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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불사와 함께하는 봄나들이 [참배] 글자크게글자작게

 
① - 경주 절터 기행

만불사와 인접한 경주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신라 천년의 고도이다. 이곳에는 “사찰이 별과 같이 늘어섰고, 탑은 기러기 날아가듯 서 있다”는《삼국유사》의 기록처럼 많은 불교유적이 남아있다. 아침 일찍 만불사를 참배하고 경주로 가 절터를 따라 신라불교의 옛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은 어떨까?

경흥 국사 주석처 삼랑사지

경주시 성건동에 있다. 진평왕 19년(597)에 창건됐다. 신라 신문왕 때 경흥 국사가 이 절에 머무르며 저술에 힘썼다고 한다. 스님은 이곳에서 여승의 해학적인 춤을 보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또 스님이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을 문수보살이 경책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현재 보물 127호로 지정된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경주터미널에서 형산강을 따라가다 만나는 첫 삼거리 북동쪽에 있다.

신라 최대 사찰 황룡사지

경주시 구황동에 있다. 분황사 정문 앞에 펼쳐진 드넓은 사지가 황룡사지다. 진흥왕 14년(553) 왕이 월성 동쪽에 새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사찰로 고쳐 짓게 하고, 절이름을 황룡사라 했다. 이 절에는 금당에 모셨던 장륙존상과 80m 높이의 구층목탑이 있었는데, 만파식적과 함께 신라 삼보로 불렸다.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 침입 때 모두 불탔다.

밀교비법으로 당 물리친 사천왕사지

경주시 배반동에 있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당나라가 침략하려 하자, 왕의 청을 받은 명랑법사가 비단과 풀로 절 모습을 갖춘 뒤 밀교 비법인 문두루비법을 써서 당군을 물리친 곳이다. 이곳은 신라 조각승 양지 스님과 향가 ‘제망매가’를 지은 월명 스님이 주석하던 곳이기도 하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울산 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첫 삼거리 왼쪽이 사천왕사지다.

의상 스님 출가사찰 황복사지

경주시 구황동에 있다. 절 이름으로 미루어 왕실과 관계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의상 스님이 이곳에서 출가했다. 또 경문왕을 이 사찰에서 화장했다고 한다. 절터에는 효소왕 1년(692)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남아있는데, 1943년 해체 수리할 때 금제여래입상과 좌상이 발견돼 국보로 지정됐다. 황룡사지 동남쪽에 인접한 낭산 북쪽 자락에 있다.

문무대왕 호국 얼 서린 감은사지

경주시 양북면에 있다. 신라 문무왕이 창건한 사찰이다. 완공되기 전 왕이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즉위 2년(682)에 완공했다. 문무왕은 “죽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했는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감은사’라 이름했다. 감은사지에서 멀리 않은 곳에 문무왕의 해중릉인 대왕암이 있다. 현재 삼층석탑 2기가 남아있다. 사적 31호.

2011-04-14 /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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