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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사 홈 > 붓다의 메아리 음반/서적
   탑 위에 새겨진 불교 스토리 [불교도서] 2013-01-10 / 3297  

 

탑 안에 담긴 불교스토리

우리는 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막연한 상식 수준에서의 이야기가 아닌 진정한 탑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그러면 그 안에 불교의 역사와 종교적 가르침이 담겨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은 한마디로 탑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상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교미술에서는 불상과 보살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탑에 새겨진 금강역사, 십이지, 사천왕과 같은 수호신상들은 그저 보조적인 존재로서만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예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불상이건 보살상이건 혹은 이렇게 탑에 새겨진 수호신의 상이든 모두 독자적인 의미와 스토리가 담겨있다.

탑에 새겨진 부조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도상학을 공부해야 한다. 도상학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러한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준다는데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는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야기마저도 허를 찔린다. 예를 들어 금강역사가 부처님을 호위했다는 이야기. 저자는 실제 불교경전에서 금강역사가 부처를 위기에서 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불교미술이 심오한 불교의 교리를 무지한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아무리 불교미술을 뒤적거려도 엘리트 조차 그 내용을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근거 없는 상식들이야말로 불교미술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그만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나뉜다. 앞의 “싯달타 가시니 불타가 오고”는 불탑에 관한 것이고, 다음의 “고승이 가시니 산문이 열렸네”는 승탑에 관한 것이다. 종횡무진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 각각 10개의 불탑과 승탑을 다루고 있는데, 불탑 이야기는 가장 단순한 금강역사부터 시작해서 점차 탑의 부조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해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승탑의 이야기는 구산선문의 대표적인 승탑에서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의 승탑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화엄사 사사자석탑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학자들은 이 사사자석탑이 어떤 경전에 근거한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예를 들어 사자빈신사지에 있는 탑과 비슷하다 하여 ?화엄경? ?입법계품?의 사자빈신비구니의 삼매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하고, <화엄사사적>에 등장하는 연기조사의 설화라고도 해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경전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불탑을 보면서 붓다를 보고 싶어했던 당시 불교도들의 열렬한 염원을 반영하여 마치 탑 안에 사리라는 형태로 압축되어 있던 붓다가 탑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는 극적인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를 “통일신라판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서슴없이 현대의 우리들이 염원하는 바와 고대인들이 염원했던 바가 다르지 않았음을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불교 교리에 기반을 둔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렇다고 저자가 그저 보고 느낀 대로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비전공자가 아니라 학부 때부터 미술사를 공부해 불교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공자이다. 따라서 불교미술에 교리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아이러니 하게도 철저하게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밀교와 선종을 비교하면서 “밀교는 즉신성불(卽身成佛), 선종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서 모두 대승불교의 극단적 형태”라고 풀이하는 부분은 간단하지만 교리에 정통하지 않고는 내놓을 수 없는 명쾌한 답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은 경전 어디에도 “즉심시불”을 어떻게 표현하라는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보이지 않는 추상의 개념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저자는 불교미술을 통해 옛 선인들의 이러한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승탑을 다룬 글에서 승탑의 주인공에 대한 소개를 통해 그들의 이념과 승탑의 예술성 특징을 연관지어 설명한 것은 경전을 통해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제자리를 떠난 불상과 보살상 보다는 압축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탑에 새겨진 부조들이 들려주는 완결된 이야기야말로 도상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최상의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보는 다큐멘터리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 전개에 빠져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이 책에 담긴 주옥같은 사진들이다. 마치 독자로 하여금 탑 앞에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드는 선명한 사진들인데, 평소 전체만 보느라 미처 살펴보지 못한 탑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왜 이런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부조들이 지금까지 깊이 있게 연구된 적이 없었을까 의아스럽게 만든다. 이들 사진들은 그저 작품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사진을 뛰어넘어 옛 조각가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학술적·기록적 가치가 매우 높은 사진들이다. 따라서 비전공자들 뿐 아니라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지난 40여년간 전국 산하의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사진에 담아온 대가와 새로운 학설을 쏟아내는 소장 학자의 만남은 이 책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사진도 글도 모두 직설적이다. 그래서 충격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논조는 특별한 꾸밈도 없고 조용하다. 평소 보지 못한 사진이지만, 사진작가는 마치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침착하게 완전히 객관적인 상태에서 셔터를 눌렀고, 미술사학자는 최대한 자신은 배제한 채 조각가의 심정으로 돌아가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장 새로운 책을 펴낸 두 사람의 호흡이 그래서 더욱 신선하다.

흔히 불국사의 석가탑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탑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그 단순하고 깨끗함이 우리 불교미술의 정점이라고 흔히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단순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화려한 불탑 장엄의 세계를 엿보고 나면 저자의 주장처럼 통일신라시대의 장인들이 추구했던 것이나 현대의 비디오아트가 추구했던 것이 그리 다른 것이 아니었음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불교미술의 기초서적을 읽었지만, 그 이후에 마땅한 읽을거리가 없었던 독자, 불교의 교리를 쉽게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 우리나라 불교사를 훑어보고 싶은 사람, 나아가 불교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싶은 진지한 인문학 애호가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지은이 소개

주수완은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조각사 및 불교도상학의 문제를 인도·중국과 우리나라 불교미술과의 교류관계를 통해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대승설법도상의 연구>(박사학위논문) 외에 <미륵 의좌상의 도상적 기원에 대한 연구>(진단학보), <황룡사 장육상의 제작기법에 관한 연구>(신라사학보), <고려불화의 미적 특질과 그 계통성>(한국중세사연구), <대승설법도상의 두 계보 연구>(강좌 미술사) 등이 있다.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면서, 고려대학교·동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유남해는 1983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30여 년간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근무하며, 이 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의 사진 수록을 전담하여, 전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 한국의 산천과 자연 등을 촬영하여 수록하였다. 최근 10여 년 동안에는 ‘향토문화전자대전’ 등의 사업에 참여하여 각 지자체만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담아내었다.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에 소장된 고문헌 등은 유남해 작가에 의해서 그 색깔을 잃지 않고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교육부장관상(1992) 및 국무총리상(2011. 5. 3)을 수상하였다.

다할미디어 / 377쪽 / 2만 80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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