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낸 ‘오대산의 학(鶴)’ 한암(1876~1951) 스님이 스승 경허(1846~1912) 스님의 법어, 시(詩), 가송(歌頌), 기문(記文), 서간문 등을 모아 직접 베껴 쓰고 편집한 『경허집』이 공개됐다.
평창 월정사(주지 정념)는 4월 20일 서울 조계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지가 김민영(64) 씨가 소장하고 있는 ‘한암본 경허집’을 겉표지까지 그대로 되살린 『한암선사 육필본 경허집 영인본』을 선보였다.
현재 활자본으로 전해지고 있는 『경허집』은 1943년 3월 중앙학원(선학원)에서 펴낸 것으로 수덕사 만공 스님의 요청에 의해 만해 스님이 편집을 맡아 간행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경허집』은 중앙학원 간행본보다 12년 일찍 작성된 것으로 한암 스님이 56세 때인 1931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한암 육필본 『경허집』은 가로 18.6cm, 세로 26.5cm로 174쪽으로 이뤄져 있으며, 한 쪽당 12행으로 1행당 약 20여 자가 쓰여 있다. 또 종이는 일제 때 사용하던 기름 메긴 미농지로 별도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 금전출납 장부 같은 종이에 쓰고 있어 당시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던 산중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글씨체는 한 글자 한 글자 대단히 단아하고 정갈해 한암 스님의 인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육필본은 중앙학원 판본과 내용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다는 점에서 중앙학원 판본의 모본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다만 중앙학원 판본에는 한암 스님이 직접 지은 ‘선사경허화상행장(先師鏡虛和尙行狀)’이 없지만 육필본에는 이를 맨 앞에 배치하고 있는 점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한암 육필본 해제를 쓴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한암 스님이 경허선사의 행장을 쓰면서 ‘뒤에 배우는 이들이 경허화상의 법화(法化)를 배움은 옳으나 화상의 행리(行李)를 배우면 안 된다’ 등 문구가 행장에 포함돼 있는 것을 만공 스님이 못마땅하게 생각해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번 영인본을 펴낸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경허선사는 한국선의 중흥조이고 한암노사는 근대 한국불교 조계종 성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신 분”이라며 “이번에 한암노사께서 회편(會編) 필사한 『경허집』은 종단적 차원에서는 물론 원로 큰스님들과 문도들, 그리고 경허선사와 한암노사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께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암 스님은 1899년 경북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 스님을 만나 안광이 홀연히 열렸으며, 이후 경허 스님을 평생 스승으로서 극진히 존경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또 경허 스님도 제자이자 30년의 후배인 한암 스님에게 보살이라는 의미의 ‘개사(開士)’라는 존칭과 함께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