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를 체험하는 수행의 길
4백여 군데의 암자를 순례하였으며 암자기행 전문가라고 불리는 작가 정찬주, 30여 년간 불교 소재의 소설과 산문을 집필하여온 그가 이번에는 혜암 스님이 세상에 던진 벼락같은 화두를 좇아 《공부하다 죽어라》를 발간했다. 몇 해 전 성철 스님이 평생 정진했던 뜻을 모아 펴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재작년 연초 법정 스님의 고결한 삶을 좇아 써내려간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에 이은 또 하나의 산문집이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를 통해 성철 스님이 암자에서 무엇을 공부했고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화두 삼아 참다운 삶과 수행의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를 통해서는 자기다운 영혼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며 법정 스님이 몸소 체화했던 무소유 사상의 성립부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혜암 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씀을 화두 삼아 무아를 체험하는 수행의 길을 안내하려는 것이다.
혜암 스님은 세상나이 82세로 2001년 12월 31일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입적했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시작할 때와 입적할 때가 같았다고 전해지는데 똑같이 정진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등을 방바닥에 대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입적하실 때도 스님은 의자에 앉은 채 가야산을 바라보는 자세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참선은 살길을 찾는 공부다
이 책은 혜암 스님이 정진했던 가야산, 오대산, 지리산, 태백산, 영축산 등을 가서 스님의 삶을 거울삼아 저자 정찬주가 인생을 반조해보는 틀로 써내려간 산문집으로, 2012년 9월부터 3개월간 총12회에 걸쳐 교보문고 북로그에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는 연재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혜암 스님의 어록이 함께 실려 있는 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큰스님이 주로 일반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법문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혜암 스님의 화두 드는 법을 설법한 글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늙은 쥐가 쌀궤를 한 구멍만 뚫듯 해야 합니다. 미련한 쥐나 어린 쥐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쌀궤를 뚫을 적에 이짝에 뚫었다 저짝에 뚫었다 하는데 늙은 쥐는 쌀궤를 많이 뚫어봤기 때문에 쌀이 나오든 말든 죽어라고 한 구멍만 뚫습니다. 화두 공부도 늙은 쥐가 쌀궤 뚫듯이 해야 도가 깨달아집니다.
공부가 안 된다고 저리 따져보고 이리 따져보고 또 다른 화두로 바꾸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구멍만 뚫으면서 오늘 못다 뚫으면 또 내일 뚫고 내일도 못 뚫으면 또 모레…… 조금씩 뚫더라도 자꾸 애써 뚫으면 뚫어지는 것입니다.
당장 화두가 잘 안 들리더라도 그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니 의심하지 말고 한 근을 못 들 사람은 한 근을 들려고 애쓰고 두 근을 못 들 사람은 두 근을 들려고 애쓰는 것이 공부입니다.
-혜암 스님 어록 중에서
무슨 일이든 죽을 각오로 임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
혜암 스님은 승속을 불문하고 늘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법문하신 분으로 유명하다. 작가 정찬주는 스님이 수행했던 산중암자를 다니면서 문득 ‘공부하다 죽어라’가 절 울타리 안의 단순한 법문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던진 벼락같은 화두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각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될 거라고 했다. 다시 말해 학생은 무아를 느낄 때까지 즐겁게 공부해야 하고, 직장인은 조직 속에서 무아를 경험할 만큼 나를 비워야 하고,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 역시 나를 버리는 무아 상태에서 희생하고 봉사해야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죽을 각오로 임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얘기가 될 터이다.
혜암 스님이 말씀하신 ‘공부하다 죽어라’는 직접적으로는 위법망구爲法忘軀,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몸을 버리라는 의미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지금 자기가 집중하고 있는 일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녹아들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자각한 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에 스님의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씀을 화두 삼아 무아를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을 다 바친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삶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 일이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한 일이라면 복덕福德까지 쌓는 일이니 얼마나 더없는 행복이고 정진인가!
- 저자 서문 중에서
그대가 지금 하는 일이 공부다
혜암 스님은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것이 나를 알고 인생을 아는 데 지름길이라고 말씀했다.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것을 간화선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1998년 여름 스님을 찾아뵙고 인생의 의혹들을 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저자는 미소굴 입구 기둥에 스님의 친필로 쓰여 있는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법문을 되새기는 가운데, 중국의 당송시대에 만개했던 간화선을 왜 오늘을 사는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간곡히 권유하셨는지 그 뜻을 알아야 비로소 혜암 스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혜암 스님은 지나간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만 마음을 두라면서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공부라고 말씀했다. 참선만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심신을 다 바치는 것을 공부로 여겼던 혜암 스님에게는 암자를 하나 짓는 것도 수행이고 정진이요, 막노동도 수행이었다. 그런 스님은 일을 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한 나머지 밤에 잘 때는 끙끙 앓을 정도가 돼야 비로소 ‘오늘 하루 공부 잘했다’고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문수암을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도 직업이 무엇이건 간에 지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에 목숨 바치듯 정성을 다하는 것이 참 공부라고 가르치셨다.
‘공부하다가 죽으면 안 죽어요.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다가 죽으면 안 죽어요.’ 공부하되 ‘옳은 마음’으로 할 것을 경책하신다. 스님의 말씀은 늘 단순하고 명쾌하시다. 옳은 마음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진짜 죽는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무엇을 하되 대의(大義, 옳은 마음)를 잃어서는 안 된다. 수좌의 공부 끝은 중생제도로 돌아가야 하고, 세상 우리의 공부 끝은 나보다는 남을 이롭게 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 p. 212
혜암 스님 약력
혜암 스님은 1920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946년 해인사에서 인곡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효봉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승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서릿발같이 독려하던 스님의 생애는 끝없는 정진뿐이었다. 해인사로 출가한 27세부터 방바닥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과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을 평생 동안 지켰다. 스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서 성철 스님 이후에는 종단개혁에 앞장섰다. 해인총림 방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등을 거쳐 조계종 제10대 종정에 추대됐으며 2001년 12월 31일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법랍 56세, 세수 82세로 열반했다.
지은이 소개
정찬주는 법명은 무염無染,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이후 30여 년간 주로 불교 소재의 소설과 산문을 집필하여왔다. 장편소설로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다산의 사랑》, 《인연》,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가야산 정진불》, 《만행》, 《소설 김지장》, 《니르바나의 미소》, 《하늘의 도》, 《대백제왕》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부처님 8대 인연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산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절은 절하는 곳이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 《정찬주의 茶人기행》,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뜰 앞의 잣나무》, 《행복한 禪여행》, 《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인정받아 1996년에 행원문학상, 2010년에 동국문학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화순 쌍봉사 옆으로 낙향하여 솔바람에 귀를 씻어 佛을 이룬다는 이불재耳佛齋에서 수행 삼아 글농사 밭농사를 짓고 있다.
유동영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발로 찾아 담았던 계간 《디새집》에서 일했다. 이를 계기로 《책 한 권으로 모자랄 여자 이야기》라는 책을 엮어 냈으며, 이후 소설가 정찬주를 만나 그의 책에 사진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선방 가는 길》을 시작으로 《자기를 속이지 말라》, 《정찬주의 茶人기행》 《소설 무소유》 등 여러 책과 인연을 맺었다.
열림원 / 255쪽 / A5 / 1만 50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