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있는 하와이라 불리는 팜 스프링은 미국 내 스타들의 휴양지, 시간이 쉬어 가는 곳, 모던 건축의 시작 등 일련의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그런 들뜬 기분으로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3년 전이었다. 그 첫날 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너무 건조해 밤새 냄비에 물을 끓여댔다. 아침, 창을 열고 마주한, 호텔 직원이 말한 “뷰(view)”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높고 가파른 황량한 돌산이었다.
그래도 첫 팜 스프링 여행에서 진귀한 것을 보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그곳 인디언들의 바구니에 절 만(卍) 자가 있었다. 회오리바람을 표현한 문양이라고 했다.
두 번째에는 숨을 쉴 수는 있었지만, 따뜻했어도 누런 산의 위협이 부담스러웠다.
마지막, 지난 11월의 방문. 그만 이 악마의 산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산의 앞만 보고 그 산을 다 본 양 거들먹거렸다. 산 뒤에 구비구비, 올라올라 너른 고원이 초록의 생명을 끌어안고 계단식 논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전날 6시간을 달려 L.A.에 도착했고, 다시 1시간 40분을 달려 팜 스프링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사막의 돌산을 휘감으며 또 2시간 가까이 산을 타고 올랐다.
양 방향 2차선 산길, 돌이 굴러떨어질 것같이 깎아지른 절벽과 낭떠러지를 번갈아 돌아 해발 914.3m 고지를 지났다.
내가 두려움에 핸들을 휘청거리며 찾은 곳은 마운틴 젠 센터(Mountain Zen Center)다. 요코지(陽光寺)라는 이름의 일본 불교의 산중 수행터로 남부 캘리포니아 산하신토 산(Mt. San Jacinto)에 자리하고 있다. 절에 다가갈수록 말이 뛰노는 너른 목장이 양옆으로 자리하고, 절로 이어지는 비탈길이 시작되는 즈음엔 꽤 수량이 풍부한 호수가 평화롭게 하늘빛을 담고 있었다. 일주문에서 시속 25km로 산길을 15분쯤 올라가자 절이 나왔다. 단아한 흰 벽에 선풍이 느껴지는 휘갈긴 현판이 반가웠다.
이곳은 산장 같은 절이다. 아니 그 규모로 보면 66만㎡(대략 20만 평)가 되니까 산속에 있는 대규모 휴양 리조트인 셈이다. 절을 두고 리조트니 산장이니 해서 미안하지만 이곳의 운영 방식은 어느 호텔보다 깍듯하며 정갈하다.
미국화된 일본 선불교 수행 센터는 170여 도시에 산재해 있다. 또 도시 수행자들과 일반인에게 마음을 바라보고, 또는 그저 자연을 마주하고 가도 좋은 5개의 산사가 이렇게 미국의 대표적 휴양지 산속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운영은 멤버십이 30%를 차지한다. 매달 30달러씩 내는 것을 기본으로 멤버의 자격을 갖게 된다. 멤버로서 받는 혜택은 일반 호텔 클럽이나 박물관처럼 할인이 기본이고 거기에 마음 치유(수행 정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보통 비회원의 경우 이틀을 묵으려면 180달러(한화 21만 원) 정도 내야 하는데 멤버는 120달러를 내면 되고, 3일 머물 경우 멤버는 165달러, 일반은 250달러다. 보통 새신이라고 하는 용맹정진 시간에는 일주일을 수행하는데 멤버는 350달러, 일반은 500달러를 내고 참여한다. 이 비용에는 3끼의 유기농 채식 정찬이 포함되어 있다. 센터 안에 있는 배나무, 사과나무, 과수원에서 퇴비로 키운 과일과 작은 텃밭에서 기른 토마토, 상추, 호박 등을 맛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야채의 경우 지난봄 갑자기 내린 한파에 채소밭이 다 얼어버려 올해는 먹을 수 없다. 대신 아랫마을 유기농 시장에서 사온 채소를 먹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혜택이 더 있지만 무엇보다 멤버들이 좋아하는 부분은 주지 스님이신 텐신 스님과 언제라도 일대일 면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센터에는 스승과 독대하는 고요한 방이 마련되어 있다. 그 안에 있으면 늘 온 힘을 다해 정진해온, 센터와 20년을 함께한 수행자들의 응원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 멤버를 위해 센터에서는 계절마다 법문집을 발행하고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두 마리의 큰 개가 차를 쫓아 반가이 달려왔다. 코코와 허니라는 달콤한 이름의 상냥한 개들이다. 입구 마당에는 5세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부처님 옆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고, 다섯 명의 장정들은 목공소에서 열심히 나무를 갈고 있었다.
작년에야 마무리가 된 이곳의 건물들(법당, 강당, 선방, 요사채 대여 롯지 등)은 20년 넘게 수행자들과 멤버들이 정진하면서 틈틈이 일궈온 역사다. 종단의 지도자이자 창건주이신 타이잔 대선사도 가부좌를 풀고 있을 때면 작업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셨다고 했다. 한번은 백인 부부가 절을 찾아와 스님을 보며 선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는데 어디로 가야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물었다. 노스님은 사무실을 가리키며 “저 안에 가면 안내 책자를 받아볼 수 있을 겁니다” 하고 일을 계속하셨다. 사무실에서 팸플릿을 집어 들고서야 그 부부는 큰 선사의 가르침을 뒤로하고 얇은 팸플릿이나 얻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그럴 뻔했다. 내가 지나칠 뻔한 가장 솜씨 좋은 목수가 다름 아닌 텐신 주지 스님이었다. 일본 소토 스쿨에서 주관하는 3개월 안거가 12월 15일부터 이듬해 3월 15일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법당에 깔 좌선용 단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입구에 있는 목공소에는 쉼 없이 전기톱이 돌아가고 있다.
텐신 스님은 영국 멘체스터 출신이시다. 1979년 미국으로 선을 공부하려고 왔다. 출가한 지 어언 30년이 되었고, 2009년 일본 소토종 총본산에서 Kokusaifukyoshi(외국 공식 대표)로 선정되었다.
이번 겨울에 대여될 안거 그룹에는 15분의 소토종 스님들이 참여한다. 이분들은 많은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서양 스님들이다. 이분들은 여느 일반 손님처럼 스님과 사찰에서 머물고 있는 수행자들의 시봉을 받게 된다. 정성스럽게 시봉을 하는 것도 요코지 센터의 수행 방편 중 하나다.
수수해 보이지만 이들 재가 수행자들 중에는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던 철학박사도 있고, 영국에서 온 그래픽 아티스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지금은 가을 안거 기간으로 이들 6명의 재가신자들이 울력을 하며 정진하고 있다. 이들이 성심을 다하는 봉사가 실은 이곳의 주요 수입원인 그룹 대여다. 15명이 기본 대여 가능 인원으로 1년에 20여 그룹이 단체 행사를 이곳에서 연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날아왔다. 공양주 스님이신 사이몬 스님이 초콜릿 쿠키를 구우셨다. 사이몬 스님은 이곳에서 다른 사찰의 부주지 스님 역할을 맡고 있다. 스태프들의 일과표를 보면 부엌에서 지시받고 그날의 업무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비구이신 사이몬 스님은 수행 기초반 교육과 함께 텐신 스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그 역할까지 책임진다. 사이몬 스님의 부엌엔 오래된 묵은 살림들이 경쾌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요코지센터의 삶은 철저히 야생의 법칙을 따른다.
친환경적인 사고를 토대로 수년에 걸쳐 보완되어왔다. 땅과 조화롭게 사는 것은 야생의 산에서 살려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생존 조건이다. 센터의 물은 2개의 우물에서 온다. 자연의 중력에 의해 지하에 저장된 샘물을 그저 덜어 쓰는 것이다. 물은 맑고 달다.
이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태양과 바람의 힘을 빌려 살고 있다. 겨울 몇 달간을 지낼 수 있도록 충전 시설도 갖추었다. 비가 잦은 겨울에는 햇빛도 바람도 귀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적당하게 눈이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물이 모자라 쩔쩔 맬 거고 구름 낀 날이 많으면 전기가 모자라 침침할 겁니다. 매일 하늘을 보며 아껴서 자연을 거슬러 화를 만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얌전히 길들이고 있죠. 우리 센터가 있는 이 계곡에는 엄격하고 위대한 가르침이 1년 내내 쉼 없이 있답니다.”
영국에서 온 짐 레이키의 설명이다.
자연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연구하고 노동하고 수행하는 이들이 있어 산에 올라올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없이 편안했고, 가깝게 여겨졌다. 더불어 산하신토 산을 두루 감싸 안은 11월의 태양이 마음 구석까지 뽀송하게 말려주었다.
홈페이지 http://zmc.org/ 취재·글|안희경(본지 미국 통신원), 사진|짐 레이키(Jim Lakey)·안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