린베델이나 푸쉐, 라모뜨 등 과거 학자들의 전제였던 “헤라클레스가 인드라를 대체해 바즈라빠니라는 불교의 신장(神將)으로 변모했다”는 틀에서 벗어나 “헤라클레스가 인드라의 속성에 매우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인드라와 같은 매개가 필요 없이 그대로 불교 속으로 흡수돼 금강역사라는 신장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헤라클레스는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고 괴물을 사로잡았다는 신화 속 인물로 그리스는 물론 기원전 2세기 박트리아 주화에도 등장하는 등 페르시아, 인도, 서역지역까지 폭넓게 영향을 준 힘센 영웅이다. 이번 논문에 따르면 당시 인도 및 간다라 지역 불교인들은 헤라클레스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손에 곤봉을 쥔 모습으로 인해 헤라클레스라는 낯선 외래어보다는 인도식 표현법으로 ‘바즈라빠니’, 즉 ‘곤봉이나 몽둥이를 쥔 자’라고 불리고 그것이 고유명사로 정착한 것. 이에 따라 몽둥이를 쥔 용맹과 강인함의 상징 바즈라빠니(금강역사)가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하고 붓다를 호위하는 신장으로 불교미술과 경전에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특히 ‘바즈라빠니’라는 용어가 불교 이전의 힌두교(베다)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 점에 주목해 금강역사가 힌두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립됐음을 강조했다. 즉 기존의 학자들이 『샤타빠타 브라흐마나』나 『샤드빙샤 브라흐마나』 등 힌두교 문헌에 인드라의 명칭으로 ‘바즈라빠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금강역사가 힌두교의 영향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들 경전은 불교 이후에 성립됐다는 게 심 교수의 지적이다.
또 그는 금강역사가 등장하는 간다라 불교미술이 금강역사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보요경』, 『불소행찬』, 『대사』 등 대승불전류보다 훨씬 이르다는 점에서 금강역사가 불교경전의 영향으로 불교미술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불교미술에 먼저 나타난 후 대승경전에 금강역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호탄에서 비사문천 신앙이 민간에서 유행했던 것처럼 간다라 지역을 중심으로 헤라클레스 문화가 있었고 이러한 현상의 파급으로 불교가 헤라클레스를 수용해 호법신장으로 삼았을 것”이라며 “이같이 조성된 조각들이 점차 불교승려들에게 영향을 주어 후대 불전문학에 금강역사가 등장한 것으로 도상이 텍스트에 영향을 준 특별한 사례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경주 석굴암 내 금강역사.
한편 이날 콜로키움에서는 △중국의 티벳학 현황과 전망(조석효) △진송(晋宋)시기 중국불교 이제설의 수용-유무(有無) 개념과 관련하여(하유진) △경량부의 ‘인식 대상(所緣)’ 개념에 대한 소고(박창환) 등 논문도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