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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음반/서적
   옛시에서 길어 올린 보석 같은 글과 마음 [불교도서] 2013-07-10 / 2972  

 

옛시의 숲에 들다,
산사에서 일렁, 푸른 바람이 일다!

바람 불고 꽃 피고, 눈 내리고 구름 피어나는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옛시를 골라 번역하고, 거기에 소소한 일상과 감흥을 붙인 흥선 스님의 에세이집이다. 지은이가 박물관장을 지냈던 직지성보박물관 홈페이지 <한시 한 소절>에 올렸던 글들을 추리고 가다듬은 것으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성찰이 옛시를 통해 걸러진 정갈하면서 단단한 글에 담겨 있다. 일에 쫓겨 동동거리는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잠시나마 ‘일 줄이고 마음 고요히’ 옛시의 숲에 든다면 휴식이자 충전이 될 것이다. 책 뒷부분에는 한 장 한 장 정성껏 고른 종이에 옛시의 원문과 번역문을 일일이 적은 반듯한 <손글씨 모음>을 곁들여 손 편지를 받아보는 듯 친근함을 더했다.

산사에서 전하는 봄 꽃 가을 달 여름 바람 겨울 눈

하루하루 달라지는 계절 변화의 섬세한 결을 따라 신중하게 고른 옛시 85편. 그 안에는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중국 최고의 시인 두보도 있고 중국의 여류 시인 설도도 있지만 김시습, 휴정, 삼의당 김씨, 박지원, 김정희 등 우리의 옛 문인의 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시구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지는 않는다. 그저 세심하게 언어를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어 옛시를 낭송해주고 거기에 스며든 지은이의 맑은 감성을 전한다.

"봄이면 연초록 물결이 온 산을 번져" 오르고, "화락화락 부치는 대로 정직하게 바람을 선사하는 부채"에 기대어 여름을 지내며, 가을에는 "짓붉은, 붉은, 노오란, 샛노란 단풍잎들이 마당을 뒤덮고", 겨울 채비를 끝낸 "저 산 위로 눈이 쌓이고 바람이 지나가고 별과 달이 찬 빛을 뿌릴 것을 기다"린다.

특히 “때글때글 쏟아지는 햇살", "꾀꼬리가 한 번 울면 능소화 한 송이가 벙글고", "소물소물 작은 삶의 무늬들", "시누대 서걱이는 소리, 낙숫물 토드락거리는 소리" 등 지은이 특유의 소담하고 예쁜 말들이 공감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며 잔치를 벌인다. 지금은 잊혔거나 홀대 받는 옛말, 순우리말, 방언 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빛이 난다. 책 안에 계절의 변화가, 자연의 아름다움이 넘치도록 가득하다.

잠시 일 내려놓고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기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 계절의 변화에 온몸을 맡긴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 감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상의 움직임에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다듬는 것이며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일 것이다. 지은이는 자연의 생명력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관계의 망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을 관조한다. 그리고 "고요한 물과 묵묵한 돌이 만나 온 산을 울리는 우레 소리 내듯" 우리도 남과 만나며 다른 날, 다른 하늘을 열고 있는지 물어온다. 우리를 허덕이게 하는 일과 감정을 줄이고 침묵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지은이의 말마따나 "달그림자 이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릴지도…….

옛시를 통해 건네는 지은이의 이야기가 혼탁한 우리 삶에 맑은 바람, 푸른 바람을 불어넣는다.

자연에 더불은 인문의 향기

옛시 85편을 계절별로 나누어 실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이상이다. 예를 들면 연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윤선도, 주돈이, 안민영의 연꽃을 거쳐 요사부손의 하이쿠, 경주 흥륜사터 석조에 새겨진 글귀로까지 이어지고, 우리의 손발을 잠시 묶어놓는 게 장마의 미덕이니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가자며 김사인의 시 <장마>를 읽어주는 식이다. 또 귀한 가을날을 어찌 보내고 있냐며 "이런 때 아니 놀고 어떠한 때 즐기리잇가?"라는 <언간독>에 실린 편지글을 넌지시 내밀어 웃음 짓게 한다. 적절한 위치에 들어간 고전의 한 구절, 시 한 소절은 글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산속 절집에 사는 지은이에게선 옛 선비를 만난 듯 인문의 향기가 느껴진다.

종이와 손글씨의 향연

책을 사계절, 네 부분으로 나누는 사이사이에는 지리산 화엄사의 홍매, 안동 제비원의 도라지꽃밭, 부여 가림성의 감국, 눈보라 휘몰아치는 청양 대숲을, 넓게 펼쳐지는 종이에 담아 글과 더불어 계절감을 남김없이 생생하게 전한다. 또한 옛시의 원문과 번역문을 또박또박 적은 <손글씨 모음>을 책의 말미에 본문과 차별되는 재질감 있는 종이에 곁들였다. 겹치지 않게 한 장 한 장 정성껏 고른 종이 위에 반듯하게 적은 손글씨가 마치 독자에게 보내는 손 편지인 양 친근하다.

추천의 글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소리의 뼈는 침묵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침묵이 더 많은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일 줄이고 마음 고요한’ 흥선 스님의 글은 흡사 침묵 같습니다. 침묵이고 고요이되 오히려 춘하추동, 동서고금의 세사인정을 저마다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화엄의 손길이기도 합니다. 스님이 가리키는 곳에는 어김없이 꽃이 있고 그 꽃들의 음성이 다시 침묵과 고요를 더합니다. 문득 시詩가 절[寺]의 언어[言]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의 글 한 편 한 편은 자기의 생각을 개념과 논리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의 삶을 직지直指하는 소리 없는 죽비이기도 하고 어느덧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 그 앞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따뜻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지은이 소개

흥선 스님은 1974년 직지사로 출가하여 해인사 강원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직지성보박물관 관장, 불교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직지사 주지이자 문화재위원이다. 불교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며 그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제4회 대한민국 문화유산상’(2007)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석등 - 무명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눌와), 《맑은 바람 드는 집 - 흥선 스님의 한시읽기 한시일기》(아름다운 인연), ‘답사여행의 길잡이’(돌베개) 시리즈 15권 가운데 《팔공산 자락》(8권)과 《가야산과 덕유산》(13권) 등이 있다.

눌와 / 328쪽 / 1만 68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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