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인 석지현(釋智賢) 스님이 역주·해설한《벽암록》은 국내 최초의 완역본이다. 번역 기간 9년, 출판 기간 3년 걸린 책이다. 이 책은 원문에 토(吐)를 달고 번역과 해설을 붙인 책이다. 또한 이본(異本)을 대조하여 원본에 대한 교감(校勘)을 했으며《벽암록 속어(俗語) 낱말 사전》을 첨부하여 독해에 절대적인 편의를 제공했다. 따라서 석지현 역해《벽암록》은 선어록 역주의 새로운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번역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2. 이 책의 특징
첫째, 기존의《벽암록》번역은 대부분 수시(垂示)·본칙(本則) 정도만 번역했다. 그 뒤의 본칙착어·본칙평창·송·송착어·송평창 등은 번역하지 않았다. 석지현 역주《벽암록》은 그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은 완역본(完譯本)이다. 벽암록 완역(完譯)은 국내 최초이다.
둘째, 기존의《벽암록》번역은 대부분 단순한 글자번역이거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데 비하여 본《벽암록》은 원문의 정확한 번역과 뜻 해설, 원문의 낱말풀이 등을 곁들였다.
셋째,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의 입장에서 번역 해설을 붙인 책이 아니라, 선수행(공안참구)상에 있어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선의 입장에서 해설을 붙였다.
넷째, 이 책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원문의 이본(異本) 대조를 통한 충분한 교열을 거쳐 그 뜻을 정확하게 전달한 번역이다.
다섯째, 이 책은 우리말이 가진 장점을 충분히 살려내면서 번역했기 때문에 선문(禪文) 번역의 새로운 지평을 연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섯째, 속어(俗語) 낱말사전을 별도로 만들어 각 칙의 해설과 함께 이 사전을 참고한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독파할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선어록에 대하여 별도로 사전을 만든 경우는 처음이다.
3. 벽암록은 어떤 책인가?
벽암록은 선어록(禪語錄)의 백미이다. 선의 문헌 가운데 첫 번째로 꼽는 책(宗門第一書)이자 선종문화의 총결산이다. 벽암록은 선수행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선수행을 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그 깨달음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체험은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공안(화두)참구를 통해서 가능하다. 화두(공안)의 암호해독 즉 공안 타파(公案打破)를 통해서 가능하다. 공안의 암호해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깨달은 선지식을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선지식을 만나기란, 아니 깨달은 선지식은 그리 흔치 않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은 없는가. … 여기 《벽암록》이 있다. 벽암록의 공부와 공안참구의 좌선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의 암호해독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벽암록은 선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아니 길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지참해야만 하는 수행의 필독서이다.
4. 벽암록이 출현하기까지
벽암록은 설두중현(980~1052)과 원오극근(1063~1135) 선사에 의해 완성됐다. 설두는《조당집》, 《전등록》등 옛 선사들의 어록에서 공안 100칙을 가려 뽑아 여기에 각각 송(頌)을 붙여《설두송고백칙(雪竇頌古百則)》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설두송고백칙》에 원오 선사가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을 붙여 비로소《벽암록》이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벽암록 출현 이후 선승들은 너나없이 벽암록의 문자공부에만 몰두, 선수행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1089~1163)는 벽암록 판각과 책들을 모두 한 데 모아 소각해버렸다. 그 후 원나라 초기에 거사 장명원(張明遠)에 의해서 벽암록은 다시 복간됐다. 불 속에서 영영 재로 사라져버렸던 벽암록이 불현듯 불사조가 되어 다시 되살아 난 것이다.
5. 벽암록의 구조
벽암록은 수시·본칙·본칙착어·본칙평창·송·송착어·송평창 등 7중 구조로 되어 있다.
① 수시(垂示) : 일종의 머리말(序文)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본칙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말하자면 수시는 본칙을 읽기 위한 일종의 마음가짐을 서술한 단상(斷想)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본칙(本則) : 옛 공안(古則, 또는 公案)으로서 벽암록 핵심부분에 해당한다. 100개의 옛 공안이 벽암록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는데 앞의 수시와 뒤의 착어, 본칙의 평창, 송, 송의 착어, 송의 평창은 모두 이 본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착물들이다.
③ 본칙착어(本則著語) : 착어란 일종의 촌평(寸評)으로서 하어(下語)라고도 한다. 속담과 속어의 투성이며 문장의 응축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원오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가미되어 정신을 여간 차리지 않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④ 본칙평창(本則評唱) : 평창이란 평론제창(評論提唱)의 준말로 대체로 본칙의 배경이 되는 고사(故事)와 인물 소개, 본칙 자체에 관한 설명과 주석의 역할을 한다.
⑤ 송(頌) : 옛 공안 100개 하나하나마다 붙인 설두의 공안시(頌古)를 말한다. 설두의 이 공안시는 그 격조가 높고 기상이 험준하다. 그리고 선적(禪的)인 직관력과 시적인 영감이 풍부하다. 시상(詩想)의 방향전환이 무척 빠르고 문장의 세련미가 돋보인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두의 이 송고(頌古)를 공안시의 백미라고 일컬어 왔던 것이다.
⑥ 송착어(頌著語) : 설두의 공안시 한 대목 한 대목 밑에 붙인 원오의 촌평이다. 본칙의 착어에 비해서 그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데 그것은 본칙이 아니라 그 본칙의 경지를 읊은 송(頌)의 착어이기 때문이다.
⑦ 송평창(頌評唱) : 설두의 송고에 대한 원오의 평창이다. 기본골격은 본칙평창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6. 벽암록의 판본
벽암록에는 촉본(蜀本), 복본(福本), 일야본(一夜本), 장본(張本)의 네 개의 판본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벽암록이 이 장본(張本)이다. 이것은 촉본을 저본으로 하고 복본과 일야본을 참고한 것이다. 촉본과 복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옮긴이 소개
석지현 스님은 1973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으며 저·역서로《선시》, 《선시감상사전》, 《바가바드기타-세속에서 깨닫는 길》, 《우파니샤드》, 《숫타니파타》, 《법구경》, 《마하무드라의 노래》등이 있다.
민족사 / 2635쪽 / 5권 1세트 / 14만 5000원
출처 : 출판사 책 소개