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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작은 마을에도 몸 낮춰 나투시는 부처님 진신사리 [미국] 글자크게글자작게

 

가을이 머무르기 전 푸른 눈의 친구가 붓다의 사리에 대해 물었다. 잠시 커리어를 접고 세 아이의 엄마로 종종거리는 그녀가 200여 과의 사리를 직접 보았다고 했다. LA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서 마주한 것도 아니었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작은 도시 데이비스에서 뜻하지 않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곳은 U.C. 데이비스라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한적한 도시다.

미국에서 말하는 도시(city)의 개념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샌프란시스코나 뉴욕과 같은 곳도 하나의 행정구역 속 도시이며 서울의 중랑구 같은 곳도 도시로 나뉘고, 대치동 같은 크기의 마을도 제법 큰 도시로 불린다. 데이비스라는 도시의 경우는 서울의 동숭동을 살짝 오려서 춘천 가는 옛날 길, 어느 한적한 들판에 옮겨놓으면 얼추 비슷한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유흥업소와 3층 이상의 건물은 서울에 남겨두고 와야 할 것이다. 그런 작은 곳에 석가모니를 비롯해서 사리불, 목련존자, 아난존자, 가섭 등 전설 같은 분들의 사리가 나투셨다.

사리를 영어로는 ‘레릭(Relic)’이라고 부른다. 그 친구가 간 전시는 마이트레야 프로젝트(Maitreya Project)에서 주최하는 사리 여행(Relic Tour)이었다. 인도 쿠시나가라에 병원과 학교 그리고 거대 불상을 모신 대규모 불교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세계를 대상으로 2001년 봄부터 시작된 여정이다. 달라이 라마의 뜻을 라마조파 링포체가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티베트 불교인들의 평화 나누기 프로젝트다.

마이트레야 프로젝트의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 별 기대 없이 영문 편지를 남겼다. 사진을 내려받아 쓸 수 있는 허가와 데이비스 행사를 주관한 단체를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오후,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가 떴다. 영국에 있는 마이트레야 프로젝트의 미디어 본부라고 했다. 시차 때문에 일이 좀 늦어졌다며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었다. 처음으로 받은 영국에서 온 전화였는데 따사로웠다. 지구촌 나라들이 내 둘레에 살갑게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데이비스 행사 담당자를 만났다. 미리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드니스 셰링크(Denese Schellink)라는 이름 앞에 Rev. 라는 존칭이 있기에 스님이나 법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고는 당황하고 말았다. 유니티 센터(Unity Center)라는 미국 기독교에 뿌리를 둔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 종교의 목사였다. 유니티 센터는 미 전역에 약 1,000개의 교회를 두고 있다. 이들은 이제는 기독교를 넘어서서 이슬람, 불교, 힌두교, 유대교 등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포용하는 단체다.

이들이 사리 투어를 주관한 계기는 한 신도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2년 전에 여섯 살 난 외아들을 잃은 신도는 우연히 네바다 시티에서 열린 사리 투어를 보게 되었다. 네바다 시티 역시 작은 도시로 금광이 있던 정취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오고 가는 산에 자리한 조용한 마을이다.

이 남자의 어린 아들은 폭력적인 사고에 휘말려 무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화장된 아이의 시신에서 이 아버지는 진주처럼 영롱한 빛을 내는 구슬을 보았다. 그리고 2년 뒤 산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그와 똑같은 수백의 구슬과 마주한 것이다.

교회 신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아이 아버지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고 했다.

신도 전체가 행사 준비에 나섰다. 150명 신도 가운데 60명이 이 일을 전담하 자원봉사자로 참가했고 나머지 신도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리 투어를 유치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티베트 불교 본부에서는 종교가 다르다는 것도 문제 삼지 않았고, 사리에 대해서 별 지식이 없다는 것에도 오히려 더 자상하게 설명을 해줄 정도다. 셰링크 목사는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였고 영성적인 품위가 감화를 줄 정도로 존귀했기에 온 교인이 더 성심을 다하게 되었다고 했다.

행사는 보훈회관 강당에서 진행되었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사흘간이었다.

행사 전날 본부에서 올 손님을 맞이하고자 모두 도열했을 때 또 한 번 당혹함을 느꼈다 한다. 200여 과의 사리와 그 사리가 앉은 사리함을 모셔온 요원은 단 2명뿐이다. 차 한 대를 몰고 단출하게 나타나더니

정성스러우면서도 재빠르게 전시를 마쳤다. 대규모 보물을 유치하는 데에서도 어려움 없이 순조롭더니 정작 전시하는 순간에도 늘 다녀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 가뿐하게 이루어져서 오히려 행사 주관자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권위와 불편한 예식을 정리한 소탈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행사의 여운은 그지없이 컸다. 지역 불교 단체가 참여하는 염불과 축복을 내리는 블레싱(Blessing)이 이루어졌다. 티베트 불자들의 모임인 샴발라 센터와 사자후(Lion’s Roar)에서 스님들이 오셨고 유니티 목사님 두 분도 함께 관람자들에게 축원을 해주었다.

사리함이 놓인 전시대를 한 바퀴 도는 과정에서도 눈물을 쏟는 이들이 많았다. 백인, 아세안, 라티노를 가리지 않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 구분 없이 스님께 무릎 꿇고 축원을 받으며 마음에 눌러놓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백인 어머니는 2시간 반 거리를 다시 돌아가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문 닫기 직전에 나타났다. 스무 살 아들이 병을 이겨내도록 마음의 힘을 되찾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3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온 동남아계 불자는 1바퀴 돌고는 또 돌아도 되느냐고 묻더니 20번 축원을 받았다. 그래도 아쉬워하며 문을 나섰다.

미국 성당과 교회에서도 참선 강좌를 마련할 정도로 서구의 종교가 깨달음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는 요즘이다. 여러 불교적인 수행 방식들이 대중을 사로잡고 있기도 하다. 영어로 된 『벽암록』도 여러 종류의 책으로 만날 수 있을 만큼 교리 공부도 많이 하고 있다. 더불어 요즘에는 만다라나 탱화와 같은 불교미술에도 관심이 많다. 이네들은 신비의 예술이라고 부르며 마법의 힘을 기대하기도 한다. 시작은 근기 따라 그렇게 이뤄지지만 마술이란 곧 마음이 부리는 조화가 아닐까 받아들이며 그 길을 걸어 스스로의 마음자락을 잡아가는 것 같다.

사리에 대한 미국인의 접근도 그와 같았다. 호기심에 찾아온 백인이나 사리 친견의 가피를 받고자 온 아시안, 예술 전시회인줄 잘못 알고 온 이들 모두가 자신을 보았고, 그 안에 고여 있는 감정의 앙금을 털어내며 새 기운을 담아갔다.

아직까지 그때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셰링크 목사는 사리는 살아 있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신비주의에 빠지는 걸 경계하는 마음에서 관람자들이 마주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셰링크 목사가 반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내가 없으면 나를 비춰볼 수도 없습니다.” 셰링크는 사리에 집착하는 타 종교 이방인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을 끌어내는 마음이 넓은 목사님이었다.

타 종교의 보물을 모셔오고 기금을 마련해 성스러이 준비한 자리에 다시 타 종교 지도자들을 모셔 염불을 올리고 절을 하도록 마련했다. 더불어 종교를 가르지 않고 축복을 내렸다.


티베트 사리 투어 본부는 성당, 교회, 산골, 대도시를 구분하지 않고 늘 단출하게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성철 스님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온 고승의 사리뿐 아니라 달라이 라마가 중국 침공 직후 티베트를 탈출할 때 품속에 품고 모셨다는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도 함께 있는데도 말이다.

마이트레야 프로젝트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인 친절과 자비의 정신을 전하고자 할 뿐’이라고 한다. 평화를 위해 보물을 들고 기꺼이 저자로 나왔다. 데이비스라는 작은 마을에 주말에 2,000여 명의 사람들이 보훈회관을 다녀갔다. 이와 같은 일이 지금은 캐나다 글루세스터를 돌고 있고, 토론토를 거쳐 11월에 다시 미국에서 이어진다. 오일장처럼 닷새마다 새로운 도시를 찾아가는 사리 투어는 코네티컷 주의 웨스트 포트를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갔다 멕시코 작은 마을에서 올해의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내년에는 미국의 작은 도시의 한국 사찰과 성당이 타 민족 단체와 손잡고 평화를 전하는 장으로 만들어보았으면 한다. 마이트레야 본부에서는 한국 언론의 관심에 감사를 표했고 언제든지 초대에 응하겠다고 했다. (www.maitreyaproject.org) 취재·글|안희경(본지 미국 통신원)


◎ 루샤 파워 인터뷰

"잘못 왔다 싶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큰애를 이제부터는 문화 현장으로 이끌고 싶었어요. 마침 지역정보 신문에 사리 투어가 나왔기에 불교문화 전시회가 열리는구나 했지요. 근교 나들이 삼아 온 식구가 길을 나섰습니다. 두 살짜리 막내도 같이요. 붓다의 개인 소장품들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요. 왜 머리카락, 신발, 가운 같은 거요.

전시 장소는 쉽게 찾았어요. 아주 작은 동네니까요. 그런데 분위기가 참으로 친절하면서도 고요했답니다. 잘못 왔구나! 생각 들었지요. 두 살, 네 살 아이들이 견디기엔 무리일 것 같고 주최 측에도 너무 미안했고…. 하지만 친절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짧은 영화를 보면서 저뿐 아니고 아이들 모두 그 안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관람하는 줄도 느리지만 멈춤 없이 진행되었고요.

발걸음을 옮길수록 내 안에서 뭔가가 요동치며 소란스러워졌어요.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 기억, 앙금 같은 걸 누군가 막대로 휘젓고 있다는 기분이었지요.

사리의 영롱한 아름다움에 취하다 제 마음이 출렁인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묵은 찌꺼기가 밖으로 넘쳐나면서 맑아지는 기운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축복의 순간은 지금도 눈물로 넘칩니다.

별말 아니었어요. 여성 성직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루샤야 너는 세 아이의 좋은 엄마로 앞으로도 잘 이겨나갈 거야….”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그런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엄마가 다시 와서 고단한 나를 가슴으로 품어주는구나 했어요. 2년 전 바다 저편으로 떠나보냈다 싶던 엄마가 붓다의 사리와 함께 내 안으로 다시 오셨지요. 이제 저는 좀 더 고요한 평화를 아이들과 나누게 되었답니다.


안희경|1995년부터 2002년까지 불교방송 PD로 근무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국 방송(MBC, BBS)에 미국의 시사문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불교계 월간지에 미국 발간 명상 서적과 명상 음반에 대한 리뷰를 싣고 있다. 번역서로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등이 있다.


<사진> 마이트레야 프로젝트(Maitreya Project)의 사리 여행은 인도 쿠시나가라에 대규모 불교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2001년 봄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작된 여정이다. 행사는 지역 불교 단체가 참여해 염불과 축복을 내리는 블레싱(Blessing)과 사리함이 전시대를 한 바퀴 도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 이 기사는 '불교문화'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문 보기]
2009-12-04 /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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