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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상종 서명학파 개조 원측 ‘해심밀경소’ 번역 [불교도서] 2013-07-18 / 3606  

 

《해심밀경소 제1서품》은 경의 종체에 대한 논의 등과 서품의 경문 해석을 수록한 것이다. 이 책에는 옮긴이가 ‘원측 사상의 백미 중의 하나’라고 일컫는 교체론(敎體論)이 상세하게 진술되어 있다. 이 교체론은 ‘성전의 언어’, 즉 ‘교의 본질(敎體)’에 대한 철학적 사색의 결과물이다. 여기에서는 자칫 신성시되고 또 다른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성전의 언어를 무상한 말소리로 해체시킨 소승의 파격적 발상에서부터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온 우주에 울려 퍼지는 신비한 일음에 이르기까지 ‘교(敎)’에 대한 불교도들의 다양한 사유의 역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옮긴이는 해제에서 원측이 소승과 대승의 다양한 교체론들을 어떤 논리로 회통시키고 종합해 가는지를 자세히 추적하는데, 그에 따르면 원측은 언어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탁원한 식견을 가진 사상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해심밀경소 제1서품》은 교기인연분(敎起因緣分)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통상적으로 경전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교를 설한 주인과 시기와 장소 등이 진술되는데, 《해심밀경》의 경우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이 경은 정토에서 설해진 것이고, 여기에 진술된 정토의 모습과 그곳에 머무는 자들의 공덕에 대한 묘사는 모든 정토의 설법으로 간주되는 대승의 경전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구이다. 이 정토는 어떤 특정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여래의 위대한 선정 속에서 현현되고 여래의 청정한 식(識)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정신적 세계인만큼 범부나 지전(地前) 보살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우리는 원측의 상세한 해석들을 통해서 정토에서 법을 설하고 듣는 하나의 사건이 교리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해심밀경소 제2 승의제상품》은 유가행자들이 관찰해야 할 경계 중에 첫 번째로 승의제(勝義諦)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이 하나의 품에서는 승의제, 즉 궁극적 진리라는 단일 주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네 번에 걸쳐 각기 다른 문답자가 등장하여 길고도 논증적인 설법을 펼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이역본들에서는 이 품을 네 개로 나누기도 하고, 또 이 품만 따로 별행시킨 경우도 있다.

이 《해심밀경소 제2 승의제상품》에서는 ‘이언(離言)·무이(無二)’ 등 승의제의 다섯 가지 상을 설하는데, 문장은 난해하지만 사실상 궁극적 진리는 ‘언설될 수 없다(不可言說)’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도 된다. 이러한 궁극적 진리는 인간의 지성에 의해 파악되지도 않고 또 언어의 형식으로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도 없기 때문에 그에 관한 한 될수록 많은 외적인 해석과 간접적 진술들을 택해야 한다. 원측의 해석에서는 이 주제와 관련된 대·소승의 중요한 학설들이 총망라되는데, 이를 통해 불가언설의 진리에 대해 불교 내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철학적 지성에 의해 정의된 개념과 범주를 통해 언어를 넘어서 있는 궁극적 진리의 가장 깊은 뜻에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원측의 해석 저변에 깔린 ‘진리관’을 이해하는 데는 옮긴이의 해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옮긴이는 원측의 해석에서 진리와 실재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게 되는 철학적 맥락을 밝히는데, 이는 자칫 번쇄한 학설들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옮긴이는 각각의 상相을 설할 때마다 보살의 목격담들을 길게 진술한 의도를 부각시키면서, 이 오상에 대한 관찰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상호 간의 반목과 끝없는 회의 그리고 정신적 자만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점차로 해방시켜 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해심밀경소 제3 심의식상품 제4 일체법상품》은 심의식의 비밀(心意識秘密)과 일체법상(一切法相)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이 두 품은 모두 유가행자들이 관찰해야 할 경계들에 해당한다. 《해심밀경》 전체 구조에서 보면 ‘심의식상품’은 진(眞)·속(俗)의 경계 중에 속제를 설한 것이기 때문에 앞의 ‘승의제상품’과 한 짝을 이루고, ‘일체법상품’은 유성(有性)·무성(無性)의 경계 중에 유성(삼성三性의 경계)을 설한 것이기 때문에 뒤의 ‘무자성상품’과 한 짝을 이룬다. 이 두 품은 다른 품과 대조해 볼 때 이례적으로 매우 짧은 데다가 경문의 구조도 동일하다. 즉 이 두 품에서는 각기 ‘심의식의 비밀을 잘 아는 선교보살’ 혹은 ‘일체법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란 어떤 경지인가에 대해 간략하게 대답하면서 심의식과 제법의 세 가지 상에 대한 교법을 설한다.

심의식의 비밀이란 윤회의 과정에서 새로운 생을 받을 때 일체종자식이 수행하는 비밀스런 기능을 가리킨다. 원측의 해석에서는 이 ‘식’을 새로운 육체를 출현시키고 증장시키는 내적 동인으로 간주했던 초기 유식학의 기본 관점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또 이 경에는 유가행자들이 관찰해야 할 제법의 세 가지 상, 즉 변계소집상, 의타기상, 원성실상 등 삼성설(三性說)의 가장 원형적 형태가 등장한다. 그 요점은 변계소집의 무상(無相)을 앎으로써 의타기의 잡염상이 생하지 않고 원성실의 청정상이 현현한다는 것이다. 원측은 후기의 유식설을 동원하여 이 삼성에 대한 관법이 유가행자들을 어떤 경지로 이끌어 가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원측의 해석에 내재된 철학적 의미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옮긴이의 해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옮긴이는 이 경에서 설한 일체종자식은 ‘업력(業力)의 담지자’에 대한 사유의 연속선상에서 도출된 것이고, 심의식의 비밀의 초점은 식과 몸의 비밀스런 관계에 있다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또 옮긴이의 해제에 소개된 《유가론기(瑜伽論記)》의 학설 등은 원측이 어떤 관점에서 삼성의 관계를 해석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은이 소개

원측 스님은 휘(諱)는 문아(文雅)이고 자(字)는 원(圓測)이며, 신라 국왕의 자손이다. 3세에 출가해서 15세(627)에 입당하였다. 처음에는 경사(京師)의 법상(法常)과 승변(僧辯) 등에게 강론을 들으면서 중국 구(舊)유식의 주요 경론들을 배웠다. 정관 연간(正觀 年間, 627~649)에 대종문황제(大宗文皇帝)가 도첩을 내려 승려로 삼았다. 장안의 원법사(元法寺)에 머물면서 《비담론(毗曇論)》, 《성실론(成實論)》, 《구사론(俱舍論)》,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등 고금의 장소(章疏)를 열람하였다. 현장이 귀국한 이후에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을 통해 신(新)유식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서명사(西明寺)의 대덕이 된 이후부터 본격적 저술 활동에 들어가서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인왕경소(仁王經疏)》 및 《관소연론(觀所緣論)》, 《반야심경(般若心經)》, 《무량의경(無量義經)》 등의 소(疏)를 찬술하였다. 지금은 《인왕경소》 3권과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蜜多心經贊)》 1권, 그리고 《해심밀경소》 10권만 전해진다. 말년에 역경에 종사하다 낙양(洛陽)의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8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후대에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서명파(西明派)를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추앙받았다.

역자 소개

백진순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성유식론(成唯識論)》의 가설(假說, upacaa)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중국 법상종의 유식 사상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고, 역주서로 《인왕경소(仁王經疏)》가 있으며, 공저로 《인물로 보는 한국의 불교 사상》 등이 있다.

출처 : 출판사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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