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신사리는 부처님의 사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진신사리를 모신 도량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는데, 만불사 또한 적멸보궁입니다.
만불사에는 모두 5과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모두 1993년 2월 7일 스리랑카 최대 민중행사인 페라헤라 행사장에서 스리랑카 대통령과 종정 스님의 증명 하에 만불사로 모셔왔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법체(法體, 부처님의 육신)는 여러 제자와 불자들에 의해 다비 됩니다. 다비 후 출현한 사리는 부처님과 인연 있는 여덟 나라에 탑을 세우고 나누어 봉안했다고 합니다. 이 때 세워진 여덟 기의 탑을 ‘근본팔탑’이라고 합니다. 이 근본팔탑은 불멸 후 200년쯤 지나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에서 의해 해체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 흔히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리는 아쇼카왕은 불법(佛法)을 널리 홍포하기 위해 인도 전역에 8만 4,000기의 불탑을 세우고, 근본팔탑에 봉안돼 있던 진신사리를 나누어 각각의 불탑에 모셨습니다.
이 때 부처님 진신사리 중 ‘치아사리〔佛齒舍利〕’는 인도 남부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이후 600년 가량 지난 4세기 경 부처님 치아사리가 모셔진 인도 남부에는 칼링가국이 있었습니다. 이웃나라 국왕들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한 후 잇따라 개종하는 일이 발생하자 바라문교 세력이 불만을 품고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왕들의 잇따른 개종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져, 이를 빼앗으려는 이웃 국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아 칼링가국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당시 스리랑카를 통치하고 있었던 마하세나왕도 칼링가국에 부처님 치아사리를 전해 줄 것을 간청했는데, 마침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은 칼링가국 국왕이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공주 헤마말라와 그의 남편 단타구말라 부부에게 진신사리를 스리랑카에 전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스리랑카로 이운된 불치사리는 현재 캔디시 달라다말리가와 사원(佛齒寺)에 봉안돼 있으며, 이중 일부가 만불사에 이운됐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는 1993년 2월 13일 국내로 이운됐습니다. 만불사는 모든 불자가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도록 60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친견법회를 봉행했습니다. 여러 큰스님들을 초청해 법석을 마련했고, 친견 때는 진신사리를 머리에 모시고 축복을 받는 정대의식도 가졌습니다.
전국 순회법회가 끝난 후 진신사리는 만불보전 해인화장세계와 관음전, 부처님 진신사리에 나누어 모셨습니다. 만불사에 사리가 봉안됨으로써 만불사는 명실공히 부처님이 상주하는 적멸보궁이 되었습니다. 진신사리탑은 원래 아미타대불 앞쪽에 있었는데, 만불산 정상에 적멸보궁을 새로 조성하면서 옮겨 모셨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스리랑카에서 이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을 세계불교의 중심으로 부흥시키고자 하는 회주 학성 스님의 원력과 만불회 불자들의 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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