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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음반/서적
   육로로 대장경 운반하려는 이들을 그린 역사 팩션 [불교도서] 2013-02-12 / 3198  

 

인간은 누구나 모험을 한다, 사랑을 위하여!

《부용화》는 고려시대 몽골군의 공격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무신정권의 압력이 거세질 때, 왕권 회복을 위해 초조대장경을 과감하게 육로로 운반하려는 사람들의 역경과 사랑, 음모와 모험을 그린 역사 팩션이다.

대장경을 소재로 쓴 역사 팩션 《부용화》는 로맨스와 미스터리, 긴박감 넘치는 반전을 거듭하며, 천 년 전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낸 기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대장경판 모서리에 새겨진 정체 모를 이름들의 기원을 상상력으로 찾아다니며, 절망으로 가득 찼던 고려 사람들의 절박한 삶을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성 안에 갇힌 네 주인공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서로 속이고, 감추며, 광란에 휩싸이다 끝내 좌절하고 말지만 숭고한 사랑이 일궈낸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그것은 대장경의 불경이 아니라 대장경 경판의 모서리에 작은 이름으로 새겨진 채 천 년이 지나도록 잠들어 있다.

천 년이 지나도 믿을 수 없는 사랑의 기적
역사 로맨스 소설의 품격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소설

몽골의 침략과 실권을 쥔 최우에 눌려 무력하기만 한 허수아비 왕은 비밀 계획을 세운다. 전소된 줄 알았던 초조대장경을 세상에 밝혀 민심을 얻으면 왕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예전에 거란의 군사도 단숨에 몰아냈던 대장경이니까.

왕의 법사인 우송이 대장경 운반의 총 책임을 맡고, 대장경이 불탈 때 목숨을 걸고 일부나마 빼낸 감무의 여식 부용과 학승 진오가 동참한다. 그리고 뒤늦게 출현한 왕의 그림자무사 양무가 호위를 맡는다.

경주 황룡사에서 출발한 이십여 명의 운반대는 금산에 이르러 몽골군의 침략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첩보에 따라 가까운 성으로 피신한다. 다음날, 수만 명의 몽골군이 성을 에워싸고 대장경 반환을 종용한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네 사람의 정체는 일련의 상황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음모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성을 벗어날 수 없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제각각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충돌한다.

몽골군의 대공세가 임박하자 중과부적인 성의 민심은 걷잡을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오직 사랑만이 기적을 이루어내겠지만 그런 기적을 믿는 사람은 아직 성 안에 아무도 없다.

상상력으로 복원되는 미시 역사의 짜릿한 묘미

작년부터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이 성대하게 열리면서 팔만대장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책은 그 대장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장경판의 마구리 글자가 소재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이름으로 여겨지는) 글자들의 정체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역사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놓았다. 이 작업에 역사학자들보다 먼저 손댄 사람이 허수정 작가다.

허 작가는 누가 왜 이름들을 신성한 경판의 모서리에 남겨놓았는지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상상력이 복원한 글자의 정체는 놀랍게도 ‘사랑’이었다.

오랜만에 출간되는 불교 색채의 소설, 감각은 현대적으로

《아제아제바라아제》나 《우담바라》 같은 불교 색채의 소설들이 큰 화제를 모았던 이래 그동안 주목받는 작품이 나오지 못했다. 완성도 높은 소설들로 금세 틀 지워진 종교적 소설의 선입견 때문일지 모른다.

《부용화》는 글 곳곳에 불교적인 소재가 풍부하지만 불교 소설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지 않다. 권력의 암투라는 미스터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전개가 역동적인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소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기적은 언제나 기도가 아니라 목숨을 건 행동으로 이루어졌다고.

사랑이 기적을 만듭니다, 라고 말하는 소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들은 인연으로 엮인 인간들이다. 아버지이며, 날개 꺾인 불쌍한 왕이며, 한 여자이며, 어릴 적 자신을 거두어준 주인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지만 성 안에 몰살될 위기에 처한 백성들을 모두 살려내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사랑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상실과 희망이 같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말도 안 된다고 반문하는 말에 살아남은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리, 여기 이 꽃은 말씀하신 대로 부용화입니다. 소인은 이 꽃을 가꾸며 가뭇없이 스러져간, 상실되어버린 옛날의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애합니다. 평생을 걸쳐 사련(思戀)합니다. 그러므로 평생을 걸친 암유가 바로 이 꽃입니다…. 그건 마치 대장경과 같은 것이지요… 상실과 희망처럼.”

지은이 소개

허수정은 왕도 영웅도 없이, 스릴 넘치는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후, 현재까지 장편소설 집필에 주력하고 있다. 십 수 편의 장편소설을 집필했지만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역사소설들이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역사소설가로 유명하다. 조선 통신사절단과 살인사건이 조합된 《왕의 밀사》, 사랑하는 연인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요토미 암살을 감행하는 《제국의 역습》, 임진왜란 후, 한 마을의 40년 전 비극을 그린 《망령들의 귀환》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세 작품은 ‘조선 명탐정 박명준 3부작’으로 인기를 모았다.

고즈넉 / 428쪽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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